그런 날 있죠.
아무 일도 없고,
아픈 데도 없고,
컨디션도 괜찮고,
마음도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
글이 안 나오는 날.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다 좋았어요.
'오늘 왜 이렇게 좋지?'
어제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횡재하는 꿈을 꾸지도 않았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 건 더욱 아닌데도.
오전 리듬이 좋았어요.
"좋다."
달리 다른 표현 없어요.
그냥 좋았으니까요.
세상은 환하고
에너지는 충만하고
명쾌한 공기가 감싸는 듯했죠.
낮에도, 오후에도 별일 없었어요.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도 좋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휘몰아칠 것 같아도
여전히 좋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었고,
속이 부대끼지 않아 편했고,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했고,
집은 가족들로 포근했는데도.
저녁 글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지금 하는 거라곤 갑자기 생각난
누룽지 만들기.
요 녀석이 은근 시간 걸리네요.
한쪽 면하는데 벌써 50분 걸렸어요.
뒤집고 반대쪽 굽는 중이에요.
그건 프라이팬에 밥을 얇게 펴서
아주 약한 불에 놔두기만 하면 돼요.
대단한 요리 솜씨가 필요하지도 않고,
레시피 순서에 따라 조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도 않거든요.
프라이팬과 열과 시간이 알아서
누룽지가 되도록 기다리죠.
얼마나 바삭하고 고소하느냐의 차이일 뿐.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면 되는 순간이에요.
아니, 아까부터 글이 안 나타나요.
노션에, 카톡에, 메모장에, 블로그에
저장해 둔 글감은 여러 개 있어요.
하나도 손이 안 가네요.
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뭘까요.
그런 날인가 봐요.
그냥 하기 싫어진 날.
오후까지 좋았다고 해서
저녁에도 이어지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지금 기분이 가라앉은 건 아니에요.
글이 나오지 않아
그렇다고 쓰고 싶었어요.
그래도 쓰다 보니 글자는 펼쳐졌네요.
누룽지는 약한 불에 가만히 두는 시간으로
만들어지죠.
글도 마음도,
때로는 억지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기다려야 할 때가 있어요.
바닥에서 천천히 익는 누룽지처럼,
오늘도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다져지고 있을테니까요.
누룽지처럼 곁에 두고 천천히 익힐게요.
글이 안 써지는 순간도
그저 그런 날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며
이런 날도 있었구나, 하고 남겨 봅니다.
오늘은 이만.
누룽지 보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