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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마크롱, 28년만에 부유세 손본다  

부동산에만 세금 물리고 요트·수퍼카는 제외 추진
야당 "부자 감세" 반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0/2017102000281.html


끊임없는 반복을 항상 신문에서 본다.


일단 무엇이 반복되는가?

가진자와 못 가진자이다.

예전에는 귀족과 평민이었지만 그 때는 신분으로 고착되었고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로 오면서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자본주의는 일단 민주주의와 결합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하지 않은 것은 중국등 일부국가만이 그렇고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되었다.

지금은 봉건제 사회가 아니다.

그러니 신분제는 없다.

왜냐하면 공업국가이기 때문이다.


하나씩 풀어보자.

공업국가에서는 민주주의 사회가 필요하다.

왜 민주주의 사회가 필요한가?

공업국가는 2차 산업이다.

물론 서비스업인 3차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봉건제는 1차 산업이 중심이다.

1차 산업인 곳은 신분제 사회 즉 노예제 사회라 하더라도 관계없다.

왜 그런가?


1차 산업인 농업은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은 자신의 노력으로 결과물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자동차를 1시간에 한 대 뽑아 내다가 10분에 한대를 뽑아낸다면 6배의 생산성 향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업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농업은 자신만 열심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조건과 맞아야 하며 게다가 획기적인 슈퍼 볍씨(한 알을 심어서 수백배의 수확을 더 거둘 수 있는 슈퍼볍씨)의 개발이 있지 않고서는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농업은 노예제를 하나 민주제를 하나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엄청나게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열심히 몸을써서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제조업으로 대변되는 2차 산업과 서비스업인 3차 산업 밖에는 없다.

즉 공업국가는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윈도우즈나 안드로이드와 같은 OS다.

처음에 개발할 때는 개발비가 1천만 달러가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다음 사람들에게 뿌릴 때는 이론적으로 단돈 1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공업국가는 생산성 향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공업국가는 선진국이 되며 농업국가가 되면 후진국이 된다.


그렇다면 공업국가는 왜 민주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신분제 사회, 노예제 사회는 안 되는가?


아담스미스는 노예제가 가장 비효율적이라 했다.

왜냐하면 노예가 가장 노예의 직분에 합리적으로 충실한 것은 무엇인가? 

노예는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밥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외에는 인센티브가 없다.

그래서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고 노예는 최대한 많이 먹고 최대한 일을 안 해야 한다.

그러니 제조업,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야 기업이 발전하고 나라가 발전한다.

그러나 노에제 국가라면 열심히 일할 요인이 없고 생산성 향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산성 향상은 창의적인 천재가 나와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나와 지금까지의 2G폰의 시대를 마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노예들만 잇다면 2G폰을 최대한 덜 만들고 노동은 안 하면서 최대한 월급을 많이 타내는 전략을 일삼아야 하는데 어떻게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가?

그러니 공업국가에서는 민주제를 할 수 밖에 없다.

즉 자발적인 노동의 참여가 일어나야 생산성 향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노예제의 국가는 현재 남미나 동남아 국가에서 고무를 생산하거나 커피를 생산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 적당하고 그런 국가들은 대부분 못 사는 것이 당연하다.


잘 보면 노예제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농업에 의지하며 스페인, 포루투갈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그런 식의 노예노동이 가능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스페인 포루투갈은 선진공업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식민지를 만들었을 때도 공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노예들을 동원한 커피, 고무 등을 만드는 나라들이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영미권의 식민지는 어땠는가?

일단 선진공업국이었다.

선진공업국은 나라의 발전을 공업으로 이루어 낸다.

그러니 노예제보다는 민주주의를 해야 하고 자연스레 공장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영미권 식민지들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공업국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공한 공업국은 한국을 비롯한 몇 나라 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기지로만 쓸 뿐 그들은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발공업국이라는 나라들은 선진기술을 빼내기 위해 교육과 산업스파이 짓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기술을 빼냈고 일본은 영국과 독일에서 기술을 빼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그 기술을 빼내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이면서 생산기지 역할을 할 뿐인 동남아 국가들은 기술을 빼내거나 공업국으로의 변신이 힘들기 때문에 현재도 후진국에 머문다.

한국보다 1950년대에는 훨씬 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공업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일단 노동자와 자본가를 살펴보자.

노동자는 창조적 혁신을 하는 계층이 아니다.

노동자는 노예처럼 일 해서도 안 되지만 창조적 혁신을 대부분 하지 않는다.

그저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면 월급이라는 인센티브를 준다.

만약 노동자가 창조적 혁신을 한다면 직장을 때려 치우고 기업을 차릴 것이다.

