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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탐사, 아니 수맥 탐사 경험 썰 풉니다

갑작스러운 산유국 썰에 풀어본 군 시절 지하수 탐사 썰

갑자기 우리가 산유국? 그래서 생각난 수맥 탐사 경험


 2024년 6월 3일 난데없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2년이나 넘어서 처음으로 국정브리핑이라는 걸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장관도 제쳐두고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했습니다. 아 그리고 질문은 안 받더군요. 하여튼 포항 영일만 앞바다 해저에 원유와 가스전이 무려 140억 배럴이 매장되어 있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물리탐사는 탄성파 등을 이용해 지하에 석유나 가스가 있는지 알아보는 초기 단계로 탄성파가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파장이 매질에 따라 달라지는 걸 보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물리탐사 가지고? 하면서 의아했지만 세계적인 석유회사 출신의 전문가가 세운 회사가 확인을 했고 21세기에 발견된 세계 최고 매장량인 가이아나 가스전보다도 매장량이 많다고 한다. 대왕고래라고 명명했답니다. 정부 발표치고 너무 낭만적이네요.

설마 대왕고래가 주식시장의 큰 손, 고래를 뜻하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요?

 우리나라가 산유국(산가스국이라고 해야 하나?)이 된다니 캬! 어릴 적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서 유전을 찾았다고 발표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거기 말고도 수십 년째 방치되고 있는 제7광구도 있는데 이번엔 진짜일까요?


 물론 아직 시추는 당연히 안 했고 발표 내용을 보면 매장 가능성이 20%랍니다. 20% 확률이란 한번 뚫었을 때 나올 확률이 아니라 5번까지 뚫으면 그 안에 나올 거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국정보고 이후 탐사업체가 페이퍼 컴퍼니 같다는 둥, 본사를 찾아가 보니 For Sale 입간판 세워둔 가정집인데 이미 팔렸고 집안도 비워져 있더라는 방문기(아래 클리앙 링크 참조), 전문가라는 사람에 대해 아예 검색도 안되고 회사 소개를 보면 유전 탐사 전문이 아니라 교육, 컨설팅 같다는 둥 뒷말이 무성합니다.


https://act-geo.com/consulting/ 

(탐사업체라고 밝힌 ACT-GEO사 홈페이지. 접속이 꽤 어렵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738986 (아래는 클리앙 이용자가 직접 본사를 ATC-GEO 본사를 찾아가 본 방문기입니다)

 정부 발표와 달리 ACT-GEO의 전문가라는 빅토르 애브루는 5월 브라질 석유회사 플럭서스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하면서 ACT-GEO 활동은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있군요. 그럼 플럭서스라고 해야지 왜 ACT-GEO라고 했을까요?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자리인데 좀 이상하죠?

https://m.news.nate.com/view/20240603n26606

 이 양반에 대한 플럭서스의 소개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s://fluxus-oge.com/vitor-abreu/


 이렇게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보니 누군가는 얼마 전 수염 성성하신 모 ‘스승’이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된다고 한 뒤 나온 거라고 공세를 펴기도 했습니다. 일단 석유든 가스든 뽑으려면 바닥을 ‘천공’해야 하니 이상하게 운율이 맞긴 하네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제가 석유 탐사는 모르지만 군 시절 지하수 개발에 조금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썰 한번 풀어보려 한다. 아주 약간 비슷한 분야인데 당시 대단히 전문적인 일인 줄 알았으나 영 아니었던 기억이 나네요.




 때는 1994년 2월이었던가. 중위 진급 얼마 전이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의정부 근처 어느 예비군 대대에 소대원들 데리고 2주 정도 파견 가서 심정(沈井)을 설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아! 필자는 학군 출신 공병장교로 포천의 모 공병여단 예하 공병대대 소대장이었습니다.


 중대장이 지시하기를 그 부대에 심정을 설치해야 하는 공사가 있는데 수맥을 탐사해서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펌프와 관 설치 공사는 민간업체가 하고 우리 부대는 펌프실을 만들고 땅을 파서 수도 배관을 물탱크까지 하는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대대장이 심정공사에 대해 브리핑을 하라네요. 남의 부대에 소위 나부랭이가 가는 게 불안했나 봅니다. 물론 제가 건축을 전공하고 바로 임관했으니 지하수 탐사니 심정공사니 하는 걸 제대로 알 리가 없었죠. 중대장이 얇은 책 한 권을 주고 공부를 시켰습니다.

