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03호의 밤

가족, 외면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것

편지 일기 07.

by 쪼바다에 누워


최근에 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와 영옥 편이 자꾸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


그 에피소드를 보며 울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그 모든 것에 부채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번에도 거의 대부분 모두가 그 편을 보고 울었다.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모두’라기보다 가족에 대한 부채감을 품고 있음과 동시에 외면하고 있는 ‘그’ 모두를.


영희와 영옥 편은 장애가 있는 가족을 다룬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일반 가족들에게도 대입해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일반 가족’이라는 게 어디 있어. 다 같이 똑같은 가족이지.


8남매 중 둘째인 우리 아빠에게는 소아마비에 걸린 동생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 동생의 등하교는 아빠의 몫이었다. 삼촌이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아빠가 등에 엎고 다녔다고 했다. 정릉 그 동네에서는 유명한 8남매 집안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여전히 넷째 삼촌 이야기를 하면 눈물바람이다. 큰 아빠, 고모들, 삼촌들은 아빠에 비하면 꽤 냉정한 사람들인데 아빠가 유독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릴 적 명절에 큰 집에 모여 주안상을 거실 한가운데에 차려놓고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성이 오고 갔다. (그 자리엔 없던) 넷째 삼촌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모들은 삼촌이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가도 가지 못해 답답해했고 그 불만에 대한 방패막이가 되었던 건 우리 아빠였다. 아직도 아빠의 목울대가 뻣뻣하던 그 목소리가 선명하다.


“경원이가 저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경원이 학교 다닐 때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피 철철 흘리고 있을 때 니들은 뭐했어? 내 등에 업혀서 경원이 피가 바닥에 빗방울처럼 떨어졌어. 니들은 경원이가 동생인 게, 형인 게 창피했잖아. 쟤라고 번듯하게 두 다리로 걸으면서 사회생활 안 하고 싶겠어? 좋은 색시 만나서 결혼 안 하고 싶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그럼 안 되지.”


우리들의 블루스 15회에서 영옥의 눈에 분노와 슬픔이 담긴 눈물의 대사가 그랬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


“내가 아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제발 영희 같은 애를 낳아라, 아니면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지거나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나 돼라… 억울해. 왜 나한테 저런 언니가 있는지, 억울해. 근데 나도 이렇게 억울한데 영희는 저렇게 태어난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싶은 나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 근육이 점점 퇴화하고, 기력이 떨어져 조금만 격한 움직임에도 근육이 마비되는 열다섯 살짜리 우리 집 강아지. 정해진 시간 없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뒤틀리면 그도 겁이 나 사람이 울부짖듯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병원에서 응급으로 처방해준 상비약을 먹이고 근육 마비가 진정될 때까지 품 안에 꼬옥 안고 달래는 일 뿐이다. 내가 일을 나간 시간 동안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눈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귀가 잘 들리지도 않는 우리 집 강아지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가장 두려운 건 늦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다.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새벽녘 눈을 뜨고 몸을 쭉쭉 뻗고 자는 강아지 심장에 손을 얹는다. 따뜻하게 뛰고 있는 그 순간 나는 크게 안도를 한다. 그럼에도 내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건 이 친구의 외로움. 혼자 있는 긴 시간 오로지 나만 기다리며 잠만 자는 게 전부인 우리 집 강아지의 외로움을 나는 애써 외면 중이다. 외면하지 않으면 나는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다음이 아빠와 엄마, 남동생이다. 우리 가족들은 그래도 꽤 행복했다. 꽤 수준이 아니라 화목하고 사랑이 많은 집이었다. 활동적인 엄마와 아빠 덕에 어릴 적부터 많은 곳들을 놀러 다니며 여행의 즐거움을 이르게 느꼈고, 동생과 나는 사랑을 듬뿍 받아 주변 친구들에게 그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기 전까지의 일이지만. 우리 가족들은 나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싸가지가 없다’라고 말한다. 냉정하고 냉소적인 내 표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빠의 외로움과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그리고 헛된 희망 같은 걸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장녀로서의 ‘중재’ 역할 같은 걸 바라고 있지만(물론 그 역할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더 이상은 하지 않는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테고.


동생의 불행을 외면하고 (싶) 있다. 별 볼일 없는 동생과 결혼해준 올케에게 고맙고 미안하지만 동생이 현재 처한 상황을 가급적이면 돌아보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나의 태도를 엄마가 오히려 더 불안해하고 있지만.


자의로 책임에서 멀어지는 일은 마음이 저리다 못해 쓰라릴 지경이다. 주변에서 모질다고 손가락질해도, 싸가지 없다고 욕을 해도 나는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멀어질 거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지금도 들려오는 가족의 불행한 상황들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슬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냉정하고 모진 큰 딸이자 누나가 될 생각이다. 마지막의 순간에 내가 가장 후회하고, 가장 많이 아플 건 확실하지만.


아이러니 한 건, 이런 내게 꿈같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심리상담을 몇 회 간 받았는데 그때도 가족들 이야기로 울기만 하느라 거의 말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 동안 계속 울기만 하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어렵게 입을 뗐다.


“좋아하는 사람과 저녁을 함께 먹었던 날이었어요. 밥을 먹으며 가족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랐더라구요. 사랑을 많이 받았대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나도 내가 사랑을 줄 수 있고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요. 이상하죠? 가족이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다고 여태까지 눈물바람이었으면서 이런 제가 가족을 만들고 싶다니요.”


그러자 선생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거 되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당신이 받지 못한 걸 마치 보상심리인 것처럼, 본인에게는 그 마음이 간사하고 가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좋은 가족을 만들 수 있어요. 아파봤잖아요, 가족 때문에 힘들어도 봤던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신중하고, 예쁘게 가족을 꾸릴 거예요 당신은.”


그럼에도 열심히 사는 건 가족을 위한 이유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자랑이었으면 하는 마음, 조카가 갖고 싶다는 건 고민 않고 다 사주고 싶은 고모의 마음, 동생에게 한 순간만이라도 자랑스러운 누나로 보이고 싶은 알량한 그 마음.


참 시시한 이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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