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에 대해 아시나요?
그루밍이라고 하면 보통 고양이가 생각나기 때문에, 얼핏 보면 고양이와 관련된 단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랑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그루밍족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을 뜻하는 말이죠.
예전에는 소수였던 그루밍족이 이제는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640억 원, 2021년 1조 751억 원, 2022년 1조 923억 원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년 약 100억에서 150억 정도 늘었기 때문에, 크게 임팩트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요인들을 살펴보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금방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사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동안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꾸미는 성별은 남성보다는 여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요 본능 중 하나인 '종족 번식' 및 '생존 본능' 때문입니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품고 낳는다는 것은 큰 신체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선사시대'를 생각해 보면, 험난한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가 생긴 것은 얼마나 큰 위험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성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고, 당연히 남성의 능력을 능력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남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지 못하고, 정자라는 매개체만 제공하는 존재입니다. 최대한 많은 정자를 퍼뜨리려는 본능이 있지만,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외적으로 매력적인 이성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외모'이고, 여자가 남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능력'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제 시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사실 성별을 떠나서 외모가 뛰어난 이성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남성에게 경제력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외모를 차순위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며 남자의 소득만으로 3~4인 가구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성평등 의식이 강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졌죠. 그래서 1995년 48.4%에 달했던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이 2023년에는 55.6%까지 올라갔습니다. 통계는 전체 여성을 기준으로 하니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비교하면, 신세대에서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돈을 벌며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스스로 능력을 가진 여성은 더 이상 남성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외모를 가진 이성을 선호하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의 변화는 당연히 남성의 변화를 이끌게 됩니다. 바꾸어가는 기준에 맞춰 점차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여성의 경제력 상승은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바로 남성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전통적인 남녀관계에서 돈을 쓰는 주체는 남성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경제력이 었었고, 상대적으로 이성관계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성의 능력이 강해지며 남성에게 집중되었던 경제적 비용이 나눠지게 됩니다. 과거에 100만 원을 썼다면, 이제 50만 원만 쓰면 되게 된 것이죠. 수입은 동일한데 지출은 감소하니, 자연스럽게 남성이 스스로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처분소득이 늘었다고 꼭 외모에 투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축이나 투자를 더 할 수 있고, 아니면 취미 생활에 돈을 더 사용할 수도 있죠. 그런데 뒤에 말씀드릴 3가지 요인으로 인해, 과거보다 패션과 미용에 투자하는 남자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남성이 이전보다 외모에 신경 쓰는 이유는 꼭 여성뿐만이 아닙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고령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젊고, 어리게 살고 싶어 합니다. 안티에이징, 저속노화에 대한 관심이 그래서 커지고 있는 것이죠. 길어진 수명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싶지, 그 누구도 죽지 못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동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선크림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화장품으로 확산됩니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한 번 관리를 시작해서 '습관화'가 되면 지속적으로 화장품을 소비하게 됩니다. 마치 스킨, 로션을 안 쓰던 사람도 바르듯 하면 계속 쓰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일단 '관리'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관리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처음에는 피부에만 신경을 쓰다가, 헤어스타일로 넘어가고, 자연스럽게 패션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보다 '그루밍족'이 많아지는 것이죠.
모두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하는 시대가 되며 외모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습니다. 물론 스마트폰이 확산되기 전에도, TV에 잘생긴 연예인이 항상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을 보며 스트레스나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애당초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SNS를 통해 잘생긴 일반인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애당초 잘생긴 사람이면 별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진짜 평범했던 사람이, 그리고 나와 비슷했던 친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눈에 보인다는 것이죠.
높아진 기준은 박탈감을 부르지만 동시에 투쟁심도 부릅니다. 그리고 투쟁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적극적으로 관리를 시작하며 '그루밍족'이 되어 갑니다. 그러면 관련 시장이 성장하는 것이죠. 트렌드가 되어간다는 것은 없던 것이 생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전보다 많아진다는 것이죠. SNS로 인해 모든 사람이 외모에 신경 쓰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많아지는데 기여했다면 하나의 요인으로 보기 충분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능력이 중요했다고 한들 이왕 사는 것 잘생기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남성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방법을 몰랐습니다. 예를 들어 내 두상에 맞는 헤어스타일이 뭔지,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명성 있고 유명한 미용실은 너무 비용이 비싸서 갈 염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효과가 확실하다면 돈을 투자할 수 있겠지만 그 변화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숏폼 영상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죠.
숏폼 영상의 등장은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동안 능력은 있지만 알려지지 못했던 수많은 전문가들의 바이럴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죠. 롱폼 영상은 제작 난이도가 너무 높았지만, 숏폼 영상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테이쏌'이라는 유튜버는 2024년 9월 기준 숏폼 콘텐츠로 조회수 355만 이상을 기록하였고, 2024년 예약 전체가 마감되는 신드롬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플랫폼 기업의 맞춤형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제공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쉽게 만나게 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루밍족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궁금한 내용을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자신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사실 그루밍족이 증가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남성 화장품 시장을 넘어, 화장품 시장 전체에 대한 전망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가구 구조의 변화도 화장품 시장에 웃어주고 있습니다. 출산을 하고 애를 키우면, 아무래도 외모에 신경 쓰기가 힘들어집니다. 개인의 시간과 돈을 아이에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성별을 떠나서 스스로에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기저귀, 장난감을 살 돈이 화장품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구구조가 변화하며 대부분의 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화장품 시장도 그 미래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적으로 '천천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K 컬처가 지속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한국 화장품이 글로벌 시장으로 성공적으로 나아간다면, 감소를 넘어 밝은 미래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수 시장에 갇힌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물이 말라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우물을 넘어 넓은 호수를 보고 있는 개구리는 우물 안 물의 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