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사_머뭇 거리던 순간들

#POTD 30

2025년 마지막 출사 장소는 제주도. 아특사 모임에서 2박 3일 국내 출사는 처음이다. 그 동안에는 당일 혹은 1박 2일 출사만 갔었다. 우리 일행은 제주공항에 아침 10시 반쯤 도착해서 식사를 하기 위해 ‘돌하르방 식당’으로 향했다. 벽에 붙어있는 메뉴를 보니 각재기국이 눈에 들어왔다. 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이 ‘고등어회도 일품이니 잡숴 보세요’라고 한다.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수십 년은 더 되어 보이는 표창장과 신문이 액자 안에 걸려있다. 식당 주인이 한국 전쟁 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공훈장을 받은 내용이다. 빨간 셔츠를 입고 고등어회를 열심히 썰고 있는 주인은 전혀 90세가 넘은 노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에서 전쟁터의 1등 상사가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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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첫 번째 출사 장소는 곶자왈. 돌투성이 땅 위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숲이란 뜻이라고 한다. 현무암 용암지대에 형성된 원시림이다. 제주에 이런 곳이 있다니? 얼기설기 된 나무들이 많아서 무엇을 찍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탐험가가 떠올라 셔터를 눌렀다.


다음 목적지는 제주 방문 시 거의 빠지지 않는 방주교회다. 교회 문이 열려 있어서 처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고 사진을 찍거나 둘러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잠시 구석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밖으로 나가서 교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방주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물이 강하게 흔들린다. 가까이 보니 마치 파도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수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놓고 렌즈 각도를 올려 방주 교회 전체가 담기도록 향했다. 파도에 떠다니는 방주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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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 일정은 광치기 해변의 일출 촬영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출사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추운 겨울날 일출을 담기 위해 새벽에 나서는 것이리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투덜거리는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었다.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는 내복은 당연하고 바지를 두 개나 입고 나섰다. 어두운 해변에 삼각대를 펴놓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잠을 더 자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바다와 해변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추위와 졸음은 잊혀지고 온몸에서 엔돌핀이 솟는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후 장노출 사진도 몇 장 담았다. 촬영을 마치고 아침 식사 장소인 근처 '백기 해녀의 집'으로 이동한다. 전복죽을 기다리며 식당 안을 둘러보니 해녀 복장을 한 6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 일하고 있다. 물질을 마치고 방금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나 같은 육지 촌사람을 위해 볼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입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image.png 김영갑 선생 <출처 : 김영갑 갤러리 홈페이지>


오후에는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우리에게 갤러리 소개를 해 준 관장은 자신이 김영갑 선생의 제자라고 했다. 이곳에는 두세 번 정도 와 본 적이 있는데 설명을 자세히 듣기는 처음이다. 서울에 살던 김영갑 작가는 85년부터 제주에 내려와 20년 동안 제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다.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 댕기 머리를 하고 카메라를 메고 제주 곳곳을 다녀서 간첩으로 오인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다. 선생은 제주의 오름과 바람을 담는데 혼신을 다했다고 한다. 그의 사진 속 흔들리는 억새, 나뭇가지, 풀 등에서 바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이듬해,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의 폐교된 삼달 초등학교 건물을 임대해 3년간 자신이 직접 수리하여 2002년 여름에 갤러리 문을 열었다. 근육이 녹아내리는 병중에 건물을 고치고 돌을 날랐을 선생의 모습이 머리에 스쳐 갔다. 쉰도 되기 전인 2005년, 그는 갤러리 앞마당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영원히 제주와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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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차에는 돌문화공원을 방문했다. 7년 전쯤 아내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 넓은 부지와 돌로 된 작품들의 크기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안내서에는 부지 30만 평에 작품 수는 2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아특사 회원들은 모두가 이런 멋진 출사 장소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입을 모았다. 여러 크기의 돌들로 6~7m 높이의 종 모양으로 쌓인 작품들 사이를 지날 때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어디선가 몰려오는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주는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돌하르방 식당의 낡은 액자에서 시작해 곶자왈의 어지러운 숲, 바람에 흔들리던 방주교회의 물결, 새벽 광치기 해변의 차가운 공기와 김영갑 선생의 사진 속 바람, 그리고 돌문화공원의 압도적인 침묵까지. 이번 출사는 풍경을 수집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셔터를 누른 장면보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던 순간과 머릿속으로 그려본 이미지들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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