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5월이었다.
정말 날씨가 너무한다 싶다.
자연은 인간이 너무한다 싶겠지만.
더위를 유달리 많이 타는 가족들은
급히 선풍기를 찾았다.
5월에 선풍기라니.
이제 슬슬 선풍기들을 꺼내야겠다
특히 남편은 더위를 아주 많이 타서,
더우면 얼굴을 구길 수 있는 만큼 다 구겨서
더러운 인상을 만든다.
아주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선풍기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다.
절대로 선풍기를 겸상하지 않는다.
나한테만 집중하는 선풍기가 좋다.
내 침대옆에 한대,
남편잠자리에 한대,
아이들 방에 한 대씩,
소파옆에 한대,
식탁옆에 한대.
선풍기 필요한 장소로 옮기는 게 귀찮고.
니 선풍기네, 내 선풍기네 하는 작은 일에
마음을 소란하게 쓰고 싶지 않아서,
필요한 위치에 마침맞게 자리하고 있다.
7개의 선풍기가 에어컨바람을 퍼 나르며
가족의 심신안정을 지지한다.
우리 집 여름평화수호자 선풍기들!
선풍기는 소중하다.
팬트리에 있던 선풍기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깨끗하게 닦았다.
근데 내선풍기가 보이지 않는다.
가족들의 선풍기는 다행히 다 있다.
내 선풍기가 어디 갔지? 어딘가에서 나오겠지
하며 넘겼다.
일단 깨끗이 닦은 선풍기들을
남편자리와 아이들 자리에 가져다 놓고
고장 난 곳이 없는지
팍팍 바람을 잘 불어내는지 시험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둘째와 막둥이 거는 많이 낡아서
내년에는 새 선풍기로 바꿔줘야겠다.
남편 선풍기는 풍향설정이 안 되네.
작년 캠핑장에서 떨어뜨려 고장 냈던 일이 생각났다.
음..... 한 방향으로만 불면 되니까, 남편 거니까,
새로 장만하지 않아도 되니
선풍기점검이 끝났다.
이제 내 선풍기만 찾으면 된다.
다시 팬트리를 구석구석 뒤져보고,
앞뒤베란다에 있을 만한 곳을 다시 뒤진다.
안 보인다.
남편한테도 혹시 내선풍기를 가져갔는지 물어보고
(가져갈만한 사람은 남편밖에 없으니까),
남편이 아니라고 해도 다시 물어보고 확인한다.
물건이 없어지면 왜 꼭 자기한테 물어보냐며 미간을 구기는 남편!
미심쩍지만 남편을 이번에도 믿어 본다.
어디에 있지?
선풍기야! 어디에 있니?
새로 장만해야 하나?
이 선풍기와 같이 한 시간이 10년 차인데.
정든 친구가 소식이 끊겨 아쉬운 느낌이다.
찾다가 안 보여 말았다.
다행히 일찍 찾아온 더위가 살짝 수그러 든다.
다시 청량해진 5월.
6월이 왔다. 다시 더워졌다.
내선풍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못 찾겠다.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다.
요 녀석이 어디 갔지?
포기하고 새로 사야 하나.
남편한테 한번 더 물어볼까 하며 고민했다.
며칠 뒤 샤워하고 내 침대에 털썩 눕는데,
거짓말처럼 내선풍기가 침대옆에 다소곳이 서 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작은 책장과 서랍장에 가려 잘 안 보였던 거였다.
아니다.
조그만 마음 쓰면 잘 보이는 곳에서
선풍기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났음. 작년에 가족선풍기를 펜트리에 다 넣어놓고,
내 선풍기는 둘만한 자리가 없어서
내 침대옆에 그대로 뒀었다.
선풍기는 누가 가져가지도 않았고,
8개월가량 그 자리에서
벽지처럼 익숙해져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거지.
침대밑이 어두웠다.
절실해지니 선풍기가 보인다.
선풍기는 저를 분주히 찾는 나를
서늘한 바람을 품고 지켜보고 있었다.
나만 선풍기를 몰라봤을 뿐,
이런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