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진짜 떠날줄 몰랐다, 위기를 느꼈어야 했는데…"

"GM 진짜 떠날줄 몰랐다, 위기를 느꼈어야 했는데…"


[기업 떠난 '군산의 눈물'] [下] 폐쇄된 공장, 근로자들의 회한

1일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21년 일한 백승진(49)씨는 아내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회사가 희망퇴직 후 남은 직원 600여 명 가운데 부평·창원 공장으로 전환 배치할 200여 명 명단을 발표하기로 한 날이다. 명단에 들지 못하면 최대 3년간 무급휴직을 해야 한다. 백씨는 "연락을 받으면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로 했는데 발표가 늦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이날 전환배치 200명 명단을 확정 짓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는 "근무 연한, 근무 태도, 부양가족 등을 고려해 대상자를 선별해야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일러야 다음 주 중반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백씨는 "빨리 결정이 나면 좋은데,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폐쇄를 하루 앞둔 지난 30일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한 직원이 어두운 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폐쇄를 하루 앞둔 지난 30일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한 직원이 어두운 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회사 측은 1일 군산 공장 직원 600여 명 중 부평·창원 공장으로 전환 배치할 200명을 통보할 예정이었으나, 이르면 다음 주 중반으로 미뤄 발표하기로 했다. /김영근 기자
21년 함께한 공장의 폐쇄는 현실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한다. 회사를 향한, 또 자신을 향한 소회가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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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열(48)씨는 차량 안쪽에 전기 배선이나 에어백, 플라스틱류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 일주일 정도 배우면 바로 공정에 투입 가능했다"며 "회사를 나오니 우리가 가진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서주호(41·가명)씨는 공장에서 브레이크 조립을 담당했다. 학교 졸업 후 얻은 첫 직장이었다. 이제까지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요즘엔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공장 폐쇄가 직원들에겐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GM 공장에서 설비유지 관련 일을 했던 송용선(55)씨는 2011년 연간 26만8000대, 50초에 1대씩 생산하던 시절이 생생하다. 군산 공장은 2002년 대우자동차에서 GM대우로 사명이 바뀔 때 인원 구조조정이 거의 없었다. 2013년부터 가동률이 떨어졌을 때 막연한 불안감은 느꼈다. 송씨는 "이렇게 빨리 문을 닫을지는 몰랐다. 우리가 좀 더 위기감을 느꼈어야 한다는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GM 군산공장 폐쇄에 대한 소회
11년차 직원 양재명(35)씨는 "우리는 하루 전까지도 공장 폐쇄 결정을 몰랐다"고 했다. 2월 초 생산라인에서 모든 차량을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공장 관리직원은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양씨는 "회사 상태를 제대로 알았으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양보했을 거다. 기본급만 받아도 작업복 입은 사람들은 다 그걸 감수했을 것"이라고 했다. 군산에서 35년을 산 김종필(55)씨는 "일반 사람들도 '대기업이니까 설마 문을 닫겠나' 하는 생각을 한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정부나 시도 별다른 조치를 못 취한 것 같다"고 했다.

체념의 목소리도 크다. 자신들이 어떤 노력을 했어도, 공장 폐쇄를 피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GM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이정권(43)씨는 "자동차 공장은 신차 배정을 계속해줘야 돌아간다. GM 본사가 판매 부진 등을 이유로 새 모델을 주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고 했다.

처지에 따라 공장 폐쇄를 바라보는 소회가 다르다. GM 비정규직으로 12년 일한 조기영(39·가명)씨는 1일에도 채용 사이트에서 일거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지난 2월 26일 다른 비정규직 근로자 150여 명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들에겐 전환배치나 3년 무급휴직 같은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조씨는 "어떤 식으로든 공장이 재가동되는 것 말고 우리가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우리는 다시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외부로부터 따가운 시선은 견디기 힘들다. 위기 속에서도 올 초부터 사측과 노조는 복리후생 축소안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 노조는 임금동결과 성과급 유보에는 동의했지만, 중식 유료화·자가운전 보조금 축소 등 일부 방안에는 반대했다. 합의안은 4월 말에 확정됐다. 노조 관계자는 "강성 노조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됐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경쟁 업체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일해왔다"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2/2018060200118.html이정열(48)씨는 차량 안쪽에 전기 배선이나 에어백, 플라스틱류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 일주일 정도 배우면 바로 공정에 투입 가능했다"며 "회사를 나오니 우리가 가진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서주호(41·가명)씨는 공장에서 브레이크 조립을 담당했다. 학교 졸업 후 얻은 첫 직장이었다. 이제까지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요즘엔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아담스미스는 분업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분업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반드시 바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담스미스는 얘기한 것이 있다.

인간은 분업의 시대에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교육을 통해 저렇게 컴퓨터 등을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지만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배움을 얘기한 것 같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인문학과 같은 것 말이다.

인문학은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그리고 경제를 공부했을 것이다.

경제는 세상살아가는 지혜를 알려 준다.

경제를 알았다면 공장을 다니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면 위기가 오기 전에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정세를 읽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알고 지금 어디에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어깨에 우리 가족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반드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녹초가 되어서 퇴근하더라도 꼭 배워야 할 무엇인가를 배우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퇴직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급작스럽고 당황스럽게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와야할 일이 왓으므로 말이다.

신문에서는 이렇게 떠들지만 기획기사일뿐이다.

재난지역으로 나라에서는 선포를 한다지만 그것은 그냥 정치적인 수사일뿐이다.

지방선거 얼아 안 남았으니 이벤트 정도다.

내인생은 내가 살아내 가야 하는 것이다.

누가 내 인생을 살아주지도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

부모가 아닌 이상 말이다.

솔직히 부모도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는가?

결국은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오늘 취직해 있으면 평생 취직해 있고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냥 월급 받으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다.

단기적인 기억과 근시안적인 미래밖에 예측 못한다.

그러니 결국 그렇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다국적 기업 욕 해봐야 결국 남는 것은 없다.

나라에 손 벌려봐야 6개월 실업수당이 전부다.

결국엔 6개월 후엔 자기 자신만 남는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배움을 멈추면 안 된다.

배움은 인생을 살찌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알려준다.


그래서 아담스미스가 대단한 철학자인가 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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