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병이 우울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내 병에는 듣지 않았습니다. 항우울제가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조울증이란 병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서 문득 내가 그 병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약하지만 조증일 때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어요. 조증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기분이 위로 상승하여 들뜬 상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찾아보니까 조울증 중 양극성 장애 2형은 우울이 길고 약한 조증(경조증)이 있는 병으로 나의 증상과 비슷했습니다. 다니던 정신과 의사에게 말해 조울증약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그러자 2개월 만에 나의 증상은 많이 좋아졌어요. 참 놀라운 일이었지요.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었던 거예요. 의사도 눈치채지 못했던 일이지요.
좀 더 일찍 내가 양극성 장애 2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좀 덜 고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조증과 울증이 강하게 차이 나는 양극성 장애 1형만 조울증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양극성 장애 2형을 앓고 있는 나의 증상과 대처 방법에 대해서 써보기로 합니다.
양극성 장애 2형에서 찾아오는 우울 삽화는 내가 느끼기에 그냥 우울증이랑 사실 다를 게 없습니다. 깊은 우울함과 무기력이 주요 증상이었지요. 과수면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내가 조울증이란 걸 알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울 삽화가 찾아오면 우울증이라고 여길 때 쓴 대처 방법들을 썼습니다. 일단 이삼일 정도 푹 쉬고 힘이 난다면 조금씩 작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한 일에 대해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칭찬을 해요.
이를 반복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우울 삽화 때에도 이 방법이 나에게는 잘 듣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작은 일을 하는 게 참 힘들지만, 항상 애를 쓰면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조울증의 종류 중 하나인 양극성 장애 2형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울과 약한 조증인 경조증을 특징으로 합니다. 양극성 장애 1형처럼 조와 울의 차이가 엄청 크지는 않지만 역시 기분 차이가 있는 병이지요. 하지만경조증은 우울증에서 우울 삽화가 끝났을 때 찾아오는 기분 좋은 상태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걸 조울증의 증상이라고 여기기 힘들었던 거지요.
저는 경조증일 때 주로 무언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기분에 여러 가지 일들을 벌입니다. 그러다가 금방 우울 삽화가 닥쳐오면 그걸 할 힘이 없어져서 모두 다 그만두는 일을 여러 번 겪었어요.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 싶어서 자책이 심했는데 병이였다니 좀 마음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기분이 아무리 기분이 좋고 의욕이 나도 너무 많이 일을 벌이지 말고 적당히만 벌여서 혹시 찾아올 우울 삽화 때를 대비합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10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5 정도만 해서 나중에 -10이 되지 않고 -5가 되도록 하라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조울증에서는 에너지를 잘 조절하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적절히만 해서 다가올 힘든 시기를 대비하고 그만두는 일의 종류를 줄이는 것입니다.
예술가인 내게 경조증일 때 떠오르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나 높아지는 창의력은 경조증을 굉장히 사랑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계속 경조증이길 바라기도 했지요. 잠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가 제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경조라도 그 시기에 대한 탐닉이 클수록 우울 삽화는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경조일 때도 너무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심하면 약 조절을 하고 너무 들뜨고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울증의 증상으로 내게 새로 찾아온 것 하나가 불면증이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고 머리가 각성상태로 계속 있었습니다. 이 불면 때문에 지금도 취침약을 6알 넘게 먹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짜증 나고 힘이 들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적응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4~5번씩 깼는데 이제는 1~2번으로 줄었고 약도 조금씩 줄고 있으니까요.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생전 안 하던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울증에서 중요한 것은 또한 자신의 기분 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분을 기록하는 앱을 쓰고 있는데 나에게는 잘 맞았기 때문에 소개합니다. 이름은 eMoods입니다. 아래 사진처릠 수면시간과 우울한 기분, 고조된 기분, 불안한 정도에 대해 쓸 수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추적요소를 더해서 넣을 수 있는데 저는 무기력, 자살사고, 에너지 레벨을 넣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분을 기록해서 계속 추적하고 자신이 계속 알고 싶은 것들을 추적요소로 넣어 유용하게 쓰기를 권합니다.
우울증에 이어 조울증이라는 새로운 벽을 넘어가기 위해 나는 애쓰고 있습니다. 우울증약보다 조울증약이 좀 더 오래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냥 고혈압약이나 심장병 약처럼 생각하기로 하고 있습니다.
양극성 장애 2형에 대해 쓰고 그에 대처하는 나의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했습니다. 같은 병으로 힘들어하는 혹은 비슷한 증상들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