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월요일-건강 검진 예약하기
1년의 한번 보험회사에서 간단한 피검사로 건강검진을 해준다. 무료로..
무료 건강검진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않기 위한 보험회사의 큰 그림이다.
무료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귀찮아서 검진을 받지 않으니, 이제는 검진을 받는다면 무료가 아니라 50달러짜리 기프트 카드를 준다고 까지 하며 꼬신다.
예약을 하고, 미리 피검사도 하고, 그날 그 시간에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나고..
아.. 정말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은 나의 글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미국은 성질 급한 사람은 못 사는 곳이다.
미국에 살고 싶다면 참을성부터 길러야 제 명에 산다.
오늘 예약을 했더니 가장 빠른 날이 4월 이란다.
예약해 주는 사람도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그래도 예약을 했다. 그 귀찮은 예약을...

12월 31일 화요일-내 오렌지 주스 챙겨 오기
몇 주 전 생각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무슨 날인지 신경 쓰지 않고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
월요일부터 이런 일은 할 수 없고, 명색이 불금인데 좀 놀아야 하지 않나.. 뭐 이런 생각들 없이 정해놓은 날들에서, 숫자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오늘은 2024년의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 날을 그날답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대신 그저 오늘의 '개구리 먹기'를 찾아다니며 모든 날들과 똑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 이용하는 집 앞에 마켓이 있다.
한 달에 한번 멤버십 고객에게 마켓 쿠폰북을 보내준다.
20가지 정도의 물건에 50센트부터 2불 정도까지 디스카운트를 해준다.
다른 건 그렇다 치는데.. 내가 자주 사는 물품인 오렌지주스 한 병을 공짜로 주는 쿠폰이 꼭 있다.
한 달에 한번 한병의 오렌지주스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매번 마켓을 갈 때마다 잊어버린다. 내게 한병의 오렌지 주스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나의 '오렌지 주스'를 가지러 간다.
오렌지 주스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서 점원에게 쿠폰을 내미니 $0이다.
2024년 마지막날에 한 일은 뭔가 의미 있고 대단히 기억될 일이 아니라 나의 그 '오렌지 주스'를 챙기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아보하'
1월 1일 수요일-옷의 얼룩 지우기
정말 잘 안 되는 일이 있다.
옷에 뭔가를 묻혔을 때 집에 와서 바로 지르잡기를 하는 일이다.
지르잡기를 해야 하니 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거나 빨래통으로 집어넣지 못하고 애매하게 놔둔다.
조금 있다가 가져가서 해야지 하는데 그게 안돼서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몇 달 동안 방치가 되기도 한다.
그 사이에 얼룩은 절대 지워지지 않게도 되고 운이 좋은 건 그제야 제대로 세탁이 되어 몇 달 만에 제 옷걸이로 돌아오기도 한다.
가을에 묻힌 얼룩을 오늘 지웠다.
브라운 수드 백이 흰 티셔츠에 브라운 색채를 입혔다.
이 옷을 집어 들기까지 참 힘들었다.
주방세제로 그 부분만 지르잡기를 한 후 빨래를 돌리고 잘 펴서 널어놓았다.
가을부터 못 입은 흰 티셔츠를 보니 이 놈의 버릇을 정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월 2일 목요일-영수증 정리
오늘은 뭘 해볼까 생각했다.
사실 이것저것 할 일은 많다.
그중에서도 타이밍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 일을 고르는 것도 '개구리 먹기'를 실천하는데 꼭 필요한 자질이다.
거실 서랍장 첫째 칸은 물건에 사고 난 영수증들이 들어있다.
샀던 물건들 중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영수증이다.
영수증이 있으면 거의 해결이 된다. 즉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증거들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었다가 문제가 생길 때 척 들이밀면 된다.
큰 물건들의 영수증들은 몇 년도 보관하지만 자잘한 물건들의 경우엔 3개월 정도면 버려도 된다.
영수증도 제때 정리를 안 하면 쌓여서 서랍도 잘 안 닫힌다.
서랍을 열어 하얀 영수증들을 모두 꺼내고 조금 더 보관해야 할 영수증만 남기도 다 버렸다.
바닥이 드러나 깨끗한 서랍을 보니 2024년의 묵은 찌꺼기를 청소한 것처럼 정말 개운하다.
