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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 그 짧은 장엄함

천조국 일식 과학 유람기 #10 - 개기일식 관측

 2024년 4월 8일 개기일식의 날이 밝았습니다. 


 전날 워싱턴 D.C를 떠나 코닝(Corning)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팔로로 떠났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매년 펜실베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열리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참가 선수단이 묵는 호텔이 저희가 묵은 Radisson Hotel Corning NY라고 합니다. 야구쟁이 입장에서 어찌나 반갑던지요.


 나이아가라 폭포 쪽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날 예정이라 캐나다와 미국 양쪽에 최소 30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어 일찍 출발했습니다. 


버팔로에 왔으니 버팔로 윙을 먹자


 개기일식도 식후경. 이동 중 11시 정도에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은 맥주 안주로도 즐기고 치킨이나 피자를 시키면 사이드 메뉴로 시키기도 하는 버팔로 윙이 바로 버팔로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원조 버팔로 윙을 맛봐야겠죠.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 짜고 감칠맛이 적었는데요. 소스에 찍어먹으면 좀 나았습니다. 

 피자는 두툼하고 치즈가 풍부해서 맛있고 든든했습니다. 

 이런 음식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 투척합니다. 



비가 온다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투표합시다!


 사실 여행 출발 전부터 개기일식 당일 버팔로에 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이슬비가 날리고 계속 흐린 가운데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앱과 위성사진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나와 리더인 파토 원종우 님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1안. 구름이 걷히길 기원하며 예정된 장소로 가자
 - 장점 : 날씨는 흐려도 널찍한 장소에서 여유 있게 관측 가능
 - 단점 : 비를 맞을 수도 있고 개기일식을 제대로 못 볼 수 있다. 

2안. 현재 구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서쪽으로 1시간 이동해서 관측하자. 
 - 장점 : 확실히 맑은 하늘에서 볼 수 있음
 - 단점 : 이동할 곳이 길가라 매우 불편할 수 있음


 토론 끝에 결국 투표를 했습니다. 즉석에서 단톡방에 투표가 만들어지고 결론은 원안으로 결정됐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원안을 지지했고 저도 원안을 지지했습니다. 사전 OT 때 권오철 사진작가께서 자신이 본 가장 강렬한 개기일식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비록 흐려도 그 나름의 맛이 있을 거라고 긍정회로를 돌리며 예정된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민주주의니까 다수결로 정합시다~~~

 

일식 관측을 위한 준비물


 전날 밤 숙소에서 사전 OT 때 듣고 미리 준비한 바늘구멍상자(Pin hole box)를 조립하고 끄적끄적 꾸며봤습니다. 박스 좁은 쪽에 볼펜으로 구멍을 뚫고 넓은 쪽에 큰 타원형 구멍을 뚫었습니다. 볼펜 구멍을 통과한 태양의 모양이 달에 가려진 대로 박스 안쪽에 비치기 때문에 안경을 안 쓰고도 관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도 일식안경을 받았지만 식당 앞에서 태양 안경과 흑요석 메달(?)을 받았습니다. 

 흑요석 메달은 멕시코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분께서 선물로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검은 돌을 잘 가공해서 한 면에 멕시코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눈앞에 바짝 대고 태양을 보면 태양 안경처럼 잘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NASA 로고가 선명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받은 태양 안경과 흑요석, 오른쪽은 DIY로 만든 일식 관측용 바늘구멍 상자




구름 사이에서 애태우며 일식이 시작됐다


 걱정스러웠지만 희망을 품고 도착한 장소는 뉴욕 주립대 사우스 캠퍼스(SUNY Erie - South Campus)의 오차드 파크였습니다. 야구장 2개와 축구장이 있는 넓은 체육공의 잔디밭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 수백만 명이 몰렸다고 하는데 여기는 우리 일행 외에 한 명도 없는 게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어떤 한 분이 와서 우리와 떨어진 곳에서 태양 안경을 쓰고 보시기는 했습니다)

 일식 시작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아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다렸습니다. 이강환 박사님은 망원경을 세팅하시고, 아이들은 이정모 관장님과 축구를 하고, 몇몇은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저도 가져온 관측도구(?)를 배치하고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며 기다렸습니다. 

 NASA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니 멕시코에서 시작된 개기일식을 생중계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스마트폰으로는 제대로 된 촬영이 불가능하니 유튜브 화면 캡처를 해뒀습니다.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NASA 유튜브 생중계에서 캡처한 멕시코 마사틀란에서 관측한 개기일식 장면


 2시를 넘어가면서 드디어 달이 태양을 조금씩 가리기 시작하는 부분일식이 시작됐습니다. 

 구름이 껴서 태양이 안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구름 사이로 해가 들락날락하면서 오히려 태양이 드러났을 때 더 집중하며 환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맑은 날이었으면 일식안경을 쓰지 않고는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는데 구름에 가려지면 선글라스만 써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일식안경, 선글라스, 가끔 흑요석을 번갈아 이용해 태양을 관찰했습니다. 가져간 망원경은 사실 실명의 위험이 있어서 태양을 향하지 못했습니다. 

