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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4. 2017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영화 <빅 피쉬> 리뷰

이 글은 영화 <빅 피쉬>와 <14번째 표적> (명탐정 코난 극장판 2기)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작년에 그 호수에서 잡았던 놈은 말이야. 내 몸통보다 컸다니까? 배가 흔들흔들 했다고"


모닥불을 피워놓은 캠핑장, 혹은 왁자지껄한 선술집에서 억세 보이는 중년의 낚시꾼이 사람들에 둘러쌓여 자신이 잡았던 물고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빅 피쉬'라는 단어는 이렇게 낚시꾼들이 자신이 잡은 물고기의 크기를 부풀리고 부풀려 급기야 터무니없이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다는 식으로 허풍을 떠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낚시꾼들 주변에는 항상 ‘말도 안돼’를 연발하면서도 흥미롭게 낚시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빅 피쉬>에는 의심스러울 만치 대단한 모험들로 가득한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 두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아들이 그를 찾아가 갈등하고 화해하는 가족드라마가, 과거 시점에서는 아버지 에드워드의 환상적인 모험이야기가 전개된다. 



에드워드의 이야기 : 기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환상적인 모험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삶은 동화적인 모험 그 자체이다. 어렸을 적엔 친구들과 동네 뒷산의 마녀를 찾아가 그 눈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았고, 청년기까지 자란 마을에서는 못하는게 없는 만능일꾼이 되어 사람들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의 가축을 습격한 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 와중에 신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향락의 마을, 기괴하게 살아 숨쉬는 숲 등 '시련'을 마주치기도 한다. 거인과의 여행이 멈춘 곳은 늑대인간이 운영하는 서커스. 그 곳에서 거인은 서커스단 입단이라는 운명을 만나고, 에드워드는 운명의 사랑을 만난다(모험 이야기에 로맨틱한 연애담이 빠질 수는 없는 법!).    



운명의 사랑과 결혼한 뒤에도, 모험은 끝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전쟁에 참여해 샴쌍둥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옛친구의 협박에 못이겨 함께 은행을 털기도 하는 등 보통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번 경험하기도 힘든 모험들로 삶을 채워나간다.


금붕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조그만 채로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더 큰 어항에 넣어두면 2배에서 4배까지 자랄 수 있다

그의 모험은 어떤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갔다기 보다는 '더 큰 세상을 보겠다'는 의지에 이끌렸음을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모험들이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을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에드워드의 모험들은 그가 온갖 종류의 비정상성abnormality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minority들과 만나 그들과 함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동네 뒷산의 기괴한 노파를 마녀라며 배제할 때 그는 그녀와 대화를 나눴고, 배가 고파 마을의 가축을 훔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두려움과 비난을 사게 된 거인을 설득해 함께 모험을 떠났으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 자기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늑대인간과 교감을 시도한다.


난 그날 밤 우리가 악마나 요괴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은 단지 사회적 우아함이 결여된 외로운 사람들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지


이렇게 소외받는 존재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팀 버튼의 다른 으스스한 판타지들, 즉 <가위손>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 <배트맨2>에서도 볼 수 있었던 제스쳐이다. 어쨌든 에드워드의 모험 이야기는 반복되고 반복되어 그 아들은 처음 시작하는 문장만 들어도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언제까지나 그 아들이 침대 머리맡에서 마녀 이야기를 들으며 두근대던 소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게임 -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에드워드의 모험 이야기는 화려한 비주얼과 재치 있는 입담, 속도감 있는 전개로 <빅 피쉬>의 한 축을 탄탄하게 구성한다. 반면에 다른 한 축인 가족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영상과 차분한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이 차이가 오히려 기대심리를 자극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빅 피쉬>의 가족드라마는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아들도 어렸을적엔 아버지의 모험 이야기를 침대머리맡에서 듣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것들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님에도 아버지가 자신의 '진짜 삶'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들의 직업은 (다분히 상징적인) 기자이다. 그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이야기 중에 대체 사실이 있기는 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거인과 난쟁이(서커스 단장으로 보이는), 샴쌍둥이, 그리고 아버지와 은행을 턴 적이 있다던 증권가의 큰 손이 등장하지만, 아버지가 얘기해준 그 사람들과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과연 과거의 어느 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그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가 중요할까?


