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오늘 안녕한가요?
결말은 예견돼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험난할 것이고 어떤 이유로든 지루할 게 뻔한 이 미션의 결말에 대해 셈 빠르고 영악한 나는 출발선을 떠난 지 얼마 안돼 금세 눈치챘다.
더 가볼 필요도 없이 이미 망조라는 걸. 젠장.
그리고 어느새 미션의 전반전이 끝난 지금 잠시 숨을 고르며 내 지난 경기를 복기해 보자니 죽자고 달려 지금에 이르렀으나 사실 뭐 이렇다 할 성과나 기록은 전무하다.
이 내 허접한 기록보다 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건 지난 경기를 통해 경기 운용 기술이랄까 경기력이랄까가 향상됐어야 할 터이나 후반전에 더 나은 기량을 발휘할 확률은 0에 수렴할 것이라는 내 이 황망한 확신이다. 분명 언젠가 참으로 판명될 소름끼치토록 정확할 이 내 육감말이다.
그러나 이 저조한 성적은, 이 우울한 망조는 비단 실력 없는 선수 탓만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일견 거창해 보이는 이 미션에서 허접한 선수 기량보다 더 큰 리스크는 참가자인 내가 이 미션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 게임의 룰은 무엇인지, 의의는 무엇인지, 순위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혹여 순위권에 들면 상금이라도 있는 건지, 낙오하면 패자 부활전은 있는 것인지 등등 나는 이 미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당신도 그렇겠지만.
그리고 지난 반백 년 간 나는 게임의 규칙도 모른 채 이 살벌한 정글에 무심히 내던져졌다. 당신도 그렇듯이.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나도 할 만큼은 했다. 진짜다.
지난 시간 이 미션의 룰을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책더미를 헤집었고, 스승을 수소문하기도 했으며, 가부좌 틀고 앉아 면벽 수행도 해봤지만 모두 다 소용없었다.
혹자는 왼쪽 길로 가보라고도 하고 혹자는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답이 있다고 해 함부로 그 길을 따라가 보기도 했지만 별 소득 없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맞다. 답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불안불안한 미션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렇게 황당무계한 미션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오로지 이 미션에서 명확한 것은 단 하나, 내가 죽자고 달려가는 이 미션의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것뿐이다.
왜 아니겠는가. 죽자고 딜렸으니 그럴 밖에.
Memento mori(네 죽음을 기억하라)! 젠장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죽음에 이르는 그날까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살아내는 이 미션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끝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사피엔스로서 존재하는 나의 사명이며 소명일 테니.
비록 이 삶이 니체가 말한 영원 회귀일지라도 결국 니체의 결론처럼 내 운명을 긍정할 밖에, 어쩔 도리 없이 사랑할 밖에.
그러니 그저 묵묵히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갈 밖에.
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 젠장
물론 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란 게 뭐 그리 거창하거나 심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이 목적 없는 세계에서 행복을 좇은 무례한 사피엔스로서 이 무례를 송구스러워하며 기꺼이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걸.
그러니 나는 이쯤에서 결심하기로 한다.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도 돌을 굴리기로 선택한 시지프스처럼
그러니까,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돌을 굴리지 않는 선택을 하지 않은 시지프스처럼
어쩐지 무쓸모해 보이는 이 미션을 조금 더 명랑하게 수행해 나갈 것을.
난 원체 무용(無用)한 것을 좋아하니 이 무용한 어제를,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제법 잘 견딜 수도 있을 듯 해서.
그리고 다행히
이 영겁의 시간과 광활한 우주를 건너는 이 막막한 여정에 당신이란 동행도 있으니.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우리 은하 같은 은하가 약 2조개쯤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우주 전체에는 약 10²⁴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이는 지구상 모든 해변의 모래알을 모아도 감당이 안 되는 숫자라고 한다.
범위를 좀 더 좁혀 보자.
우리 은하만 놓고 봐도 우리 은하 안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약 4,000억 개쯤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별들 중 70~90%가 행성계를 보유하고 있다 하니 우리 은하에만도 태양계 같은 시스템이 수백억 개나 존재하는 셈이다.
도대체 가늠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무시한 숫자다.
그리고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 은하, 거기서도 또 태양계, 또 그중에서도 지구라는 작고 작은 행성 위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시스템 고장을 각오하고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찍은 광활한 우주 위 겨우 0.12픽셀 크기의 창백한 푸른 점 위에 당신과 내가 지금 함께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 지구상 수많은 생명체 중
검은코뿔소, 그레비얼룩말, 스노 레오파드 같은 멋진 포유류도 아니고
레코아나 레드트리나 블루 푸아푸아, 혹은 고스트 오키드 같은 희귀 식물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사피엔스로서 오늘 여기 함께 있다.
기어이 나와 당신은.
그러니
이 빌어먹을 기적같은 여정에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친절하며
조금 더 애틋하며
조금 더 사랑스러운
길동무였음 한다.
그리하여
기꺼이 나는 궁금해하기로 한다.
이토록 시끄러운 고독 속에
그대 오늘 안녕한지
이다지도 고요한 파란(波瀾) 속에
그대 내일 평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