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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4. 2017

교육불가능과 평생교육 #3

(평생)교육이 불가능한 시대

글 순서


1. 평생교육 담론과 학교의 교육불가능

2. 교육불가능의 '시대', 평생교육의 '시대'

3. (평생)교육이 불가능한 시대

4. 함께 교육불가능의 시대를 질문하기



(평생)교육이 불가능한 시대


최근 평생교육 담론의 실천영역에 있어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선행경험학습 인정’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국가교육과정 바깥에서의 학습경험을 학력과 유사한 자격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학습자의 다양한 경험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분명 배움의 경험을 민주화한다는 평생교육의 이념을 반영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먼저 이 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의 사례를 살펴보면, 어떤 경험은 인정하고 어떤 경험은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기준의 설정은 물론 제도의 실제 작동에 이르는 과정 전반이 철저하게 경제발전담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신자유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국가가 아니라 많은 평생교육 연구자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북유럽의 스웨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양한 학습 경험’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결국 그 다양성이 기업이 요구하는 인적자원으로서의 역량 리스트에 그칠 때, 사회구성원들의 배움은 곧 자기계발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평생교육 담론은 국가의 표상이기도 한 학교의 외부에 둥지를 틀고 고유의 영역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발전한 평생교육의 가능성은 곧 노동유연화의 가능성, 기업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복지에 대한 철학이 없는 국가에서 점점 평생교육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이게 ‘돈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생교육 담론이 안주하는 학교 바깥의 공간에는 시장이라는 통치자가 웅크리고 있다. 학교로 표상되는 국가권력의 통치로부터 벗어날 때 마주치는 것은 시장이라는 또 다른, 아니 더 강력한 권력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와 시장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과 스펙의 지표는 결국 국가에서 인정하는 학벌과 자격증이 대다수이다. 그래도 국가가 통치하는 학력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시도는 물리적/상징적 공간인 학교에서 벗어남으로써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하지만 평생교육 담론은 시간적으로 전 생애, 공간적으로 전 사회를 그 지평으로 하기 때문에 탈주할 수 있는 외부가 없다. 학교의 문제는 바깥에서 바라보며 손가락질이라도 할 수 있지만, 평생교육의 문제는 그 바깥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교육 불가능이 이 시대의 문제라면, 그 문제는 학교라는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평생교육의 지평에서 발생한 것이다. 전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도 나타난 것이다. 학교와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같은 뿌리를 가진다. 인권은 성인과 교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청소년, 학생들의 문제issue인 동시에, 일터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비정규직) (예비)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인간 존재의 목적을 성적과 진학으로, 혹은 경제적 수단으로 도구화하고 인권을 부정하는 것은 똑같은 야만이다. 


또한 “교육을 환대하지 않는”(지그문트 바우만의 에세이 제목에서 차용) 태도는 학교뿐만 아니라, 평생교육의 현장으로 각광받는 일터, 즉 기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직업세계의 문제가 고등교육으로, 중등교육으로 점점 전이된 것이다. 기업은 신입사원의 가능성을 보고 뽑아서 잘 가르칠 생각은 없고, 학벌, 영어성적, 자격증 등의 스펙이 가장 높은 사람을 찾는다. 드라마 《미생》에서 보았듯이, 이 사회 어디에서도 스펙 하나 없는 “보기 드문 청년” 장그래의 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반면 인턴 때부터 실적을 팍팍 올리는 에이스 안영이는 모두가 탐낸다. 이를 직업세계의 냉혹함이라고 설명하기에는 교육기관도 별로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가능성을 어떻게 발현시킬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성적이 우수한 자원을 뽑을 방안만 찾고 있다. 학교도 기업도 조직 안에서 이뤄지는 배움과 성장을 촉진하기보다 선발과 평가를 통해 (예비) 학생과 (예비)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쏟아 붓도록 유도한다. 여기에는 가르침의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득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고,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인센티브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동물만이 남아있다.


이렇게 한 인간이 태어나 영·유아 시기부터 학령기를 넘어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국면에서 교육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평생교육 담론은 이 불가능의 파국을 직시하지 않는다. 교육 불가능 담론은 “학교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토에서 만들어 낸 희망”이 학교의 가능성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반면 평생교육 담론은 국가와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기술주의), 국가와 시장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미치는 영토에서 피어나는 가능성에 찬사를 보냄으로써(인문주의) 교육을 환대하지 않는 권력의 문제를 회피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평생교육 개론서에는 물론 학술논문의 이론적 배경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정작 그 문제를 본격화하고 돌파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평생교육학자나 실천가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생교육의 이념과 철학이 신자유주의 질서에 의해 전유되고 있”다고 현실 탓을 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탑재한 자기주도, 창의, 자율 등의 실천들을 비판적으로 읽으며”(나윤경, 앞의 글) 그 이념과 철학의 근본부터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평생교육의 이념에 대한 성찰


평생교육 담론의 중요한 목표이자 성과인 교육의 민주화는 권력에 의해 승인되는 경험뿐만이 아니라, 학습자의 모든 경험이 배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만하다는 전제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 의미 있다는 선언은 역설적으로 아무 경험도 의미 없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교육에 있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신성시하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이 배움이고 무엇이 아닌가?’,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경험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 아닌가?’처럼 교육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질문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 그렇게 교육은 학습자의 경험에 매몰된 사적인 것이 되고 교육의 주체들은 “사적인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사적인 해결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문제인 양극화와 노동시장구조의 문제 앞에서 스스로 자기 계발하는 주체가 되는 것 외의 해법을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담론이 실제를 구성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공적인 물음을 품지 않는 교육 담론은 교육 실제를 그려내는데 있어 지배적인 사회 현실의 영향을 거스르기가 어렵다. 한국이나 북유럽이나 평생교육 연구자들이 다루는 이론, 현 시대에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북유럽의 평생교육이 한국의 평생교육에 비해 아름답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유는 “사민주의식 복지사회의 오랜 전통 하에 노동자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 없이 노동과 시민사회학습을 모순 없이 병행할 수 있”(나윤경, 앞의 글)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북유럽의 현실과 매우 다르다. 교육의 눈으로 이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시하는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실상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고, 교육의 목적을 묻는 것은 결국 시대의 가장 큰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큰 질문이 없는 교육은 기능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교육에서 ‘래디컬하다’는 것은 결국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끝없이 묻는 것이다.
 
박복선 <교육불가능, 교육의 근본을 묻는 것> 《오늘의 교육》 19호


위의 문장을 인용한 글에서 박복선은 학교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좋은 사회란 어떤 것인가”,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큰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교육 불가능을 선언하는 것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평생교육 담론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큰 질문이 아닐까.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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