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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Sep 24. 2021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BCN 〰 DUB. 01

2020

0225

Day1.




퇴사 후 정확히 2주 뒤 출국이었다. 모든 것들을 충동적으로 결정해놓고 유럽여행 전문 카페 '유랑'을 수시로 접속했다. 유럽 곳곳의 코로나 소식은 어떤지,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심각성은 어떠한지. 그보다도 자유게시판이 아주 뜨거웠다. 여행을 취소했다는 사람들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고 그 중에서도 꿋꿋하게 이 여행을 강행하겠다는 게시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대부분 여행을 취소한 사람들이 올린 댓글이었다.


"왜 굳이 이 시국에 나가려고 하는 거죠?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뭐 대충 저런 뉘앙스였다. 나는 손해를 보고 취소까지 했는데 배 아프게 너는 왜 꿋꿋하게 가느냐.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뭐 그런. 사람들 참, 심보가 고약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행을 강행하겠다는 사람 중 하나였다. 글을 직접 올리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평생에 한 번 뿐일지도 모를 이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글에서 나름 동질감과 위로를 느끼며 '불안'은 그냥 못 본 척, 일부러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출국 전날 여행 내내 듣고 볼 음악과 영상들을 모두 다운로드 해두었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도 오프라인 상태로 음악과 영상을 끊김없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대비를 해둔 것이다. 유튜브 뮤직에는 친구가 추천해준 플레이리스트들로 준비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하고 그리워 할 모양이었던 것 같다.


출국날 비가 세차게 내렸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에 많은 걱정의 문자와 연락을 받았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탑승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챙겨둔 책을 한 권 꺼냈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내 여행의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고생했던 나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는 것 말고 나는,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사실 지금와서 답을 찾겠다고 한 건 지나치게 거창했던 거고 왜 살아야 할지 이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지를 누군가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비행기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화장실 가는 걸 생각해서 일부러 가운데 섹션 복도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이렇게 텅텅 비어 갈 정도면 창가 자리에 앉았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비행기는 하늘 높이 올라갔고 제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승무원의 눈치를 보다 텅 빈 좌석들로 제멋대로 자리를 잡아 앉았다. 3개 좌석이 붙어 있는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다리를 쭉 뻗고 가거나 어떤 사람은 드러 누운 채로 가기도 했다. 모두가 편하게 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제일 정직했다. 아니, 멍청한 걸 수도 있다. 14시간 내내 나는 나름 정해진 자리를 지키겠답시고 다리를 뻗고 자지도 못했다. 이건 그냥 바보였던 거다.






14시간 동안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간식이 나왔다. 밥을 먹고 살짝 쪽잠을 자다가 눈을 뜨면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 알딸딸한 기분으로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다가 나는 어디쯤 떠있는 걸까 하며 비행 위치를 자주 살폈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러시아 상공 어딘가였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기(1)>


1월 내내 몸이 아팠고, 3년이 조금 넘은 연애도 끝이 났다. 다 지나갔고, 나는 서른 하나니까. 서른 하나면 뭐, 괜찮아. 아직 예쁠 나이니까...라고 말하지만 나라는 인간, 다시 바닥이 보이겠지 금방.


바르셀로나에 가면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연락은 잘 할 수 있을까? 왓츠앱으로 연락 달라고 했는데 난 쓸 줄도 모르는데...영어로 말하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보다폰 유심도 작동을 안 하면 어쩌지? 지하철, 버스 소매치기는 어떻고. 유로 계산도 잘 못하면 어쩌지? 그런데 전 남자친구에게 제대로 정신교육 하나 받은 건 '일어나지도 않을 일 걱정하지 말자.' 라는 것. 괜히 에너지와 시간 낭비랬으니까 지금도 즐기고 누릴 시간들 많으니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자.


나는 너무도 많은 불안과, 우울감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서른 하나 인생 중에서 아마 21년은 그렇게 산 것 같아. 얼마 전 <멜로가 체질>을 보는데 "나는 팔꿈치도 딱딱하고, 머리도 딱딱하고, 무릎도 딱딱한데 마음은 안 딱딱해." 라는 대사가 나왔는데 크게 와닿았어. 겉에서 볼 땐 단단하고 내실있어 보이지만 왜 항상 내면은 그게 아닐까. 나는 왜 항상 쓸리고 베이고 다치고, 그러다가 너덜너덜해지고. 너덜해진 이 마음은 또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겠지.





평강 | 삼십 둘, 취미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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