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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렁이 Sep 02. 2024

빅데이터로 보는 '보리차'의 인기


트렌드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검색량'의 변화입니다. 


과거보다 관심이 많아지면 검색을 많이 하게 되고, 관심이 적어지면 당연히 검색을 적게 합니다.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만, 검색을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검색량의 변화를 보면 사람들의 변화하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양하게 변하는 검색량 키워드 중 최근 주목할 만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보리차'입니다


'갑자기 웬 보리차?'라며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200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가정에서 보리차를 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수기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수돗물을 끓여서 보리차로 먹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93년 9월 14일 '수돗물 하루 지낸 뒤 끓이도록' 기사를 보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생수, 정수기 시장이 성장하며 '보리차'의 수요가 줄게 되었습니다. 수돗물의 안전성이 걱정되어서 보리차로 먹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99년 8월 26일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동서보리차에서 매출이 감소하자 광고를 재개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점차 보리차를 끓여 먹는 문화가 사라지며, 보리차는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되는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죽은지만 알았던 보리차가 알고 보니 '트렌드'였습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보리차에 대한 검색량이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뿐일까요? 검색량뿐만 아니라, 실제 판매에서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오프라인 매장 기준 627억이었던 보리차 판매액이 2022년에는 762억 원으로 급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년 만에 무려 20%가 성장한 것이죠



출처 : 머니투데이(헛개·옥수수차 대신 '보리차·홍차'…마시는 차 달라졌다 왜?)



그러면 사람들이 왜 보리차를 다시 찾게 된 것일까요? 각종 데이터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보리차의 성장을 보려면, 보다 큰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국내 차(tea)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1조 20억 원에서 2022년 기준 약 1조 2870억 원으로 28%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커피'의 성장입니다.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차 시장과 발맞춰 성장했습니다. 2018년 기준 약 2조 5729억 원에서 2022년 기준 약 3조 1717억 원으로 23% 이상 늘어난 것이죠. 그런데 커피가 차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기에, 차의 성장을 이끈 것일까요?


커피는 한 번 먹게 되면 카페인의 중독성으로 하루 1잔 이상 먹게 되는 '기호 식품'입니다. 그래서 락인 효과가 굉장히 강한 제품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항상 따라오는 부정 이슈가 바로 '건강'입니다.


커피가 몸에 좋냐, 나쁘냐를 살펴보면 워낙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은 커피를 '너무 많이' 먹거나 또는 '너무 늦게'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집에서 아침에 커피를 먹었는데 뭔가 마실 것이 땡길 때, 또는 오후 늦게라도 카페에 간다면 커피 대신 뭔가를 먹어야 합니다. 스무디같이 달달한 것을 먹기에는 당 성분이 걱정됩니다. 그럴 때 소비자가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차'였던 것이죠. 차에는 커피와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음료였고, 동시에 다른 달달한 음료에 비해 몸에도 좋았습니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썸트렌드에 따르면 '마시다'에 관한 언급량이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중독성 있는 커피의 보편화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마시는 행위'에 습관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먹지 않더라도, 무언가 대체제를 찾아서 '마시고자'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죠. 


결국 커피의 성장은 마시는 습관을 가져와서, 커피의 대체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차' 시장의 성장도 동시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건 차(tea)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차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홍차, 보리차, 녹차, 옥수수차, 둥굴레차, 꿀차, 결명자차 등.. 어떤 차는 성장하고, 어떤 차는 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수많은 차 중에서 보리차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일단 보리차의 증가는 '카페'가 원인이 아닙니다. 카페에서 먹는 티 음료 중에 '보리차'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 메뉴판을 보아도, 보리차는 없습니다. 보리차 맛집이라는 단어로 키워드를 살펴봐도, 전혀 유의미한 데이터를 보이고 있지 않고요. 





그러면 보리차는 어디서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카페가 아닌 '집', '회사', '학교'에서 말이죠.


한때 생수의 인기에 밀려서 시장이 잠식되었던 '보리차'가 어떻게 다시 성장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보리차를 밀어냈던 '물'에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 그리고 고령화로 인해 사회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건강을 위한 다양한 담론들이 활발하게 등장하는 가운데 '물'도 주목받았습니다. 물을 하루에 2L 정도는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물'을 계속 꾸준히 먹기에는 생각보다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맛이 없고, 계속해서 먹기에는 뭔가 물렸기 때문이죠. 


요즘 식음료 시장을 강타하는 트렌드 용어는 '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라는 뜻의 '헬시 플레저'(health pleasure)입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님이 저서 트렌드코리아에서 2022년 10대 트렌드로 선정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트렌드코리아는 출시하자마자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그렇다고 트렌드코리아에서 말한 키워드가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키워드는 그때 잠깐 이슈가 되었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런데 헬시 플레저는 지금까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짚었다는 것입니다.


제로 음료의 유행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맛있어서 달달함을 원하지만 동시에 건강 때문에 원하지 않습니다. 성분이 뭔가 찝찝하긴 하지만 제로 음료는 딱 그 중간에 있습니다. 달달하면서 적어도 그냥 음료보다는 건강하게 느껴지죠.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건강에 좋습니다. 하지만 계속 먹기에는 맛이 없고, 물립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 지점은 어디일까요? 바로 '보리차'였습니다. 예전에 물에 대체되었던 보리차가, 트렌드의 변화를 타고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관련 기사를 보면 생수 열풍에 건강에 좋은 보리차가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건강이나, 아이 등 가족의 건강을 챙기기에 제격인 음료였던 것이죠. 


이런 모습은 실제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썸트렌드에서 생수, 물에 보리차가 나온 데이터를 살펴보면 202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최저점 대비 2023년 기준 약 5배 많이 언급되고 있죠.





꾸준히 먹는 음식이 되려면 건강도 건강이지만 사람들에게 친숙해야 하며 맛이 자극적이거나, 비싸면 안 됩니다. 낯선 음식은 애당초 손이 가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은 반복적으로 먹을 수 없으며, 비싼 음식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죠.


보리차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음료였습니다. 청년 세대는 어린 시절 부모님 밑에서 보리차를 먹으며 자라왔고, 기성세대는 수돗물을 끓여 먹으며 보리차에 익숙했습니다. 보리차는 고유의 풍미가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먹기 충분했고, 가격도 비싸도 '커피'수준으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보리차'는 어떻게 될까요?


보리차라는 음료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바로 '중독성'이 없다는 것이죠. 그 말은 '습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성장하기보다는, 보리차를 둘러싼 다른 요인이 중요합니다. 


결국 커피와 물에 대한 사람들이 생각이 어떤 식으로 변하느냐에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일단 디카페인 음료의 확산은 보리차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카페인에 대한 경계심이 훨씬 줄어들며, 대체제로 주목받은 '차'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물의 대체제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데 애당초 건강을 위해 물을 먹는 것은 '지성의 소비'에 속합니다. 마음과 몸으로 습관화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수분 섭취가 건강에 좋다'라는 지식으로 행동하는 것이죠. 지성의 소비는 소비를 일으키는 강력한 원인이지만,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약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보리차는 장기적인 성장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수준에서 정체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제 판단이 틀렸는지 회고하는 글로 돌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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