 온도계 2개로 잰 기온은 신기할 정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개기일식, 그 짧은 장엄함


 3시 18분경 드디어 손톱 끝만큼 남아있던 태양이 완전히 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 장엄하고 신비한 느낌은 말이나 글로는 물론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옮기기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흥분해서 환호했고 감격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은 직접 겪어보라고 밖에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조금씩 어두워지던. 사위가 급격히 캄캄해지며 주변 가로등과 건물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 어두웠는지 알기 어렵지만 실제는 해 지고 최소 30분은 지난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이제 맨눈으로 태양을 직접 볼 수 있었고 달 주변으로 이글거리는 코로나가 육안으로 보였습니다. 

 약 4분 20초 정도 진행된 개기일식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360도로 노을이 져 있는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달그림자의 경계에 노을이 진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 맑았다면 개기일식 시작과 함께 깜깜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고 하는데 흐려서 별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긴 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개기일식 직전과 한창 진행될 때, 직후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감격스러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개기일식이 끝나고 태양이 다시 달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개기일식 시작과 반대로 누가 스위치를 켠 듯 급격히 밝아졌습니다. 어두워질 때뿐 아니라 밝아질 때 역시 정말 신비롭다는 표현 밖에 못하겠습니다. 


개기일식 직전에 주변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개기일식이 시작됐습니다
개기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태양의 코로나가 보이고 주변이 캄캄해지며 360도로 노을이 지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4분 20초 정도의 개기일식이 끝나고 태양빛이 반짝 드러나자 급격히 밝아졌습니다
스마트폰의 한계로 선명하지는 않아도 코로나가 확실히 보입니다. 오른쪽은 개기일식 때 하늘과 땅 부분의 명암 차이를 찍어봤습니다.


일식 진행에 따른 기온 변화


 예전에 제주도에서 부분일식을 경험했을 때 기온이 몇 도 정도 내려갔다 올라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미리 다이소에서 온도계를 준비해서 일식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기온의 변화를 측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5천 원짜리 온도계의 정확도가 어떨까 싶었는데 3만 원이 넘는 CAS 온도계를 가져오신 분이 계셔서 나란히 놓고 측정, 기록했습니다. 

 가장 높았을 때 기온이 22.5도/23.3도(다이소/CAS 순)였고 개기일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12.8도/14.4도였습니다. 개기일식이 끝나고 태양이 아주 조금 드러나고도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갔다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최저가 12.4도/14.0도였습니다. 두 온도계가 각각 10.1도, 9.7도 하락해서 최고기온 대비 평균 9.9도가 내려갔습니다. 우리 지구의 생태계가 태양에너지에 의존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일식 시작 전 가장 높은 기온, 개기일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개기일식이 지나고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간 상태
부분 일식 시작부터 개기일식 절정을 지나 다시 부분일식으로 진행하는 과정의 온도 변화 기록


 우리나라에선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없었지만 천문연구원에서 미국 텍사스주에 두 팀의 관측단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천문연구원은 NASA와 공동 개발한 국제우주정거장용 '코로나그래프'(CODEX) 핵심 연구를 위한 개기일식 지상 관측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히며 개기일식 직후 태양이 드러나는 일명 다이아몬드 링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태양빛이 나오며 빛이 퍼져 나오는 장면과 붉은 코로나가 함께 잡힌 정말 멋진 사진입니다. (아래 기사 링크 참조)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4099956Y



개기일식의 감동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개기일식 자체는 4분 20초 정도였지만 앞뒤로 부분일식이 진행된 3시간은 앞으로도 길이길이 기억될 감동이었습니다. 약 120명의 한국인들이 먼 미국의 어느 잔디밭에 모여 이 순간을 공유했다는 감격과 뿌듯함을 안고 마지막 여행지인 뉴욕, 정확히는 뉴욕주의 주도(州都)인 알바니(Albany)로 출발했습니다. 사실 뉴욕주의 주도가 뉴욕시가 아니라 알바니라는 걸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뉴욕시까지 거리가 멀 기 때문에 알바니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뉴욕시로 출발하는 일정입니다. 

 버팔로에서 알바니까지 4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뉴욕주 시러큐스시에서 미국식 뷔페로 저녁을 먹고 알바니에 도착하니 밤 10시 20분이 됐습니다. 뉴욕에서 가깝다더니 미국이 참 크긴 크네요. 


 호텔방에서 TV를 켜니 뉴스에 개기일식을 보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경제효과가 얼마인지 이야기하고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일식의 원리에 대해 과학 교육을 했고 과학자들은 관측실험을 실시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습니다. 

 델타항공에선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며 하늘에서 일식을 관측하는 비행기 편을 띄웠는데 완판 됐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뉴스 화면 촬영 : 어린이들에게 일식 원리를 설명하고 일반인들은 개기일식을 즐기고 과학자들은 관측기구를 띄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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