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다
SNS는 사람과 사람을 고도로 연결시켰다.
그에 따라 여러가지 장점과 문제점이 발생했다.
SNS는 두산백과에 따르면 웹상에서 이용자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개개인은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을 지닙니다. 그러기에 SNS의 본격적인 발달은 개개인에게 스마트폰이 쥐어질 때 나타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SNS는 존재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싸이월드입니다.
SNS를 세대별로 나누기도 합니다. 1세대 SNS는 싸이월드 같이 제한된 관계를 특징으로 합니다. 2세대 SNS는 페이스북과 같이 참여공개형으로 불특정다수와의 관계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3세대는 개방에 지친 사람들이 필요한 사람과 알고 싶은 것만 찾고 싶은 욕구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스냅챗이나 스노우 같이 폐쇄형·특화형 입니다. 기업들은 계속해서 틈새시장을 찾고 있습니다.(특정 관계 중심 - 사업자·커플·직장인, 보안특화, 특정 주제 중심형, 세대별 특화 )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SNS의 목적은 관계이기에 한 번 권력이 넘어가면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SNS를 찾을만 합니다.
SNS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며 인간관계를 확대시키게 되었고, 사회적 참여가 확산되었습니다. 서로 독려하여 투표율이 증가하여고, 중동에서는, 자스민혁명이 일어났으며, 트위터를 통해 정치자금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고민을 상담하면서 위안을 얻고, 긴급상황에 대처하며, 사회적 의제를 형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다 SNS를 통해 개인들이 다른 개인과 연결되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쌍방향 소통을 하기 떄문입니다. 그에 따라 SNN는 직접민주주의를 가능케하는 소통의 도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SNS에서 첫째. 사람들은 정보와 사람을 취사선택합니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편한 사람하고만 모이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곧 다수이며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인 높습니다. 즉 인지왜곡에 따른 확증편향이 일어나 SNS가 공론의 장이 되는 것이 아닌 극단적 대립의 장이 됩니다.
둘쨰. SNS의 주요 이용자는 10대~40대로 전체 국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올리는 사람만 올리고 나머지는 남들이 올리는 것을 보는 침묵하는 다수가 상당수입니다. 즉 일부의 의견이 과대대표되어 여론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언제든 조작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권위보다는 SNS에서 확산되는 의견이나 생각을 보다 신뢰합니다. 2017년 9월 11일 인터넷에 올라온 240번 버스기사 사건은 여론이 어떻게 선동당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사람들은 맛집 검색, 배달앱 후기를 믿을 수 없다고 많이 말합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정보의 검증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SNS는 관계라는 고유 목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모이니 대화를 넘어 게임, 쇼핑, 금융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다루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페이스북, 한국의 카카오톡, 중국의 위쳇을 보면 SNS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생태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이용자를 확보하며 광고와 콘텐츠를 팔아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기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등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SNS는 사적(일기장)이면서 공적(광장)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첫째. 과장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SNS에 선택적으로 노출합니다. 일부는 유난히 과시-과장하기도 하겠지만, 그럴 목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굳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이려하지 않습니다. 즉 SNS는 이상적인 모습만 가득하게 됩니다.
자신을 유난히 과시하는 이용자들은 '현실의 나'와 'SNS에서의 이상적인 나' 사이에 대한 괴리가 발생합니다. 우월욕망과 인정욕망이 충족되나 그것은 진짜 자기 자신이 아닌 인터넷 상 콘텐츠로 존재하고 증명되는 것입니다. 자아불일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남들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비참한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즉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박탈감은 가까운 지인들과 비교할 때 극대화 됩니다. 경쟁사회의 속성이 그대로 들어나는 것입니다. 행복을 증명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좋아요에 목을 매고 그것을 조작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세컨드라이프 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수많은 욕망들을 충족하곤 합니다. 드라마, 로맨스웹소설,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합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현실의 나와 달리 최상위 랭크유저일 수 있습니다. SNS도 그런 욕망이 분출된 것입니다.
둘째. 축소가 들어갑니다. 상대의 평가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으니, SNS가 자기 필터링 공간화가 되는 것입니다. 주위 관계가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은 삼키게 됩니다. 그에 따라 말을 자유롭게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 익명성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분출됩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 댓글입니다. 접근이 쉽고, 큰 노력은 필요 없으니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은 증오의 번식처가 되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치, 성, 인종 등에 대한 차별-비하-혐오 표현이 만연하고, 각종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아무래도 좋은 일보다는 억울한 일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감이 커지게 되는 것이죠.
또한 SNS의 연결성은 개인에게 피로감을 줍니다. 사람은 혼자있고 싶을 때가 있고,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한데 과도하게 사생활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시때때로 직장으로 부터 연락이 와서 업무와 개인시간과의 경계가 무너지기도 하고,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연락을 유지해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권력관계가 그대로 SNS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폐쇄형, 익명 SNS가 등장하고 나아가 아예 연결되지 않은 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SNS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은 결국 현대사회의 파편화, 개인화에 따른 관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SNS는 파편화, 개인화에 대한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결과인 것입니다. SNS가 없었어도 주택인 농경사회에서 아파트인 산업사회로 넘어간 사람들에게 외로움은 커졌습니다.
계속해서 거세지는 경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수천명에 이르는 SNS 친구를 맺기도 했지만, 결국 부질없는 관계로 공허감만 커집니다. 양적으로는 크지만 질적으로는 굉장히 느슨한 연대인 것입니다. 하지만 던바의 수에 따르면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치는 150명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