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으로 쓰러진 지인이 있다.
출근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발음이 이상하고 입이 멈추더니 몸이 멈췄다고 한다. 지인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날 아침에도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머니가 "너 왜 그래? 괜찮아?"라고 물었지만, 지인은 본인의 상황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나? 뭐? 아무렇지 않은데."라는 말과 함께 바로 쓰러졌으니 말이다. 나중에 그 지인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만 기억날 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침착하게 119를 불렀고, 그는 근처 병원으로 이송 됐다.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일반 병실에서 2주를 보냈다. 퇴원 후 그를 만났을 때, 말은 어눌했고 몸짓도 어딘가 어색했다.
"나, 이젠 괜찮아. 다 나았어."
그는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마치, 자신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아니면 본인도 믿고 싶었던 걸까.
그 사람은 술과 담배를 좋아했다. 아니다.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었다. 틈만 나면 담배. 저녁 약속이 없으면 안절부절이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싱글인데, 집에서 뭐 하냐? 자유를 즐겨야지." 즐기는 건지, 그 안에 갇혀 있는 건지. 아무튼 그는 술을 안 마시는 날이 없었고,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겨야 했다. 그전에는 절대 집으로 가지 않았다.
"더 마셔. 더 있자. 내가 살게."
계속 붙잡는 그를 놔두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간다고 말하기 미안하곤 했다. "오늘은 좀 쉬자. 담배 끊어. 술은 적당히 마시고." 걱정돼서 하는 말은 잔소리로 들었을 거다. 어쩜 나도 자주 마시는 술이 귀찮아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걱정은 됐다. 마음은 그랬다. 같이 마시고 그는 취하고, 나는 조절하며 마셨다.
"끊어 마셔? 이거 이거 한 번 쭈욱~~ 몰라?"
"으이그, 천천히 그만 마셔."
그는 늘 그랬고, 나는 늘 그랬다. 반복되는 대화, 늘 같은 자리. 그땐 몰랐다. 그 반복이 이렇게까지 올 줄은.
"나 이제 담배 안 피워. 술도 안 마셔."
"오~~ 왠일이야?"
"의사가 안 된데."
"잘했어. 진짜 잘했어. 위험했잖아. 이젠 다 끊자."
한 동안 그는 멈췄다. 담배를. 술을. 세 달 정도 지났을까. 저녁 약속 자리에서 그가.
"나, 맥주 한 잔만."
나는 깜짝 놀랐다. "안돼. 한 방울도 안돼."
그땐 그렇게 지나갔다. 다시 두세 달이 지나 다시 만났다. 이번엔 그가 먼저 술을 주문했고, 자신의 잔을 채우는 게 아닌가. 옆에서 펄쩍 뛰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혼자서 마시지 않으려니 심심하단다. 그럼 술 집 말고 다른 데서 모이자고 했더니 그건 또 재미없단다. 자고로 밤엔 유흥 분위기에서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점점 술잔이 채워졌다. 만날 때마다 주문하는 맥주가 늘어났다.
"의사가 맥주는 괜찮다고 했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을 말을 하면서.
'1년 넘게 담배를 안 폈어. 나 대단하지 않아?"
"그럼 술은?"
"조금만 마시잖아. 술도 안 마시면 무슨 낙으로 사냐? 지겨워 죽겠더라."
담배를 확실히 끊은 모양이다. 저 거만한 표정을 보면 말이다. 술은 아직도 안되나 보다.
쓰러졌을 때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운동해야 한다고,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한다고 말하던 그였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담배를 아직은 안 피우는 거만 빼고. 그러면서 의기양양이다. 그 표정을 보면서, 나는 안심보다 불안이 먼저 들었다. 본인의 몸을 위해 잘하고 있다며 자랑이다. 내가 뭐라 할 수도 없고, 더 간섭할 수는 없지만 안타깝다. 그래도 운동복을 사두었다고 생색내는 걸 보면 그도 알긴 알겠지. 이제는 진짜로 조심해야 한다는 걸.
사고가 터지면 사람은 '아, 뜨거워!' 하고 놀란다. 그 순간엔 뭐든 다 끊고 정신 차린다, 좋은 것만 하며 살 것처럼 다짐한다. 과거의 나쁜 습관들을 다 덮어버리겠다고. 그게 얼마나 갈까. 그래서 꾸준함이 어렵다는 건가. 나쁜 건 쉬운데, 좋은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과거의 나는 어땠을까. 뜬금없는 말이지만, 그때 20대. 나쁜 놈인 줄 알면서도 다시 만났던 사람. 외로움을 핑계로, 좋은 척 위로가 되는 척하던 관계. 그런 것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잊어버리고. 나도 그랬던 거 아닐까. 이미 답은 알고 있으면서, 계속 미뤘던 것들. 대개 그런 감정은 짧게 솟구쳤다가 오래 흐지부지되는 것 같다. 뜨거움은 늘 잠깐이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엔, 조금은 오래가기를. 나도, 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