사실 이일을 하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영수증을 계속 쑤셔 넣으며 정리해야지 했지만, 마음을 먹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계속되는 '개구리 먹기'가 괜찮은 거 같다.^^
1월 3일 금요일-현금 찾기
웬만한 모든 곳에서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지만, 그래도 현금이 필요할 때가 있다.
E에게 주는 청소 비용도 그렇고 (저의 브런치 매거진 로스앤젤레스 다이어리의 '말이 필요 없는 사이가 있다'의 주인공^^) 발레파팅을 했을 때 주어야 하는 팁 등등..
현금이 필요해서 지갑을 딱 열었는데, 없으면 참으로 곤란하다.
그리고 현금이 넉넉하게 있지 않으면, 팁으로 주어야 할 돈에 째쨰하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부지런하게 지갑을 살피며 떨어진 현금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은행까지 기어가는 것도 그렇고, 카드값은 척척 내면서 현금을 찾는 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 마음으로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오늘 빈 지갑을 채우려고 한다.
일부러 '개구리 먹기'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현금을 인출해 지갑을 채우며 현금이 넉넉히 있으니 마음도 넉넉해져서 팁을 받아서 생활해야 하는 분들께 아주 작은 기쁨을 드리고 싶다.
빈 지갑 채우기는 내 마음 채우기다.
1월 4일 토요일-다리미질하기
무조건 다리미질을 해야 한다. 기필코 오늘은..
세탁을 마친 옷 둘 중에 그냥 개켜서 옷장에 넣거나 걸으면 되는 옷도 있지만 다리미질이 필요한 옷들이 있다.
다리미질이 깨끗이 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 일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다리미질을 하기 위해 앉게 될 때까지의 과정이 나는 꽤 힘들다.
그래서 고안한 나의 다리미질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일단 다리미 판만 깔아 두고 다른 일을 한다.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다리미에 물을 채워 다리미 판 위에 가져다 놓는다.
또 시간을 조금 보낸 후 다리미질 할 옷을 다리미 판 옆에 가져다 두고 다리미에 코드를 꽂아 둔다.
다리미가 뜨겁게 되면 티비를 켜고 아무 생각 없이 다리미 질을 한다.
얼마나 다리미질이 하기 싫으면 이렇게 세분화시켜서 할까 생각이 드시겠지만 하기 싫은 일은 아주 작게 쪼개면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아 거의 유물이 된 러닝머신 기계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한 달 동안 러닝머신에 그냥 앉아만 있어 보라는 조언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노 사이즈로 자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1월 5일 일요일- 나랑 안 맞는 책 끝내기
기대와 다른 책을 맞닥뜨리면 참으로 당황스럽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or 여기서 집어치워야 하나.. 읽으며 계속 갈등한다.
사람마다 아까워하는 부분이 다르게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남기는 것을 아까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해지지 않은 옷을 그만 입는 것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나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 것을 아까워한다. (이곳은 책 값이 비싸서 그런 걸까? 한국에 살면서 아무 때나 책을 척척 살 수 있었으면 나는 무얼 아까워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책은 너무나 상투적 문구가 많아서 문장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짐작이 가는.. 도무지 호기심이라고는 전혀 생기지 않는 그런 책이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 건 자린고비가 바라보며 밥을 먹는 간장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나의 이상하고 해괴한 지론 이므로 오늘 이 진절머리가 나는 책을 끝마치기로 했다.
누워서 읽다가, 앉아서 읽다가, 네로 왕이 식사하는 자세로 읽다가 , 너무 지겨워서 잠시 잠이 들기도 했다가,
몇 시간 후 드디어 책을 마쳤다.
책을 마치고 나니 이른 저녁때가 되었다.
이번 연재를 하면서, 이렇게 부지런히 개구리를 먹다가 개구리를 다 먹어서 먹을 개구리가 없으면 무얼 재료로 삼아 글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먹을 개구리가 없어서 여기서 연재를 중단할까 합니다. 호기롭게 50회나 연재를 한다고 큰소리 빵빵 친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하는 사과문을 올려야 할까? 하는 상상.
그러나 먹을 개구리는 미끄럼틀을 타고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으니, 제떄에 다 먹을 걱정이나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오늘의 '개구리 먹기'를 시원하게 마치고 저녁 산책을 나선다.
유난히 노을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