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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4. 2017

삶으로서의 공부 #1

겜돌이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글 순서


1. 겜돌이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2. 스스로 일궈가는 공부

3. 지적 모험의 공간에서

4. 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이야기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은 공부 그 자체의 속성, 의미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의미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물을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왜 먹는가?’ 혹은 ‘왜 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먹고 자는 것이 우리가 문자 그대로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는 생리적 요구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다분히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찾아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실천이 가지는 의미는 그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에 따라 가변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행복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 이별 후에는 아릿한 상처로만 남을 수 있는 것처럼, 공부의 의미도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우리가 공부의 의미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는 (단답형의) 이유가 아니다. 빙 돌아온 느낌이 들지만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방식이 결국에는 공부에 대한, 공부를 둘러싼 경험/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글의 제목을 ‘삶으로서의 공부’로 정한 이유는 결코 공부가 나의 사명calling이라서가 아니라, 이 글이 공부를 중심으로 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주제의 글을 찾아 훑어보았다. 이 주제로 글을 쓰는 이들은 어떤 맥락에서든 공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대개의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하고 싶은 일’로서 공부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에게 공부는 꼭 하고 싶기만 한 일이 아니다. 일단 공부보다 좋아하는 게 너무나 많다. 공부보다는 노는 게 훨씬 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결국 나의 이야기는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관한 것이다. 


겜돌이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운운하며 다른 모든 경험을 차단해버리는 어른들의 꼰대질은 변한 것이 없다. 나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는 별로 내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리어답터였던 아버지 덕분에 386이니 도스니 하던 시절부터 집에는 컴퓨터, 즉 게임기(?)가 있었고, 나는 고인돌이니 창세기전이니 하는 당대의 유명 게임들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 성적이 꽤 많이 떨어지자 부모님이 ‘자식 걱정’을 시작한 것이다. 때는 1999년이었고 한국 사회는 IMF가 끼친 광범위한 타격과 더불어 세기말의 문화적 혼란으로 뒤숭숭했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수선한 마음에 창문을 열어보니 확실히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프로야구에 뛰어든 아마추어 야구팀 삼미였고, 나는 이 프로의 세상에서 아마추어를 사랑한 죄로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것이다. … 분명 세상은 그대로이나 아마추어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비록 신자유주의의 냉혹함이라는 언어는 몰랐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는 공기는 어느 순간부터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그냥 적당히’ 해서는 안심할 수 없는 시대였다. 지금처럼 e스포츠가 자리 잡지 못했던 시기였음에도 당시 수많은 청소년들의 꿈은 프로 게이머였다. 나 역시 게임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부모님께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을 수험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인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건 마치 게임에서 방어구가 가지는 역할처럼, 성적이 내 인생에 ‘게임 오버’ 문구가 뜨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비록 ‘불안’이라는 용어가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한다는 괴담(!)에 반영된 불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불안은 직접 경험되기보다는 교사나 부모, 언론과 같은 ‘어른들’에 의해 매개된다.


“아느냐?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인 조부장에게 왜 회사에서 허리를 굽혀야 하는지? (..) 결국, 그래서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알겠느냐?” 물론,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말 때문에, 또 더러워서 못 살겠다 하질 않나, 나 때문에 참는 거라 하질 않나, 또 회도 많이 얻어먹었겠다, 하여간에 배도 부르고, 마침 방바닥도 뜨끈뜨끈하고 해서 나는 흔쾌히 “네”라고 대답했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불안과 공포는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내가 혼자 생계를 꾸릴 때는 알바에서 짤리면 밥을 못 먹는다는, 즉 삶이 위협받는 공포가 덮쳐왔다. 그 불안과 공포 앞에서 나는 돈을 빌리든, 일자리를 구하든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반면에 수험생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처럼 타자에 의해 매개된 불안과 공포는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현재의 구체적인 경험이 아니라, 복도에 게시된 전교 석차나 배치표 상의 오르내림, 그러니까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믿어지는 숫자놀음이 곧 불안의 원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손으로 삶의 어떤 부분을 바꾸겠다는 노력이 아니라, 숫자놀음의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불안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꿈꿀 수 있었던 출구는 좋은 교사가 되어 좀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것 정도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여전히 해야 하는 일로서의 공부가 남아있었다. 교사가 되고자 했던 나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고, 졸업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상 요구되는 것들을 모두 해내야 했다. 그것도 그냥 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하느냐, 즉 어떤 학점을 받느냐도 중요하다. 평점을 심하게 깎아먹는 과목들은 재수강을 해야 한다. 교양과목 하나는 재수강을 하고도 C+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적이 나쁘다는 것은 그 강의에 요구되는 지적 재능이나 동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재수강은 대학에서 ‘해야 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제도인 것이다.


문제는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도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펙과 자기계발의 시대가 열리면서 학점뿐만 아니라 영어 시험 및 각종 자격증을 위한 공부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일’로서의 공부에 질려있었건만, 나도 한 때 준비하던 진로의 필수요건 때문에 기사 자격증을 준비해서 따야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평범한 삶을 살아도 눈에 흙을 뿌려야 할 만큼 치욕을 당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시험공부를 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화와 더불어 기업과 친기업적 정부가 ‘평생교육’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열어젖힌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다.


이런 시대에 공부가 지긋지긋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 써놓은 글에 등장하는 공부의 즐거움과 역동적인 의미는 생소하고, 때로는 현실감 없이 이상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부가 생계를 위한 노동과 다를 바 없는 의미를 가진다면,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는 생계와 관계없이, 오히려 때로는 생계가 해결된다면, 쉽게 말해 “로또에 당첨된다면” 공부를 할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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