“우리는 쓴 사람이 뭔가를 숨기거나 과장-축소하거나 변형하는 일 자체보다는, 어떤 내용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지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조용환(1999), 질적연구 : 방법과 사례, 교육과학사


아들은 실제로, 혹은 ‘물리적으로' 과거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와 그렇지 않은가로 진실성을 따진다. 하지만 과거의 물리적 현상을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지적하듯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건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무엇이 과거에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지금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가'이다. 즉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의도, 맥락, 상황 등이 빚어내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화가 아버지의 삶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아는 과정이 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아들과의 대화는 자신의 생애를 전달해주는 것에 약간의 허풍을 가미한 즐거운 교감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 아저씨(모리)가 변호사님(에리)을 총으로 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사실fact이 진실truth일까?"     
   


명탐정코난 극장판 2기 <14번째의 표적>에서 신이치가 란에게 한 말이다. 과거 모리는 에리를 총으로 쏜 적이 있고 그 장면이 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모리가 에리에게 총을 쏜 이유는 거꾸로 에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진실truth과 사실fact은 같지 않다.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 아버지는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함께할 수가 없었다. 그게 미안했던 아버지는 결혼반지를 먹어버린 커다란 물고기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단정한다. 하지만 이 사실들에 관한 아버지의 진실truth은 아들이 태어난 사실을 특별한 일로 만들고 싶다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사실fact의 확인만을 원했던 아들은 ‘아버지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해 아버지의 의도, 그 진실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제발 환상이 아닌 아버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말해달라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난 태어나서부터 단 한순간도 나 자신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리고 만약 니가 그걸 모르겠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너의 잘못이야


영화는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다. 아들의 부인은 아버지의 동화같은 사랑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아들에게 "하지만 로맨틱하잖아요"라고 말한다. 과거의 스토리에서 거짓말이 몇 %고 사실이 몇 %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가지는 의미(어머니와의 사랑)를 보라는 뜻이다. 또한 가족의 주치의는 아들의 출산일에 있었던 '사실'을 알려준 뒤, "나 같아도 거짓말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이야기를 꾸민 것은 아들의 출산에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그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었던 부정(父情)때문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결정타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 10년을 기다렸다는 소녀. 그녀와 아버지의 불륜을 의심하며 찾아간 아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야기 속의 허깨비에 불과하고,
아버지의 다른 삶, 즉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이 진짜real죠


지금 아버지 옆에는 누가 있는가? 어머니와 아들이 있다. 이야기 속의 그녀를 아버지가 사랑했건, 아니건, 지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와 아들,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이야기가 되어 살아갈 '빅 피쉬'


이런 계기들을 통해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깨달았을 때는 늦은 법(風樹之嘆)이어서 아버지는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의 못다쓴 모험 이야기를 아들의 입으로 완성하며 이뤄진다. 
    

아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돼요" 
아버지: "그래, 바로 그거야!”


만약 장례식 장면이 빠졌다면 어땠을까.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장례식에 에드워드의 모험에 등장했던 이들이 모두 참석한 장면을 보고 ‘아 그 이야기들이 다 거짓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거짓이라면 또 어떠한가? 에드워드가 전쟁 중에 적진에 침투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중앙일 상가동 은행 차압매물 전문’이라고 한글로 적힌 문서가 마치 중요한 설계도면인 것처럼 등장한다. 이에 대한 질문에 감독인 팀 버튼은 ‘뻥이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를 넘어, 지금 여기서 해석되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의미란 결코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두고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당장 영화 <빅 피쉬>에 대한 전문가들의 리뷰만 살펴봐도 그 주목하는 바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에드워드의 허풍이 무료한 삶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평하고, 누군가는 팀 버튼의 개인사(당시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음)를 언급하며 모험은 부차적이고 부자간의 화해야말로 진정한 메시지라 해석한다. 남다은은 <인어공주>라는 한국영화의 모녀관계와 <빅 피쉬>의 부자관계를 비교하며 아들이 아버지의 가부장적 위치를 승계 받으면서 갈등이 해소된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영화 <빅 피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역동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에드워드의 모험담은 그렇게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게 되면서 편집되고 와전되어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괴담으로, 누군가에게는 희극으로, 누군가에게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변주되지 않을까. 마치 봤다는 사람마다 묘사하는 바가 다른, 어느 아름답지만 으스스한 연못의 '커다란 물고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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