 나름 며칠 공부하고 행정병을 시켜 보고용 괘도라는 걸 만든 뒤 직접 매직으로 정성스럽게 발표자료를 작성했습니다. 명색이 건축 전공이라 도면 글씨는 좀 썼고 행정병을 시켜서는 제 의도대로 보고 자료를 만들기는 어려워서 직접 작성했습니다.

 물론 1994년에는 파워포인트는 고사하고 야전부대의 중대 행정실에 컴퓨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충 요런 식의 대대장 보고였지만 저는 소위였기에 각이 잡혀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행히 대대장 브리핑은 한방에 통과가 됐고 며칠 뒤 우선 혼자 5톤 덤프트럭을 타고 해당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공병 소대장은 항상 5톤 덤프트럭을 업무용 차량으로 썼습니다)

 부대에 도착해 보니 예비군 부대라 기간병도 별로 없고(이른바 방위부대) 대대장도 소령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대장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군요. “소위가 왔나?” 하고 묻더니 “심정에 대해서 좀 아나?” 하더군요.

 소위가 자신감 빼면 시체 아니겠습니까? “궁금하신 점 있으면 질문하십시오”라고 하니 대뜸 “수질검사는 얼마 만에 하나?”라고 물었죠. 1초의 지체도 없이 “예. 1년에 한 번 합니다” 했더니 “잘 알고 있구먼”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아마도 대대장이 아는 유일한 지식을 물었는데 대답이 바로 나오자 흡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습니다. 


 대대 참모인. 모 대위의 안내로 심정개발 민간업체부터 만났는데 현장소장이랑 수맥을 탐지한다는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말로만 듣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Y자 모양으로 들고 부대 곳곳을 돌며 수맥을 찾아다녔습니다. 90년대에 집 아래 수맥이 흘러 몸이 아프네, 사업이 망하네 한다고 수맥 찾아준다는 사람들이 TV에 나오고 했는데 이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금속 탐사봉(다우징 로드) 같은 걸 쓴다는데 이 사람은 뭔가 더 자연적인 능력이 있나 봅니다.


왼쪽이 나뭇가지로 수맥을 찾는 Y-Rod, 오른쪽이 금속 탐사봉인 다우징 로드

 

 갑자기 전문가가 들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 끝이 땅 쪽으로 꺼떡꺼떡 움직였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수맥이 흐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더군요. 저 보고도 꺾인 줄기 쪽을 앞으로 하고 양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한 뒤 Y자로 갈리진 가지를 벌려서 꽉 쥐고 움직여 보랍니다. (위 이미지의 왼쪽 그림 참조)

 뭔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전문가가 찍어준 곳에 천공기를 설치하여 시추하기 시작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지하수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 과연 전문가!

 현장소장 말에 따르면 5번 안에 지하수를 찾아야 채산성이 있다더군요. 
(그렇다면 20% 확률? 뭔가 데자뷔가…)

 곧 부대로 돌아가 전기공, 설비공, 기타 땅 팔 인원들을 데리고 와서 배관을 묻기 위해 소형 포클레인으로 좁게 땅을 파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펌프실을 만들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할 일은 수질검사 의뢰. 샘플을 채취해서 의정부에 있는 검사기관에 의뢰하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민간업체가 작성한 지하수 탐사 및 공사계획서가 있어서 읽어봤습니다. 아니 이게 뭔가요.

 이미 공사 전에 전기탐사를 통해서 지하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 5개 정도 도면에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쓰여있는 곳 위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을 불러서 수맥탐지 쇼를 한 거였습니다.

 다행히 수질은 음용 가능이 나왔고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유전 탐사가 어디 시골 지하수 탐사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어쨌든 땅 밑에 묻혀있는 지하자원을 찾는 행위는 여전히 탐사 비용이나 시추 비용은 높은 반면 성공 가능성 자체가 낮고, 설혹 찾더라도 경제성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지하수도 수량이 풍부해도 수질검사에서 떨어지면 아무 필요 없지요. 

 제가 경험한 대로 이런 분야를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보니 속이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경험담 한번 풀어봤습니다. 

 설마 대통령이 나서서 발표했는데 국제 사기꾼에게 당하거나 그런 일이야 있겠어요? 일개 군부대 지하수 개발도 아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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