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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4. 2017

교육불가능과 평생교육 #4

함께 교육불가능의 시대를 질문하기

글 순서


1. 평생교육 담론과 학교의 교육불가능

2. 교육불가능의 '시대', 평생교육의 '시대'

3. (평생)교육이 불가능한 시대

4. 함께 교육불가능의 시대를 질문하기



함께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질문하기


사실 교육 불가능 담론과 평생교육 담론이 직면한 문제 상황은 비슷하다. 박복선이 지적한 “큰 질문의 부재”라는 문제는 평생교육 담론뿐만 아니라 교육 불가능 담론의 현주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표師表, 즉 대안적 삶의 모델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그리고 사람이 되어가는becoming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학교교육은 물론 평생교육 역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지 못하다. 이 냉엄한 시대에 ‘필요한 시민’으로서 추구해야 할 인간상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 비로소 시대로부터 ‘요구받는 인재상’을 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흐름에 저항하고, (평생)교육 불가능의 시대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는 미약한 희망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바우만은 이러한 문제가 온전히 교육현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불안정하게 유동하는 시대 전체의 것이라고 본다.


언제나 지식은 세계를 충실하게 재현하기 때문에 가치 있게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정작 그 세계가 계속해서 현존하는 지식의 진리를 거역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가장 많이 아는’ 지식인들조차도 끊임없이 깜짝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어제까지의 믿음에 배반당하기 십상이라면 결국 오늘의 최신정보 외에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 답이며, 지금 이 순간 안에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비전을 통합하는 것, 곧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성장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배움이란, 영원히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손에 쥐는 순간 곧바로 녹기 시작하는 대상들을 끊임없이 뒤쫓는 일”(지그문트 바우만, 앞의 책)이 된다.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그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생존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다. 즉, 이 시대 교육 불가능의 핵심에는 정치의 위기, 나아가 파국의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관성적인 교육체제 비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화두로 한 철학적·사회학적 사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변화는 더디다. 그러다보니 의례적으로 떠올리는 교육의 문제, 관성적인 비판도 항상 의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같은 외침을 반복하기 보다는 우리의 문제의식이 멈춰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것과 같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는, 의례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용의자들의 명단을 검토하는 것이나 기존의 관성화된 방식으로 그들에게 딴죽을 거는 것으로는, 어떤 일 - 방식은 다양하지만 동일하게 지상의 모든 거주지에 영향을 미치는 - 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모두스 비벤디》


무조건 새롭고 특이하다고 해서 좋다는 뜻이 아니다. 시대 전체를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으며 기존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담론의 구조를, 그 안에 담긴 고정관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 불가능이라는 문제의식이 평생교육 담론이 놓치고 있는 큰 질문을 돌아보게 했던 것처럼, 평생교육이라는 관점은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를 크게 넓혀줄 수 있다.


담론 생산의 여정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동반자가 있으면 힘이 된다. 평생교육 담론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성장, 시민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탐구하며 이 시대 교육의 활로를 찾고자 애쓰는 이들과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말해온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들은 서로에게 훌륭한 동료가 될 수 있다. 배움은, 비슷한 감성과 논리를 공유하는 집단 안에만 있을 때보다, 다름을 품고 있는 타자이면서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동료인 이들을 만날 때 더욱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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