아니면 프리랜서 등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는 극도로 드물며 그렇다 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들다.

그래서 부자가 별로 없는 것이다.


노동자를 보자.
그들은 누구 인가?

노동자는 월급을 인센티브로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내는 사람이다.그러나 여기서는 노동자를 자본가의 필요에 따라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 혹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필요란 무엇인가?

노동자도 자본가에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별된다.

연구직, 사무직, 생산직 등이다.

연구직은 창조적 혁신을 하는 역할을 하나 그들이 그 아이디어로 기업을 차릴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가 맞다.

사무직은 연구직과 생산직을 서포트 한다.

그리고 생산직은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어떤 식으로 벌과 상을 줄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노예처럼 채찍으로 때리지는 않는다.

다만 직장에서 내보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노예제에서는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꿈인데 여기서는 직장에서 스스로 나갈 수 있다.

즉 자본으로 통제를 한다는 얘기다.

직장에서 나가면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월급은 노동자에 목숨을 부지하는 수단인데 그 수단이 어느날 끊긴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는 월급이 끊기고 직장에서 잘리면 그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는 월급이 없으면 굶어죽었을까?

예전에 월급이 없어도 사는 시대가 있었는데 말이다.

TV프로그램을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이나 섬에서 혼자 살면서 물고기도 잡아먹고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월급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 왜 저렇게 힘들게 살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중이다.

노동자가 왜 월급에 목숨을 걸며 자본가가 시키는 대로 살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너무도 남에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하수구가 막히면 혼자서 뚫을 수있나? 

만약 뚫는다고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나? 화학약품을 사거나 기계를 사지 않나?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인가?

그래서 돈을 주고 화학약품을 사거나 기계를 산다.


쌀은 마트가면 살 수 있지만 쌀은 누가 생산했나?

남이 생산했다.

그것을 돈을 주고 샀을 뿐이다.


TV는 어떻게 볼 수 잇는가?

그것은 누가 만들고 전기는 누가 공급을 해 주었나?


아프면 병원에 가지 않나?

누가 진찰을 하고 나중에 약국에서 타는 약은 누가 주며 그 약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자본주의 사회는 남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남의 도움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란 사람들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세세한 분업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자본주의에서 종교가 되었다.

돈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고 돈 만 있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많다면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살 수 있다.

물론 사랑으로 말이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

1조 정도 주면 못 살 여자가 있을까?

반대로 1조를 주면 못 살 남자가 있을까?

그리고 1조를 줄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은 마치 신처럼 보이는 것이 이 자본주의의 생리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법은 돈이다.

돈을 주면 그 돈을 쫓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돈을 안 주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노예가 되는 삶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 원시 부족을 자본주의 사회로 끌어 들일 때 힘들다.

그들은 원래 이런 논리와 관계없이 살던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먹을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노는 데 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돈만 더 준다면 노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을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의 노동이 조선시대 소작농보다 일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해 떨어지면 일 할 수 없었고 저녁 시간은 온전히 놀았으며 일찍 자야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자는 전기라는 것이 발명되고 밤 늦게까지 일 할수 밖에 없으며 새벽같이 나와 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통제했을까?그것은 실업이다.
실업은 무엇인가?
직장에서 잘렸다는 뜻이다.
실업이 많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노동자의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자.

경기가 안 좋다.

그래서 잘렸다.

그리고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저기 노는 실업자가 정말 많다.

실업률이 사상최고치를 찍었다.

국가 부도사태까지 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것은 당연히 자본가들이다.

시장에 실업에 대한 공포가 만연할 때는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다.

쉴 권리, 자유에 대한 권리, 단체 교섭할 권리 등등 말이다.

왜냐하면 실업은 돈이 부족한 것이고 돈이 없다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때 공포를 이기려면 산골에 들어가 자연인처럼 살거나 해외에 못 사는 나라로 여행을 가면 된다.

그러나 처자식이 있고 그들을 부양하려면 노동자는 월급을 깎고 부당한 노동조건에서도 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라고 외친다.

그렇게 해야 처자식이 생기고 부양의무가 생기니 그들을 자본으로 통제하기가 쉬워진다.

자본가들은 실업률이 높을 때 가장 좋아한다.

능력있는 노동자를 싼 값에 쓸 수 있으며 그들이 말 또한 잘 듣는다.

말을 안 들으면 언제든지 �i겨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업률이 높으면 속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노동의 유연성이 확보 되지 않으면 자본을 투입하지 않겠다.

노동의 유연성이 무엇인가?

언제든지 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멘트는 항상 경제신문이나 보수적인 언론에서 단골로 나오는 멘트다.

