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는 1994년의 카리나와 마르쿠스 남매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훨씬 더 오래 전인 16세기, 대서양이 아직 두 세계의 경계였을 때로 거슬러 간다.
포르투갈인들은 일찍부터 바다만이 살아남을 강력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유럽인들이 달콤한 갈대라고 불렀던 사탕수수는 뉴기니에서 최초 재배되어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을 거쳐 십자군 원정때 유럽에 알려졌으나, 기상 조건때문에 재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15세기 중반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던 포르투갈인들은 다데이라, 카나리아, 상투메 같은 대서양의 열대 섬에서 사탕수수의 재배가능성을 보았다. 부와 권력을 가져다 주는 사탕수수가 자라는 데는 뜨거운 햇볕과 습한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 끝없이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일할 그 사람들을 서부 아프리카에서 데려왔다.
리스본의 배들은 앙골라와 콩고의 해안에서 사람을 실었다. 수십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죽은 자도 많았고 살아남은 자도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바도르에 내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몸 안에 전부 가지고 왔다. 리듬과 노래, 그리고 신을.
사람들이 배에 실릴 때, 세무는 함께 실렸다. 쇠사슬이 묶을 수 없는 것이었다.
리듬은 기억이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뺏을 수 없다.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마르쿠스 남매의 먼 조상은 16세기 초 오월의 한낮, 앙골라 어느 해안 마을에서 잡혔다. 그가 배에 오를 때 마지막으로 한 것은 놀라 울면서 발을 구르는 것이었다.
당시의 브라질 수도 살바도르는 최대의 노예 수입처였다. 살바도르가 있는 바이아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은 끝없이 사람을 삼켰다. 하지만 농장 밖, 밤이 오면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 출신들이 모여 각자의 리듬을 꺼냈다.
앙골라의 세무, 요루바족의 북, 서아프리카의 기도 노래. 그것들은 충돌하다가 섞였다. 그리고 포르투갈어가 그 위에 얹혔다. 가톨릭의 성인(聖人) 이름 아래 숨겨진 아프리카의 신들이 춤췄다.
그 둥근 원, 호다(Roda)에서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돌았다. 원 안으로 한 명씩 들어가 춤을 추고 나왔다. 삼바 드 호다다. 삼바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훗날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고 불렀다.
카리나의 먼 조상은 그 원 안에 서 있었다. 갸날픈 그녀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춤이 있었다. 호다 안에서는 누구든지 이름으로 불렸다.
1888년. 남미에서 가장 늦게, 브라질이 노예제를 폐지했다. 해방된 흑인들은 오랜 터전 바이아를 떠났다. 새로운 수도 리우 데 자네이로의 금광과 커피 농장이 그들을 불렀다. 그들은 리우의 빈민촌(파벨라:Favelas)과 언덕 위 산동네(모후:Morro)에 정착했다. 짐은 없었지만 바이아에서 살바도르로, 살바도르에서 세월을 거쳐 몸에 새겨진 것들은 함께 왔다. 리스본의 파두가 떠난 이를 기다리는 항구의 고독이라면, 리우의 삼바는 모여든 이들이 함께 견뎌내는 항구의 연대였다.
항구 근처에는 티아 씨아타(Tia Ciata)라는 여자가 살았다. 바이아 출신의 그녀는 집 뒷마당을 열었다. 경찰의 탄압을 피해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동가(Donga)와 그의 친구들은 거기서 삼바를 만들고 노래했다. 뒷마당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리듬이 출산되었다.
바이아의 원초적 로다가 리우 항구의 잡다한 소음, 도시의 세련미와 충돌했다.
리우 시민의 삼바. 삼바 카리오카. 우리가 '삼바'라는 단어를 들을 때 귀에 울리는 바로 그 리듬.
마르쿠스와 카리나의 조상들은 티아 씨아타의 뒷마당 어딘가에 있었다.
리우 북쪽 언덕배기에 붙은 판자촌 파벨라는 언덕을 먹고 자란다. 브라질 사람들은 그것을 호시냐라 불렀고 거기 사는 아이들은 그냥 '여기'라 불렀다. 그 '여기'에 한 세기 전 살바도르에서 온 핏줄들이 살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열두 살이었다. 발에는 반짝이는 게 없었고 배에는 넉넉한 게 없었지만 두 눈은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축구공 하나. 아버지가 남기고 떠난 유일한 것. 가죽이 닳았고 공기가 조금 새어 공이 약간 오른쪽으로 튀었지만, 마르쿠스는 그 편향을 몸으로 외우고 있었다.
그 언덕에 축구장이 하나 있었다. 진짜 잔디는 없었다. 빗물에 쓸린 붉은 흙이 전부였고, 골대는 파이프 두 개를 묶어 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마르쿠스에게 그곳은 마라카낭이었다. 아니, 마라카낭보다 컸다. 매일 해가 기울면 그는 공을 들고 내려갔다. 오른발, 왼발. 자갈에 걸리는 공, 경사진 지형. 그는 그 모든 것을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쟁력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누이 카리나는 열일곱이다. 그녀의 발은 마르쿠스의 발과는 다른 걸 알고 있었다. 삼바를 추었다.
