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기구한 악인
<레옹>은 1994년에 개봉한 '뤽 베송' 감독의 영화로, 마약단속국 형사이면서 뒷거래로 이익을 챙기는 부패경찰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 노먼에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살해당한 소녀 '마틸다 란도(나탈리 포트만)', 그 현장을 목격한 후 마틸다를 도와준 옆집 이웃이자 살인청부업자 '레옹(장 르노)' 사이의 얽히고설킨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선글라스와 비니, 초커 등 특유의 착장과 작품의 엔딩곡인 'Sting'의 'Shape Of My Heart'가 유명하며, 전반적으로 탄탄한 서사보다는 매 순간의 강렬한 인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래에 이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작품의 큰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가족이 살해당한 마틸다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레옹에게 구해지며, 이후 그녀는 노먼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원래부터 홀로 살아가던 레옹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구해낸 마틸다를 내칠 수 없었고 이내 그녀를 훈련시킨다. 이후 마틸다는 복수를 위해 노먼을 찾아가지만 붙잡히고, 레옹은 노먼의 부하를 죽인 후에 그녀를 구출한다. 이에 분개한 노먼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그들을 체포하려 찾아갔지만, 레옹은 마틸다를 성공적으로 탈출시키고 자신은 노먼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후에 마틸다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며, 레옹이 아끼던 화분을 마당에 묻어주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피카레스크(picaresque)는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들이 도덕적 악인으로 구성된 장르를 일컫는 용어로, 본 작품 또한 피카레스크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연인 레옹은 순박하고 때로는 아이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일단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이며, 노먼은 직책상은 경찰이지만 자신에게 반하는 인물은 가차 없이 죽이는 마약 밀거래상이다. 레옹에게 구해진 마틸다는 한순간 가족을 잃은 가련한 인물이긴 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올곧게 자라지 못하고 학교를 빼먹으며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린아이였다.
관객은 작품을 관람할 때 자신의 시선이자 입장을 의탁할 페르소나를 무의식적으로 찾는데, 이는 보통 작품의 주연인 경우가 많다. 불우한 환경과 고난, 역경을 거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른바 왕도를 걷는 인물이 주연인 경우에는 이 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주연이 악인인 경우에는 관객의 생각이 조금 복잡해진다.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가닿은 곳에 서있는 인물의 부도덕함을 인지한 관객은 의도적으로 시선을 다른 인물에게 옮기려 하지만, 정작 둘러본 곳에도 악인들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후에 관객은 절대적 척도가 아닌 상대적 척도로 인물들을 바라보며, 그중 가장 덜 악하다고 판단되는 존재에게 자신의 시선을 맡긴다. 본 작품에서는 이를 레옹이 담당한다. 레옹이라는 인물 자체는 절대적으로는 살인을 일삼는 악인이지만, 그는 여인과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 등 불필요한 살인은 지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분을 키우고, 우유를 마시며, 뮤지컬 영화를 보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약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레옹은 자신이 거둔 마틸다를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옹이 본받을만한 인물이라거나 선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청부업자였다. 다만, 이와 같은 상호 간의 선악관계에서 죄의 경중을 가늠하면서 세상의 여러 인간군상과 다각적 의견에 대해 고민해 보고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피카레스크 장르가 지닌 매력이자 강점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르적 특징은 자칫 오용되면 죄의 미화로 결부되기도 한다. 다양한 생각을 위한 서사가 악행과 살인을 우상화하고 정당화는 수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작품의 주연인 레옹은 악의 화신으로 군림하기에는 다소 나약한 인물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그는 같은 이탈리아인 '토니(대니 에일로)'가 알선해 주는 살인청부업을 통해 먹고살고 있었지만, 온전한 보상을 받고 있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화분처럼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로 떠돌고 있었고, 불안감 때문에 침대에서 잠을 청하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지새우는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우연히 찾아와 온정을 나누어준 마틸다를 위해 그는 목숨을 바치고 생을 마감한다. 레옹은 절대적인 척도에서 분명한 악인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도 외롭고 나약한 인물이기도 했다.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분개와 불우한 처지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입체적인 인물상은 그를 단순히 악행을 조장하는 인물보다는 기구한 악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각인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작품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음울한, 색이 곱게 바랜 옛날 필름 같은 분위기가 좋아서 종종 찾아보게 되는 작품이다. 한 번쯤은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