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딸과 긴 통화를 하다
-내가 통화한 시간을 보니까,
29분이나 딸과 이야기한 거야.
-우와. 29분이나!
-응! 쫑알쫑알 어찌나 말이 많은지!
-자기 기분 좋겠다.
내가 들어도 기분 좋은데 자기는 얼마나 좋을까.
딸이랑 얼마 만에 통화한 거야? 처음 아냐? 무슨 이야기했어?
-이것저것 물어보는지, 말이 많더라고(들뜬 목소리이다)
나는 다 알고도 모른 척, 처음 듣는 척하고 더 물어본다.
남편이 더더 마음껏 자랑하도록 말이다.
기뻐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디테일하게 더 물어주는 것이 기분 좋은 배려다.
남편은 딸과의 기분 좋았던 대화를 떠올리며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어제 딸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공강시간인데 심심하단다.
엄마는 지금 바쁘니까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딸은 그럴까요하며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그렇게 남편과 딸은 처음으로 전화로 긴 대화를 했다.
딸은 궁금했던 아빠의 일상을 묻고,
평소 말이 없던 남편도 딸이 좋아할 만한
광고촬영현장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줬다.
딸은 아빠의 말을 기꺼이 들었다.
딸도 아빠와의 통화가 기분좋았나 보다,
아까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신나게 말했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남편은 감동을 받았고 나도 가슴 뭉클했다.
딸의 사춘기 때 남편과 딸은 각자 본인의 감정에 못 이겨
물건까지 집어던지며 싸울 정도로 치열했다.
부녀가 치열하게 싸운 이야기는
둘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충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다.
딸은 중2병에 제대로 걸린 데다,
페미니즘에 심취한 딸은
아빠의 가부장적인 행동들을 못마땅히 여겨 사사건건 덤벼들었고,
남편은 딸의 그런 행동을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남편은 부모로서 딸에게 제대로 훈육하려고 들었고.
딸은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지 않고 타박타박 대꾸했다.
평소의 책을 즐겨 읽던 딸은 고급 단어와 선량한 단어를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들어 덤볐다.
엄마, 아빠, 외삼촌, 이모는 모두 다 암묵적으로
내가 선량한 장녀로 엄마처럼 살길 바라는데
그건 옳지 않아요!
라고 지껄여, 나름 열심히 살아낸 내 삶을 비방하는 것처럼 보였고,
왜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다 하고 아빠는 집에서는 가만히 쉬기만 하죠!
가만히 쇼파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남편은 얼굴을 붉히며 딸에게 보란 듯이 텔레비젼을 꺼버렸다.
그래 맞다. 딸이 말한 집! 안! 일!로 결혼하고 많이도 싸웠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혼생활이 아니라며 억울해했던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싸우다 지치고 포기하고 이렇게 자리 잡은 거지.
하지만 딸의 말에 말리지 말자. 정신 차리자.
아빠는 힘들게 돈 벌어오잖아.
직장생활은 힘드니까 집안일은 엄마가 하는 거지.
가족은 서로서로 도우면 사는 거야.
엄마도 나가서 돈을 벌 수 있어.
하지만 아빠가 더 많이 돈 벌 수 있으니까,
엄마가 집안일하는 게 합리적인 방법이야.
라고 최대한 다정하게 말하면.
엄마! 사회구조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임금을 훨씬 더 많이 받아요!
여자의 경제자립을 제약하는 거라고요!
여자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월급을 얼마나 적게 받는지 아세요!
이 사회가 얼마나 여자에게 부당한 줄 아냐고요!
등등등......
아이휴...... 한숨이 나왔다. 어찌 보면 다 맞는 말만 한다.
화를 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려고 할수록 내 말발이 딸렸고, 내 말이 꼬였다.
지나 저나 화를 돋우는 말만 쏟아내고 결국 내가 딸의 등짝을 한 대 때리며 끝났거나,
딸은 자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며 끝났다.
이렇게나 미친년을 내가 낳았다고!
이런 와중에 남편이 나 도와준답시고
이 논쟁? 에 끼어들었다가 혼자 제대로 피박독박 쓴다.
남편대로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랐다.
요즘말로 치면 남편은 지가 관식('폭삭 속았수다'의 아버지)처럼
살아내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며,
딸들은 다 금명(폭삭 속았수다'의 딸)처럼 크는 줄 알았던 거지.
남편은 딸에게 말로도 안되지.
몸으로 싸울 수도 없지,
울그락불그락 입을 씰룩대며 화를 내다 삭이다를 반복했다.
나는 중간에서 남편도 달래야지, 딸도 달래야지. 미칠 노릇이었다.
셋다 지쳐가던 시기였지.
남편은 딸바보였고 지금도 딸바보다.
남편은 어린 딸을 보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자주 얘기했다.
남편의 바람을 알던 나는 마음 아팠다.
내 갑갑증만 쌓이며. 이런 생활이 3년 정도 이어진다.
남편과 딸은 수차례 둘이 싸운 후 사이는 급격하게 멀어졌다.
남편은 회사술자리에서 딸이 고등학생이라고 하니까
지금 원수지간이겠네, 버티면 돼, 기다려라는 조언을 들었고
주변에서 딸은 참아주고 기다리면 철이 들더라며
어마무시한 대학등록금을 보면
아빠가 돈 번다고 고생하는 거 알아주는 거 같다는 말들이 위로되었다.
딸이 난리 쳐도 한숨만 쉬며 참아주기 시작했다.
점점 싸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딸은 스무 살이 되면서 철이 들고 천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가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게 되면 한 개만 사지 않고
동생들이 좋아하는 컵라면까지 사게 된다며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이 전에 만큼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은 K-장녀가 되어가고 있는 거지.
문제는 남편과 딸은 둘 다 너무 치열하게 싸운 탓에 내외한다는 사실이다.
서로에게 사과하며 화해할 시간을 놓쳤고,
너무 미안하면 사과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게 힘든 가 보다.
남편과 딸은 서로에게 물어볼 게 있으면 나를 통해서 물었고,
버젓이 같은 장소에 있더라고 서로의 눈을 피하며 먼 곳을 바라보며 대화를 한다거나,
개톡으로 나에게 서로의 근황을 물어봤다.
이이휴..... 이것도 미칠 노릇이다.
내가 바라던 부녀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애쓰면 나아지는 관계가 아닌 듯했다.
나는 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주기로,
시간이 약이 되길 바랐다.
드디어 남편과 딸은 나 없이도 편안하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중3 막둥이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어깨를 힘껏 내리고 맥 빠진 눈으로 귀가하는 막둥이.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도 얼굴표정이 보인다.
나 겁나(존나) 힘드니까 말 걸지 마세요라고.
나에게 화난듯한 목소리로 뚱하게
다녀왔습니다. 너무 더워요.
하며 방문 닫고 들어가 버린다.
처음이 힘들지 곧 익숙해진다고들 하지만,
타격감은 약할지라도 여전히 아프다.
첫 번째의 사춘기 보다는 나는
여유 있지만 결심만큼 유해 지지 않는 듯하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