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이블>(김종관, 2016)을 보고
영화 <더 테이블>의 경진(정은채)은 푸드 칼럼니스트다. 음식의 모양과 맛을 활자로 묘사해낸다. 그녀는 최근 이직했다. 경진과 마주 앉은 민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늘 소설을 쓰고자 한다. 직장을 옮기는 잠깐의 시간 동안 소설을 쓰려고 펜을 들었지만, 몇 자 적지 못했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일은 참으로 지난하다. 5년 전, 나는 살면서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 소설 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5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읽고 많이 썼다. 시험 하루 남긴 새벽에도 공부하던 것 모두 제쳐두고 글을 쓰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써낸 소설이 겨우 단편 2편 남짓. 그나마도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하나도 없다. 구체적인 장면과 그 순간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매일같이 떠오르지만,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소설을 써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참 어렵다.
이 영화는 못다 쓴 소설과 닮았다. 같은 카페의 같은 자리, 같은 테이블을 거쳐 가는 여덟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무장한 여배우인 유진(정유미)은 전형적인 회사원으로 변해버린 전 남자 친구 창석(정준원)을 만나고, 경진(정은채)은 썸을 타다 훌쩍 인도로 떠나버렸던 민호(전성우)를 만난다. 전문 결혼 사기꾼인 은희(한예리)는 어머니 역할을 해줄 또 다른 사기꾼인 숙자(김혜옥)를 만나고, 가을에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운철(연우진)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다.
공통된 구석이 없는, 그러나 그렇게 차이나지도 않는 인물들이 만나 나누는 찰나의 이야기.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 이 카페의 테이블에 다다랐는지를. 한 편의 완성된 소설은, 아쉽지만 없는 것이다. 낱장으로 찢긴 이야기들 뿐.
쓰다 만 원고가 가득한 나의 5년이 허송세월이었냐고 묻는다면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죄와 벌> 같은 대작들처럼 완성되어 축복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수년 째 같은 책꽂이를 지키고 있는 내 두 편의 짧은 단편을 사랑한다. 소설로 채 완성되지 못한 장면 속의 인물들 역시 내 주변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소설은 써지지 않아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으니까.
유진에게 사진과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뒤돌아서서 그녀에 대한 증권가 찌라시를 돌린다. 경진은 늦은 나이에 겨우 좋아하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돈은 못 번다. 은희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거짓을 연기해야 하고 혜경은 떠밀린 삶 끝에서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잘 살고 싶다. 그러나 잘 안 된다. 매일 밤 자괴감에 자책할 때, 나는 한가지 사실만을 기억한다. 잘 살아지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못다 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