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이 감옥의 창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노예의 목에 걸린 칼(枷)이 거친 소리를 냈다.
12세기 중반, 만주족 호족의 집 뒷마당, 오물과 조롱 속에 방치된 남자의 이름은 테무진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짐승처럼 구경하며 침을 뱉었지만, 이 집안에 얹혀 사는 노승 '안(安)'은 그 비참한 처지에서도 형형하게 타오르는 남자의 눈빛을 보고 근심을 쌓아 갔다. 그것은 잿더미 아래 숨겨진 불씨였다. 언젠가 온 초원을 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세울 무섭고 자비심 없는 자의 얼굴을 보았다.
어느 달이 기운 깜깜한 밤, 安은 감옥 앞을 지나다가 큰 용기를 내어 돌아 서 낮게 말했다.
'모든 걸 다 태우더라도 사원의 책들만은 태우지 말아 주소서.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이자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건너라. 보르테에게 전하라!'
이렇게 말하면서 테무진은 품 안에서 때 묻은 가죽 끈 하나를 꺼내 던졌다.
'그 종이들은 남기겠다.'
노승은 그날 밤 차가운 사막으로 발을 들였다. 칠순을 넘긴 노구에게 사막은 거대한 무덤 그 자체다. 낮에는 태양이 살을 태우고, 밤에는 혹한이 뼈를 깎았다. 물은 일찌감치 바닥났고, 시야는 모래 먼지에 가려 흐릿해졌다. 아주 오래 전부터 들었던 '이 모진 파도같은 끝없는 고통,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는 생각이 엄습했지만, 자신이 죽으면 수천수만의 말과 이야기들도 함께 끝도 없을 모래 더미에 묻힐 거라는 생각에 무거운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자신이 할 수도 있을 가장 작은 일에 감격스러운 나머지 몇 번 울기도 했다.
사막의 끝자락에서, 지평선 너머로 푸른 초원의 냄새가 실려 올 때쯤 安의 무릎이 꺾였다. 손에는 가죽 끈이 묶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던 말 한 마리가 멈춰 섰다. 말에서 내린 여인, 보르테가 쓰러진 노승에게 다가왔다. 이미 숨이 넘어 간 노승의 손에는 남편의 끈이 꽉 쥐여 있었다.
거대한 파도를 읽었던 노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작은 일을 마쳤음에 안도하며 평온하게 눈을 감은 것이다.
그의 등 너머로, 서늘한 사막의 바람이 수천 권의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