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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Feb 08. 2023

호주에서 깨달은 진짜 내 가치관

이 글은 호주에서부터 시작되어...

며칠 전 3주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11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거쳐서 도착한 곳은 호주. 아래로 내려간 김에 뉴질랜드에서도 지내고 돌아왔다. 드넓은 자연환경과 코알라, 캥거루, 커피와 카페들, 트램과 더운 날씨를 제쳐두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자연과 동물 보호'이다.



01.

디카페인에 오트밀크로 변경한 라테 주세요. 


나는 채식주의자의 어떤 단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 식단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 보다는 야채를 많이 먹고 빨간 고기를 적게 섭취하는 편인 것 같다. 이는 나의 어떤 가치관이 들어간 행동이 아닌 그저 '내 몸에 잘 받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서' 시작된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라 주로 야채와 생선을 많이 먹는 편이고 빨간 고기는 달에 몇 번 먹지 않는다. 우유도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편이라 우유가 들어가는 음료의 경우 오트 밀크나 두유로 변경해서 마신다. 치즈나 푸딩, 빵에 들어간 우유는 피하지 못하고 먹는다. 직접적 섭취가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탈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나에게 다이어트하냐고 물어보고 누군가는 조금 까다롭다고 얘기한다.


이런 내 식습관은 한국에서는 실행되기 꽤 불편한 편이다. 식당은 많지만 카페가 그렇지 않다. 카페인도 못 먹는 나에게 '디카페인에 오트밀크로 변경한 바닐라 라테'를 파는 카페를 찾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카페는 두 가지 모두가 안되거나 한 가지만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몇몇 프랜차이즈 카페나 개인 카페에서 우유와 원두의 다양화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식습관 + 후천적으로 생긴 가치관의 변화 때문에 조금씩 환경과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는 아직 용기가 많이 필요한 환경이다.



02.

호주에 가다 


호주는 커피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맞는 카페 찾기 힘든 나에게 카페 투어란 취미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드니의 카페에 들어선 나는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메뉴판에 vg(비건) / gf(글루텐프리) / oat milk 등의 표시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와 여긴 천국인가?'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본 다른 카페도 같았다. 시드니, 골드코스트, 브리즈번을 돌아다니며 간 모든 식당, 카페에서는 비건과 글루텐 프리 메뉴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듯이 있었고 오트밀크 변경옵션은 메뉴판에 적혀 있지 않아도 '당연히' 가능했다. 나에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찾지 못하는 날이 있어 결국 스타벅스로 향하는 나에게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내가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있다는 것이. 호주에서 1일 2 바닐라 라테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니. 천국이었다.


디카페인 바닐라 시럽 추가 오트라떼!


두 번째 충격은 마트에 갔을 때였다.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그 나라의 마트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구매할 수 없는 과자들이나 간식들도 맛보고, 특이한 소스들도 구매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참치캔도 구입하고 계란도 구입하고 물도 구입하는 도중 발견한 공통점. 플라스틱 용기는 모두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용기인 데다 참치캔은 자연포획한 참치로 만들었고 계란은 정부에서 닭장을 금지시켜 한 사람당 1팩씩만 구입할 수 있는 상황.


여기저기 붙어있는 문구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집은 물건들에 환경과 동물보호에 대한 메시지가 숨어있었다.(심지어 나는 같은 음식군 중 저렴한 것만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브랜드는 다 쓴 플라스틱병을 회사에 직접 보내주면 그 플라스틱을 다시 재활용하여 물건을 만드니 보내달라는 코드도 인쇄되어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화장품이나 바디용품 같은 경우 비건/동물실험 반대 브랜드를 찾기 힘든데 이곳에는 아주 많았다. 아니, 통에 비건이나 크루얼티 프리 표시가 된 것을 찾기가 너무나도 쉬웠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면 환경을 망치고 나도 모르게 동물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 아무 생각 없이 내 일상을 지속하는데 나도 모르게 환경을 위해 무언가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오묘했다. (물론 아예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곳에 이민 오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곳이라면 내 가치관을 좀 더 쉽게 용기 있게 실천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실천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두 번째로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03.

수동적 가치관의 위험성 


나의 작고 용감한 노견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서 나의 동물 사랑은 조금 더 심해졌다. 나중에 다시 똘이를 만났을 때 떳떳한 누나가 되기 위해서 나와 동생은 똘이 이름으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둘이서 매달 꼬박꼬박 저금해서 1년에 한 번 똘이 기일에 동물 보호를 위한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동물 보호 활동을 수동적/능동적 활동으로 나누자면 내가 하는 활동은 수동적 활동이라고 생각된다. 금전적 기부로 현장에 나가지 않는 나의 현실을 자위하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도 다녀왔다. 대학시절 몇 번 다녀왔었는데 오랜만에 하게 된 현장 봉사는 기억만큼 치열했다. 현실이었다. 통장으로만 응원하던 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좁고 냄새났다. 봉사 오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환경.


여행 전 다녀왔던 유기견센터 봉사


지구를 위한 행동에도 나는 수동적이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배달음식을 줄이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환경에 관한 뉴스와 책을 읽지만 행동으로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텀블러는 항상 무겁고 샴푸통 리필은 귀찮다.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덥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마트도 차를 끌고 간다. 내가 환경을 생각한다는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 마치 내가 활동을 하는 것처럼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부끄럽다.


지금부터 나는 지구에 도움이 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능동적 활동들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어떤 선언을 한다기보다, 기록을 한다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내가 또다시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 한 달, 일 년 동안 아주 조금씩 하나하나씩 바꿔나갈 생각이다.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 팁들, 느낀 점 등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 기록이 나와 같은 생각과 반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용기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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