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의 방 2

-억울

by 희수

선이와 커피숍으로 향했다. 서울에 올라온 후 처음으로 선이와 마주 앉았다.

" 희수야! 나 빵 좀 사줄래"

커피와 목화빵을 시켜놓고 선이를 쏘아보았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선이가 뜬금없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 아빠가 내 앞에서 죽어갔어, 살려달라고 하더라, 자기가 죽으려고 약 먹었으면서 학교 갔다 온 날 보더니

살려달래, 말이 돼?"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없었던 선이는 밝았다. 아빠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었다. 전혀 주둑들거나 어두운 구석이 없어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였다. 잠깐 충격은 받았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나를 흔들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선이에게 배신감이 더 컸다.

그렇게 선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 난 죽어라 공부했어, 잠도 실컷 못 자고...

남동생과 같이 자취하면서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동생 밥도 해 먹이고 도시락도 챙기고 교복도 빨아주고 한 방에서 말이야."

그랬다. 선이가 남동생과 자취를 함께 하면서부터 나와 친구들은 선이의 방에 놀러 가지 못했다. 아무리 동생이지만 성이 다른데 얼마나 불편할까 짐작만 했었다.

" 나도 서울로 대학 가고 싶었어, 충분히 갈 수 있었어, 근데 안된대, 동생 때문에. 걘 남자니까. 장남이니까, 장손이니까... 양보하래, 그래서 지방 국립대 갔어, 가서도 죽어라 공부했어, 장학금 안 놓치려고 죽어라 했어, 졸업하고, 임용고시도 1차 합격했다. 근데 2차가 없대, 안 뽑는데, 이 게 말이 돼"

IMF를 전후로 나라는 그야말로 어수선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망해버린 중소기업들, 그에 따른 자살한 가장들의 기사가 쏟아졌다. 선이는 반복적으로 " 말이 돼?"라는 말을 했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듯, 억울해 미치겠다는 듯...

그때는 선이의 이러한 푸념들이 와닿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니까,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자꾸만 곱씹게 되는 사연이었다. 선이의 청춘이 참으로 억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선이의 넋두리에 뭐라 대꾸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음날 다단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돌아가겠다고 직급이 꽤 높았던 여자에게 말하자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왜 이 좋은 기회를 놓쳐요. 희수 씨 인생에 엄청난 기회가 온 건데 안타깝다 진짜."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 결국 스스로가 부자 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거라니까"

여자는 날 한심하다는 듯 질책했다. 과하게 친절했던 그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참아왔던 화가 폭발했다.

" 그래요 내 복 내가 차고 난 집으로 간다고요."

내가 버럭 화를 내자 선이가 중간에서 난처한지 눈물을 보였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포섭하지 못해 우는 것인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이 씨를 위해서 여기서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인생의 기회인 척 말해 놓고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나를 배웅하며 선이는 계속 울었다.

선이는 왜 다단계에 빠졌을까?

과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선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최선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겠지.


살아가며 문득문득 선이의 고등학교 시절 자취방이, 김치 쪼가리를 나눠먹던 성남의 방이 떠오를 때가 있다. 삶이 고단하다고 느낄 때,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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