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빚을 집니다."
<체르노빌>은 2019년에 방영한 5부작 드라마로,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을 다룬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등 사실과는 다른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HBO에서 제작된 작품이나, 2025년 3월 21일부터 쿠팡플레이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아래에 감상을 남긴다.
작품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부터 시작하며, 소련의 정부 관료 '보리스 예브도키모비치 셰르비나'와 차출된 과학자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가 숱한 고난과 다수의 희생을 겪으며 상황을 수습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풀어낸다. (다만 이는 영웅적 일대기라기보다는 최악을 피해 차악을 골라야만 했던 그들의 죄책감 어린 발버둥에 가까웠다.) 작품의 종국에야 레가소프는 동료 과학자인 '울리야나 유리브나 호뮤크'와 함께 밝혀낸 발전소의 폭발에 얽힌 진실을 법정에서 알리며(하지만 결국 진실은 법정을 나서지 못하고 은폐된다), 이때 작품은 폭발 이전의 과거 시점을 병치하여 관객에게 함께 제시한다. 폭발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금 폭발 시점으로 돌아와 완결되며, 이후에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역사적 사실이 관객에게 제시되며 5화에 걸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화자는 레가소프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자책하며 늦게나마 진실을 밝히고자 녹음기에 사건의 진상을 남기고 자살하는데, 이야기는 그가 왜 자신의 집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그의 행적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된 장소는 크게 세 곳으로, 1) 사고가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와 그 주변, 2) 사고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주변 도시들, 3) 사건에 대한 보고와 지시가 진행되는 크렘린궁이다. 원자력 발전소에는 사건의 원인 파악과 수습,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소방관, 광부, 군인)이, 발전소에 인접한 도시에는 방사선에 피해를 입은 시민들, 그리고 이들을 대피시키는 군인들, 피폭된 동물들을 정리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분투가 보여진다. 그리고 크렘린궁에서는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를 포함한 관료들에게 셰르비나와 레가소프가 상황을 보고하며, 고르바초프에게 의사결정과 필요한 물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이 주로 보여진다.
과거 체르노빌에서 참혹한 사고가 일어났던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본 작품은 당시 체르노빌에 살고 있던 이들이 어떤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왔는지에 대해 관객들에게 뼈저리게 보여준다. 단순히 화재인 줄만 알고 현장에 투입되었던 소방관과 그를 기다리던 임신한 아내, 방사선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고 화재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사선에 노출되어 죽어간 '죽음의 다리'에 서있던 이들, 원자력 발전소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광부,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사건을 수습하던 셰르비나와 레가소프의 좋지 못했던 말로를 통해 작품은 이들이 겪어왔던 고통을 잠시나마 관객들에게 들이민다.
시각적으로 가장 극명하고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피부에 나타나는 붉은 수포이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점차 붉어지는 얼굴, 그리고 이내 심한 피폭으로 인해 죽음에 다다른 환자들의 모습이 작품에는 날것 그대로 관객에게 제시되며, 이는 관객에게 고통을 직관적으로 주입한다.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공포는 사건 현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시민들에게서 느껴진다. 단순히 화재로만 알고 화재 현장의 화염과 연기, 방사능으로 인한 빛기둥을 바라보는 이들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다리에 올라 발전소를 바라본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와 함께 화재 현장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밝은 표정은 잔잔한 소리와 함께 관객에게 제시되는데, 이는 실로 고요하면서도 폭력적이다.
소방관 '바실리 이바노비치 이그나텐코'와 아내 '류드밀라 세르게예브나 이그나텐코'의 이야기는 고통의 굴레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발전소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 바실리는 당연하게도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어 병원으로 실려가며, 끝내 참혹하게 죽어간다. 이런 그를 찾고자 류드밀라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며, 그와 절대 접촉하지 말라는 간호사의 말을 뒤로한 채 포옹을 나누고 그의 옆을 끝까지 지킨다. 그런 그녀의 몸에는 이미 그들의 아이가 있었고, 결국 아이를 보지 못한 채로 바실리는 사망한다. 그런 그를 포함한 피폭된 사망자들은 용접된 관에 들어간 채 콘크리트 속에 묻힌다. 그리고 결국 바실리의 옆을 지키던 류드밀라 또한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만, 이는 야속하게도 그녀의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아이는 태어난 지 수 시간만에 죽게 된다. 아이가 방사선을 모두 흡수하였고, 류드밀라는 홀로 살아남게 되었다. 바실리와 류드밀라의 이야기는 방사선이 퍼져나가며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피해를 세 명의 인물(바실리, 류드밀라, 그들의 아이)이 겪게 되는 고통의 고리 형태로 보여주었다. 참으로 잔혹한 이야기였다.
작품의 외적 배경은 발전소의 폭발과 이로 인한 방사선의 누출이지만, 근본적으로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자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내면적 요인은 거짓과 은폐로 점철된 체제였다. 윗선의 지시로 인해 미루어진 원자로 안정성 실험 시간, 이로 인해 투입된 실험 경험이 없는 노동자, 권위와 경력으로 노동자들을 밀어붙인 관리자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고, 결정적으로 원자로의 상황이 악화되어 긴급 정지를 수행해야만 했을 때 더 큰 재앙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상부에서 원자로 설계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숨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긴급 정지를 위해 수행한 행위는 사실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선택이었고, 끝내 발전소는 폭발하고 만 것이다. 어디랄 것 없이 하나같이 잘못된 톱니바퀴들은 맞물려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작품의 마지막 순간, 법정에서 판사에게 폭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레가소프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빚을 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청산의 날이 옵니다.
RBMK 노심이 그렇게 폭발한 것입니다.
거듭된 거짓으로 곪아버린 상처가 일순간 폭발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여기에서 악과 부패가 청산되고 새로운 미래가 열렸겠지만, 역사는 실로 아름답지 못했다. 진실을 말한 레가소프의 용기는 또다시 은폐되었고, 그는 산송장처럼 KGB의 감시를 받으며 여생을 살아가다 끝내 진실을 고한 채 자살한다. 이따금 진실은 그 어떤 비극보다도 절망적이다. 본 작품을 보는 동안 참혹했던 현실을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쓰라리고 답답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운이 굉장히 큰 작품이기도 했다. 실제로 벌어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민낯을 본 작품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영상미와 연기력 또한 탄탄하며, 다만 피해자들의 모습이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되므로 이런 점에 크게 두려움이 없다면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