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남자친구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의 집 식탁 유리 덮개 아래에는, 어머니의 사진들이 여러장 꽂혀 있었다고 한다. 정기 건강 진단에서 갑작스레 간암 선고를 받고 입원한지 꼭 섣달 만의 일이었다. 그날은 어머니의 생일 다음날이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병문안을 갔을 때, 그분은
"올 봄에는 꼭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못 가게 되어서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덧붙였다.
"간암 말기라면 아프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던데, 나한텐 아프다 소리 한 마디도 안 하더라."
평생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온 분이라고 했다.
그의 죽음은 근 삼 년간 내 주위에서 일어났던 세 번의 자살과 한 번의 반 자살에 이은 다섯 번째 죽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든, 언젠간, 공평하게 찾아 와준다는 것을 이 시간들을 통과하며 깊숙이 깨닫고 안심했기 때문이다. 그뒤로 죽음과 삶은 쌍둥이라는 사실을 계속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걸 눈치챈 건 어머니의 핸드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문자 메시지가 별로 오지 않던 어머니에게 자주 메시지가 왔다. 장난기 반, 호기심 반으로 훔쳐 본 받은 문자함에는 어머니가 평생 들어보지 못 했던 다정한 안부의 글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놀랐다기 보다는 어쩐지 기쁘고 안심했다.
이 글은 어머니의 남자친구를 기억하기 위한 글이다.
나는 왜 그와 함께 밥 한끼를 같이 먹지 않았던가. 어머니가 처음으로 남자에게 진심으로 배려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정말로 고마운 분이건만. 어머니를 처음 에버랜드에 데려가주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나도 못 사준 예쁜 반지와 목걸이를 사준 분이건만.
어머니는 그날, 크리스마스에, 솔로였던 나에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차마 자랑하기 미안하지만, 보여주고 싶어 죽겠는게 다 보이는, 무척이나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그해 겨울, 그분은 김장을 휙휙 시원한 손놀림으로 도와주고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기 전 서둘러 가셨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난 나중에 늙어서 둘이서 시골에 가 오순도순 살면 되겠다 생각하고 안심했다.
키는 작지만 착하고, 다정한 목소리와 강하고 넓은 마음을 가진 분이었다. 나는 그를 오래 기억하기로 결심했다. 잊지 않겠다. 엄마 인생에 처음으로 꽃을 피워준 그분을. 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로 상냥했던 그분을. 엄마를 이 년동안 행복하게 해 주고 간, 그분의 이름과 얼굴을. 사랑받고 사랑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 그분을. 비록 그게 닮은 꼴인 엄마와 나 사이엔 어렵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그분의 이야기는 그뒤로 더이상 하지 않았다. 그분이 사준 새 핸드폰과 그분이 사준 목걸이와 그분이 사준 핸드백은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 간직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를 글로써 간직한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나중에 저쪽 세상에서 꼭 따뜻한 밥 한끼 같이 먹어요.
(* 어느해인가 TV의 단막극 제목에서 차용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