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ersjoo Jan 12. 2024

143. 분키츠(文喫)

입장료를 받는 서점

| 2021년 5월 6일 발행

| 이 내용은 원본의 수정 및 보완 버전입니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는 입장료를 받는 서점이 있습니다.  

결코 저렴하지만은 않은 입장료지만 그보다 훨씬 큰 경험과 이득을 얻게 되는 이곳에 대해 읽어보세요. 


-


1. 똑같이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디자인과 음식을 주제로 한 서적들이 특히 인기였던 도쿄 롯폰기의 ‘아오야마 북센터’ 서점이 문을 닫은 건 2018년 6월의 일입니다. 도쿄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롯폰기에 위치하며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가 넘는 시각까지 불을 밝히던 오랜 지역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것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서점업계도 온라인 도서 시장이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장문의 책 보다 짧은 길이의 글과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더 주력하게 되었다는 것도 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존의 방법과 상식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일본의 한 회사는 이 점에 주목하며 새로운 서점의 등장을 기획했습니다. 

분키츠의 공간들©https://bunkitsu.jp/


‘닛판(日販)’은 일종의 출판 도매 유통 회사입니다. 쉽게 말해 출판사와 서점 사이에서 책 유통을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닛판은 서적 시장의 불황을 직격타로 맞은 곳 중 하나였고, 그렇게 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보통 각각의 도, 소매점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불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이는데, 도매업 및 유통업자가 소매업자를 이끌며 손을 잡고 나선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2018년 봄부터 각각 운영과 디자인을 맡은 다른 회사들과 함께 새로운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정해져 있는 건 그저 ‘문화를 맛보는 장소’라는 대략의 이름과 콘셉트뿐이었습니다. 


회의를 통해선 회원제 서점, 클럽 콘셉트의 서점 등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콘셉트만으로 이미 주변에 위치한 ‘북퍼스트’, ‘츠타야’ 등의 서점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을 뿐 아니라, 돈이 되는 장사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고민거리였습니다. 콘셉트뿐 아니라 그 이면의 전혀 새로운 개념과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가능성이 보이는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입장료를 받는 서점’이었습니다.   




2. 입장료가 돌려주는 가치  

기존과 똑같이 ‘책을 팔고 돈을 받는다’는 시스템을 유지해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책과 만나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입장료를 받는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그저 책이라는 물리적 제품이 아닌, 책을 통한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시스템에 대한 생소함과 거부감은 그만한 가치 제공으로 상쇄시켰습니다. 입장료 안에는 무료 커피와 녹차가 포함됐고, 영업시간인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자유롭게 3만여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더했으며,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과 자리를 채워 넣었습니다. 즉,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을 기반으로 한 문화공간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것은 초기의 콘셉트인 ‘문화를 맛보는 장소’라는 기조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이것은 추후 ‘글(문화)을 만끽한다’는 의미의 이름 ‘분키츠(문끽/文喫)’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듯 새로운 시스템은 그 자체가 브랜드 콘셉트가 되어 다양한 소프트 콘텐츠 및 공간 브랜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게다가 입장료는 단순히 새로운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매출 상승으로도 이어집니다. 조금은 속된 표현일 수 있으나, 그야말로 계산기를 아주 영리하게 두드려 방문객들의 행동 및 소비 패턴을 정확히 추측하고 매출에까지 연결시킨 것입니다. 즉, 입장료는 고정 소득으로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소득원이 되길 바랐고, 전체 소득 중 최소 2~3%는 서적 판매에서 기인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부가적인 음식 판매로 인한 소득 또한 최소 어느 정도는 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과감히 시작한 입장료 시스템이 성공한 것입니다. 


실제 운영을 해본 결과 그들의 예측은 적중했고, 오히려 체제 시간이 예상인 3시간보다 두배 가량 더 늘어나며 도서 구매율 또한 함께 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연관 관계의 발견은 고객들이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궁극적으로 매출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 서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개념과 아이디어는 정확한 확률 및 추측을 기반으로 과감히 던져졌고, 그 결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핵심 전략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3. 콘텐츠로 완성하는 브랜딩  

분키츠는 이러한 큰 줄기 하에 세분화된 콘텐츠들의 조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먼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콘텐츠인 공간은 도서관, 열람실, 연구실, 전시실, 다실, 저자 사인회나 워크샵을 진행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모두 책에서 기인한 공간들이지만 서점 안에 도서관과 열람실이라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나, 전시실을 하나의 개별 공간으로 마련한 것, 사인회와 워크샵을 위한 곳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 등은 그동안의 일반적인 서점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만 보아도 분키츠는 책 자체보다 책을 통한 다양한 경험의 방식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고객들이 저녁 7시 이후 방문할 경우 입장료를 500엔 할인하여 1,000엔에 해주는 ‘나이트 크루징(Night Cruising)’ 제도를 마련하여 합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월 또는 연회원을 모집하여 고정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활동도 전개합니다. 또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의 특성에 맞게 유료로 알코올과 음식을 판매하며 편의 제공과 동시에 수익 창출을 도모합니다.           


 꾸준히 진행하는 워크숍도 빠뜨릴 수 없는 콘텐츠입니다.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진행까지도 하는 워크숍의 주제들 또한 독특합니다. 예를 들어 ‘책 고르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북 셀렉션 워크숍이나 점술가가 참가자가 고른 책 속의 문장으로 운세를 봐주는 워크샵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워크숍은 서점 안에서 책을 재료로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게 해 주어 분키츠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전시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일반적인 서점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예시는 잡지 진열 방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잡지를 진열하고 그 안쪽이나 아래에 과월호를 쌓아 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분키츠에서는 해당 월의 잡지가 전하는 주요 주제와 연관 있는 주제의 단행본들을 곁에 진열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즉, 물리적 기준의 콘텐츠 전달이 아닌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경험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서점의 첫인상이나 마찬가지인 입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주제의 전시 등까지 섬세하게 관리되며 글(문화)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서점 콘텐츠들©bunkitsu.jp




4. 마지막 목표  

이곳의 매니저는 그들의 최종 목표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 서점을 희망한다 이야기합니다. 입장료라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그의 성공으로 유명해진 곳에서 무료입장을 꿈꾼다니… 의외의 답변입니다. 하지만 이내 이 한마디를 통해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돈을 입장료로 버는 것보다 더 많은 고객들이 편하게 찾아오는 공간이 결국은 진짜 책을 통해 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마인드라면 책이 주는 경험과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세상 모든 서점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키츠는 결국 책을 통한 문화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요.  




|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 브랜드의 위기를 영리하게 극복해낸 사례를 찾는 분들 

+ 때론 과감한 역행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은 분들

+ 전통적인 운영방식을 떠나 새로운 운영방식으로 브랜딩에 성공한 브랜드를 알고 싶은 분들 

  

| TAG |

#분키츠 #bunkitsu #文喫 #유료서점 

매거진의 이전글 142. A Vida Portugues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