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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셔터, 오늘의 감동

#POTD 18


2016년 어느 겨울날, 연구실 학생들과 충무로 인현시장의 한 식당에서 회식하던 중이었다. 그 식당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두 사람의 너무나 밝고 활기찬 모습에 끌렸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두 사람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고 그들은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 부부의 밝은 에너지를 느끼려고 연구실에 있는 컬러 프린트로 사진을 출력하여 책장 안에 기대 놓았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사진 속 주인공들에게 사진을 전달하면 기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또다시 1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한 달 전쯤 오랜 세월 동안 책장 안에서 허리가 휘어진 사진을 종이 액자에 반듯하게 끼워 넣었다.  
            

오랜 친구 YJ를 만나 사진전을 같이 보고 인현시장으로 향했다. 혼자 그 식당을 찾아가는 것이 좀 뻘쭘해서 YJ를 부른 것이다. 충무로에서 만나 사진전을 구경한 뒤 그에게 인현시장 식당의 부부와 그들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도 인현시장의 그 식당이 궁금하다고 했다. 인현시장에 들어서서 '자갈치회식당'이란 간판을 보자마자 그 집이 8년 전 그 식당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근처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는 식당들도 제법 있었는데 그 식당 안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사이를 열심히 오가는 부부를 보았다. 웃는 모습이 사라져서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나 바쁜 탓일까? 그들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니 예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빈자리가 없어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라고 잠시 망설였지만 사진에 대한 그 주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럴 수 없었다.     


마침 식당 입구 근처에 있던 여주인에게 사진에 관하여 설명해 주었다. 그 여주인은 갑자기 눈이 커지더니 환한 얼굴과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사진을 보더니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때는 70 이전인가 보네?’ 그가 신기한 듯 사진을 보며 말했다.


지금의 나이를 물으니 75세라고 한다. 부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기뻤다.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YJ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건넨 사진을 상장처럼 카메라를 향해 들고 나와 함께 환하게 웃었다.               


어느 유명 사진작가는 돈을 받지 않고는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가 자녀의 결혼식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자신의 몸값을 관리해야 작가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6년 전부터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주변을 살피고 그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 후로 몇 가지 즐거움이 더 생겼다. 내가 찍은 사진을 자신의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10명 이상은 된다. 그 사진들을 우연히 보게 되면 흐뭇해진다. 페친 한 분은 자신이 글을 올릴 때 내가 찍은 풍경 사진을 배경으로 사용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가끔 나는 가까운 지인들의 자녀 결혼식 사진을 찍어준다. 전문 사진사가 찍는 사진은 신랑 신부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나의 사진은 웬만하면 당일 배송이 된다. 그것도 별도의 가입비 없이 말이다. 이것이 나의 경쟁력이다. 물론 내 사진이 작가 수준의 사진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보다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다.     


이제는 인현시장의 식당 주인들을 통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진으로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어찌 사진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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