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0

운문의 외견을 빌려

by 김주렁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흰 옷에 새겨진 얼룩처럼 쉽사리 옅어지지 못한다.

조금은 옅어질지언정 소멸하지 못하고 잔존하며 사람의 감정을 좀먹는다.

좀먹히고 부식된 내면은 쉽사리 외부로 침출 되지 않으나,

이따금 새어 나와 이를 목도한 이의 시야에 포착된다.

불가역적 비탄함이 스며든다.

참으로 저릿한 순간이다.


후회와 회한은 가장 쉽사리 마주할 수 있을 독이다.

발버둥은 숭고한 재림이자 여명의 착화제일지니.

다만, 발길이 가닿는 곳에 행복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상론은 언제고 뒤집힐 수 있을 허상에 가깝다.

허상에 여생을 믿고 맡길 수 있을 이는 십 중 삼 보다도 현저히 낮을 것이라 감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허상과 불확실한 미래에 가시 박힌 멍에를 씌우는 것이 차악이자 차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멍에를 두른 호인(好人)은 지금에라도 미래로 나아가고자 손을 흔들고 있다.

부족한 것은 두려움에 좀먹힌 작금의 자신이다.


아름다움은 외계의 것이라 단정(斷定)하는 오만은 그 주체를 앞으로 밀어낼 수 없다.

이제는 모든 핑계와 자기 방어에서 비껴난 한 정의 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 강단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을 것이기에,

오늘의 작은 내홍은 여기에서 막을 내린다.

이루어지지 못한,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거와 현재를 톺으며,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 미래를 폄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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