노동의 유연성을 통해 실업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급여를 깎고 노동자를 쉽게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자본은 세계화가 되면서 국제간 이동이 활발 해졌다.

이것은 선진공업국인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은 선진공업국이니 미국의 물건을 비싸게 팔고 혹은 대량으로 생산하여 원가를 낮춘 공산품을 대량으로 팔고 후진 농업국으로부터 농산물이나 원재료를 싸게 사오는 일을 해야 가장 이득이다.

그런데 국제적인 이동이 활발하지 않고 그들끼리 자급자족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나?

미국도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처럼 비효율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80년대부터 일어난 신자유주의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킨다는 구호아래 점점 더 세계화 되었다.

세계화는 분업화다.

미국은 자동차를 만들고 남미는 커피를 재배해서 서로 교환한다.

그러나 생산성 높은 자동차를 만드는 미국인들은 더 부유해지는 반면 커피를 만드는 남미는 1달러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미국이 이렇게 만들어놓은 세계화는 WTO(세계무역기구)를 통해 상품간의 이동 뿐 아니라 자본, 서비스의 이동도 자유롭게 해 놨다.

그러자 미국의 꼭대기에 있는 자본가들이 WTO체제 안에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게임을 펼치게 된다.

미국이 법인세가 높으니 본사를 법인세가 아주 싼 EU의 아일랜드로 옮기고 그곳에서 세금을 감면 받는 식의 자본의 이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 미국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게다가 미국의 제조업 기술은 이미 동북아로 넘어온지 오래다.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이 미국 기업을 제치고 미국에 훨씬 더 많은 수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무역적자는 늘어난다.

그래서 미국은 보호무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은 현재의 세계자유무역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그것을 만들어놓은 미국은 신흥공업국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무역적자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를 몰아줘야 할 유권자가 오히려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 원하는 아니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트럼프와 같이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리더를 뽑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과 자본가들의 관계를 살펴보자.

정치인들은 자본가들을 세무조사나 국정감사와 같은 형태로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니 자본가들을 협박하던지 구슬려야 한다.

구슬리는 방법은 정치적으로 노동유연성이 커지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 이름이 다른 말로 규제개역이다.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화 되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얼마든지 공장을 해외로 돌리고 국내의 공장을 폐쇄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일자리가 많이 줄어 투표 숫자가 훨씬 많은 노동자들의 표가 오지 않아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편을 든다고 정치인들이 집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개혁으로 실업이 많아지면 인기가 떨어져 재집권을 못한다.

그러니 정부는 자본가들에게 유리 혹은 불리한 정권이 주기적으로 교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는 이렇게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정당을 보수정당,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정당을 진보정당으로 기본이념으로 삼고 정치활동을 한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1. 자본가가 되는 방법이다.

자본가가 된다면 노동자를 부리고 그들을 통제하며 자본주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할 때 노동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다.


2. 노동자가 되는 방법이다.

현재의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최대한 자본가들에게 뽑아 낼 수 있는 월급을 뽑아낸다.

그러나 한계는 있으므로 나이가 들거나 능력이 없다면 노동자로서 인생은 끝이 난다.

그래서 노동자로 살면서 자본가로 살아갈 수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3. 자연인이 되는 방법이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싫다면 그냥 섬에 들어가 살거나 연금소득으로 후진국에 가서 사는 방법이 있다.


노동자이면서 자본가로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자는 봉건시대 때 노예와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로 부터 얻은 강제적 자유는 굶어 죽게 만들 따름이다.

물론 이런 것 때문에 국가의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즐기려면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가들과 생산수단을 고유해야 한다.

자신이 자본가가 된다면 좋겠지만 위에서 보듯이 실패 했을 경우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산수단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형편없고 장사의 기술이 없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된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를 통한 자영업은 진정한 자본가라고 볼 수 없다.

대기업에 종속된 노예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이라면 무엇인가?

사업아이템이고 생산능력이고 인재이고 연구개발이고 기타 등등이다.

그런 것을 내가 다 만들지 못하고 자본이 없다면 이렇게 좋은 자본가들이 이뤄놓은 기업을 조기에 발견해서 그들과 동업을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의 아이템을 공유하고 생산능력이 좋은 공장을 공유하고 그들의 연구개발 인력을 공유한다.

물론 그들을 내가 직접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자본의 과실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익에 관한 배당이다.


배당이 얼마나 필요한가?

많으면 좋지만 그렇게 많을 필요는 사실 없다.

내가 노동자로서의 능력이 끝났을 때 생활비정도만 벌면 된다.

그러니 생활비정도를 배당으로 챙기고 생산수단인 주식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배당을 늘려가는 것이 그나마 노동자로서의 살길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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