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 생각에는…"

[일사일언] "내 생각에는…"


입력 : 2017.08.03 03:02

2017080300080_0.jpg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2000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 이후 불어회화를 서둘러 해야 한다는 마음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TV 방송을 한동안 끈질기게 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 방송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바로 "je pense que"와 "parce que"라는 말이었다. 당시 그 뜻이 너무 궁금해 어설픈 발음으로 지인에게 물어봤다. 본인의 생각을 얘기할 때 말하는 '내 생각에는(je pense que)'이라는 뜻과 '왜냐하면(parce que)'이라고 했다.

그 단어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굉장히 멋진 뜻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지라 처음엔 다소 실망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니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이 말을 당당하고 명확하게 해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고 깨닫게 됐다.

결국 나의 솔직한 생각을 남에게 말하는 걸 꺼리거나 망설였었다는 것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감보단 겸손을 내세우고, 그리고 맹목적인 양보와 희생, 인내 같은 것들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미덕이라 배워왔다. 또 자신의 솔직한 생각이나 신념 같은 건 다락방 한구석에 따로 숨겨 놓고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는 식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나에겐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7080300080_1.jpg

그런 파리지앵들과 뒤섞여 해를 거듭해 지내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말과 행동에 자신감과 존재감이 묻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런 요소들이 지금껏 나의 춤과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의견이 당신과 같다면 난 프랑스인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프랑스인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적이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서로 존재 가치를 인정해보는 건 어떨까. 이견에 대해 긍정적인 호기심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다락방 깊숙이 숨겨놨던 자아와 정체성의 존재를 꺼내어, 당당하게 "je pense que"(내 생각에는)와 "parce que"(왜냐하면)를 얘기하면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3/2017080300080.html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자신의 저술이 옛 일을 따라 기록했을 뿐 스스로 창작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말이다.

공자가 이말을 햇으니 공자를 계승한 조선은 오죽했으랴?

물론 중국도 그런 유학을 계승한 나라라 그런 전통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왕양명의 양명학이 발전한 이후 그런 말이 줄어들었다.

창작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선은 소중화 사상에 쩌들어 성리학을 받들고 술이부작했다.

술이부작이 무엇인가?

창작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냥 옛 선현의 말씀을 따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옛선현의 말씀을 깨부순 나라일수록 빨리 발전을 이루었다.

서양은 중세시대까지 성경말씀에 얽매여 있었으나 르네상스 이후로 술이부작하는 전통이 사라지고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문화를 발전시키고 과학은 종교를 부정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고 발달한 과학으로 아시아를 침공했다.


솔직히 영국이 무역하자는데 중국은 뭐 받을게 있어야 무역할게 아닌가?

그런데 영국에 군사력에 무너지고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반식민지 상태로 가게 되었다.

이것이 옛선현의 술이부작 때문이다.

술이부작은 창작을 억제한다.

새로운 정신이 나오더라도 암기만 철저히 하고 그 정신만 계승하면 되는 것이지 개뿔이나 네 생각은 중요치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그것이 산업화를 겪으면서 더 심해졌다.

빨리 서양을 따라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서양학문을 술이부작 했다.

철저히 암기해야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따라가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지금도 조직사회에서는 술이부작이다.

그냥 윗사람 명령을 따르면 된다.

네 생각은 필요없다.

그러나 서양은 술이부작은 르네상스 시절에 깨졌고 그 이후 그전통은 이어져 내려온다.


서양에서는 청출어람이라는 말 즉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서양에서 미술사조를 보면 사실주의에 반대해서 인상주의가 나왔고 인상주의를 극복하며 표현주의가 나왔다.

그리고 큐비즘, 다다이즘 등 그 이전의 미술사조를 극복하며 새로운 미술사조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다르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술이부작이 깨부셔야 할 전통인가?

아니다.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공부하고 깨우치는 것은 반드시 이런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는 내 생각이 중요하다.

그래야 내가 발전하고 나라가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조직문화, 상하관계가 엄격한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특히 학교에서 더 심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깨부수고 나만의 생각을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면 왕따가 되고 조직에서 밀려난다.

그런 재능이 있다면 이민을 가야 정상이다.

그런 것에 있어서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

투자라는 공간이다.

얼마든지 내 생각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투자는 원래 남들과 같이가면 오르면 사고 떨어지면 파는 식의 투자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의 세계가 항상 외롭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도권 GTX 15조·평택~오송 고속철 3조…민자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