파벨라 위 언덕 중간쯤에 있는 낡은 카포에이라 학교 앞마당에서 매주 금요일 밤, 카리나는 춤을 추었다.
"삼바는 슬픔이 춤으로 변하는 방식이야, 마르쿠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가 살바도르에서 살아남은 방법이고,
그게 이 동네 사람들이 아직 여기 있는 이유야."
카리나는 낮에는 언덕 아래 가게에서 일했다. 월급은 늘 조금 모자랐다. 카리나는 그것을 모자란다고 말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항상 뭔가를 사다 주면서 "이달은 이 정도야"라고 말했다.
금요일 밤이면 탬버린 소리가 파벨라 전체를 울렸다. 마르쿠스는 계단 맨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카리나가 돌았다. 원피스 자락이 노란 전구 빛을 붙잡았다가 놓았다. 뭔가 오래된 것이 스르륵 공기 중에 풀리는 듯 했다.
카리나는 마르쿠스의 꿈을 비웃지 않았다. 파벨라에서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의 꿈을 현실로 구겨버리는 걸 미덕이라 여겼다. 하지만 카리나는 달랐다. 그녀는 단지 춤을 멈추지 않았고, 동생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게 두었다.
여름은 리우에서 끈적거렸다.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고 파벨라의 좁은 골목은 낮에는 사람 냄새와 튀긴 기름 냄새로 가득 찼다.
그해 여름, 동네 형 제카가 마르쿠스를 불렀다. 제카는 열일곱이었고 눈빛이 일찍 늙어있었다. 그는 마르쿠스에게 하얀 봉지 하나를 전해달라고 했다. 수고비로 오만 크루제이루를 주겠다고 했다.
오만 크루제이루. 카리나가 사흘을 일해야 버는 돈이었다.
마르쿠스는 하얀 봉지를 받지 않았다. 제카는 놀란 것 같았다. 마르쿠스는 그냥 공을 들고 돌아섰다.
집에 돌아와 카리나에게 말했다. 카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마르쿠스의 머리를 한 번 쥐어박았다. 그리고 밥을 차렸다.
며칠 뒤 학교에서 편지가 왔다. 리우 주니어 클럽 연합 선발전 안내. 열세 살 이하. 등록비가 있었다. 그 돈이 없었다.
카리나는 일주일간 야간 근무를 뛰었다. 주유소 근처 식당 설거지도 같이 했다. 마르쿠스에게는 자기가 저축해둔 돈이라고 했다.
선발전은 언덕 아래 가톨릭 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진짜 잔디였다. 마르쿠스는 그 위에 처음 발을 올렸을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부드러웠다. 공이 예측한 대로 튀었다. 그게 오히려 낯설었다.
다른 아이들은 좋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마르쿠스의 신발은 물려받은 것으로 오른쪽 발가락이 조금 눌렸지만 이미 그 눌림에도 익숙했다.
첫 번째 훈련에서 마르쿠스는 공을 잡지 못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 훈련에서 마르쿠스는 숨을 골랐다. 파벨라 운동장에서 오른쪽으로 튀는 공을 기억하듯, 이 공이 왼쪽으로 미끄러진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그다음 번에 공을 잡았다. 그다음 번엔 드리블로 두 명을 제쳤다. 마지막 미니게임에서 골을 넣었다.
코치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결과가 나왔다. 마르쿠스는 합격이 아니었다.
코치는 말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 기술은 있다. 내년에 다시 오너라."
마르쿠스는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언덕을 올라갔다. 발이 무거웠고 공기는 여전히 끈적거렸다.
카리나는 결과를 묻지 않았다. 대신 밥을 차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오늘 밤 같이 나가자."
파벨라에서는 가끔씩 금요일 밤의 삼바가 시작된다. 탬버린이 울렸다. 카리나가 돌았다. 노란 전구 불빛이 흔들렸다. 마르쿠스는 계단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리듬이 자기 발에도 들어오는 걸 느꼈다. 억지로 맞추려 한 게 아니었다. 파벨라의 소음, 누이의 발소리, 공이 흙바닥에 튀기는 소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호흡이고 하나의 리듬으로 다가왔다.
앙골라에서 건너온 것. 살바도르에서 살아남은 것. 리우에서 태어난 것. 그것이 지금 이 계단 위, 열두 살 소년의 발바닥을 두드리고 있다.
마르쿠스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내년에 다시 오너라. 그는 그것을 다시 접었다. 이번엔 더 반듯하게.
카리나가 춤 사이에 그를 한 번 보았다. 땀이 흘렀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지만 눈빛만큼은 선명했다. 마르쿠스는 그 눈빛을 받았다.
그는 공을 들고 일어섰다. 노란 백열등 하나가 희미하게 흙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년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앙골라에서 쇠사슬도 세무를 막지 못했다. 살바도르의 사탕수수 밭이 로다를 끄지 못했다. 리우의 가난이 삼바를 침묵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파벨라의 현실이 열두 살 소년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삼바는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변했다. 그것이 삼바의 생명력이었다. 알든 모르든 카리나도, 마르쿠스도 그 생명력의 일부였다.
"삼바는 슬픔이 춤으로 변하는 방식이야."
— 카리나, 파벨라, 1994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