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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생존자 작은 말하기 모임에 다녀오다

오래 전 어느 특별했던 여름날에 쓴 글

by 조제

(이글은 작은말하기 후기의 성격이지만 나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만 쓸 것이며 절대 타인의 개인 경험을 쓰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윤리이다)


20xx년 7월 30일 과 7월 31일. 어제와 오늘.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이틀이었다.

7월 30일 수요일을 나중에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두번째 정도는 중요한 날이 되지 않을까.


거의 한달치분의 일이 그 이틀 사이에 일어났다.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글로 기록하면서 되새겨보고 생각해보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도 많다.


7월 30일. 벌써 그저께가 되었지만 체감상으로는 어제인 그날 나는 드디어 3년에 걸쳐 못 갔던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작은 말하기 모임에 갔다. 이제는 더이상 뒤로 미룰 수 없다고 느꼈기에. 모임이 있는 까페 '사이애'는 너무 밝고 환하고 공개적인 느낌이라 처음에는 기도 죽고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듣고 하면서 나는 어느새 모임의 분위기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다른 이들보다는 몇배로 공감할 수 있었고, 서로 서로를 받아들여주고 있고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디 가서 이렇게 마음 편히 눈치 안 보고 이런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글도 아니고 입으로 소리내어 말 할 수 있을까.


평온해 보이던 얼굴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터져나온다. 울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몇번이나 이런 모습을 봤다. 그리고 나또한 그랬다.


사실 나는 몇년전부터 혼자서 글쓰기로 예전에 기억들을 많이 치열하게 질리도록 써왔고, 혼자서 울기도 눈알이 빠지도록 엄청나게 울었고 치유 글쓰기 워크샵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 더이상 그 일들을 이야기해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을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슬그머니 나왔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나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런 줄 알았지 내가 이야기를 할 땐 울지 않을줄 알았다. 몇번이나 몇십년이나 생각하고 떠올리고 글로 썼던 일들이 아닌가.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목소리가 떨리고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어, 울기 싫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말은 계속 했는데 목소리도 엉망진창 흐느끼면서 간신히 말을 멈췄다. 이건 거의 자동반응이구나.


이젠 글로 쓰거나 기억을 떠올릴 땐 눈물이 제법 안 나오게 되었는데 '소리내어 말하니' 또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사건은 몇십년 전에 일어났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지옥은 바로 '지금 여기'가 되고 생생한 그 플래시백은 한번 작동되면 제몫을 다 보여줄 때까지 내 영혼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를 지지해주는, 나의 경험이 개인의 영혼에게 어떤 손상을 미치는지 너무도 잘 아는 동병상련의 여성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듣고, 또 내가 '소리내어 말하'는 그 시간은 분명히 무언가 달랐다. 어떻게 다른지는 계속 분석해봐야겠지만 긍정적 경험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 증거로 지금 나는 산송상처럼 지내지 않고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에너지도 조금은 생기지 않았는가. 또한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딪혔던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것을 알고 무척 안심이 되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떻게든 그런 나를 보듬고 조금씩 천천히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의지가 약하고 약해빠진 영혼이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하니 얼마나 좋았던지. 이유 없이 혹은 미량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오는 갑작스런 무기력증, 감정의 오락가락, 심장이 마비되는 느낌,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마비 증상 등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공포'라는 느낌마저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니 무척이나 마음에 힘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달 모임에도 나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모임을 끝내고 뒷풀이를 새벽 2시까지 하고서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온몸이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극심한 피로감에 자리를 빠져나왔다. 피로하지만 또한 마음이 뿌듯했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나의 편이 되주는 자매들이 생긴 느낌. 이젠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좋았다.


나는 오늘 만난 이 사람들과 조금은 오래도록 한달에 한번씩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인연을 이어나가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 시간이 있는한 나의 삶을 견디기는 조금더 쉬워지리라.


_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너의 잘못이 아니다. 살아있어도 괜찮다. 이 말을 몇번이고 반복한 것이 좋았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버지니아 울프처럼, 살아남기 위해, 살아있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고, 우울증과 싸워야 할 거고, 때론 며칠이고 좀비처럼 사고와 감정이 마비되어 땅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죽기를 주문처럼 꿈꿀 거고, 익숙한 그 악몽도 물론 꿀 거고, 심장이 쪼개질 것 같을 거고, 과호흡증을 일으켜 숨이 막혀 모자라는 산소를 들이키려고 헉헉 대며 심장을 쿵쿵 두드리면서 발버둥도 칠 것이다.


사람들과 아무말도 못 하게 될 때도 있을 거고, 아무 이유 없이 길을 가는 모든 이의 시선이 날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하니 8월 이후엔 무슨 일이든 부담이 좀 적은 알바를 해야 할 것이고 일을 하면서 숨이 막히면 또 화장실에 가서 7년동안 그랬던 것처럼 혼자 앉아 소리도 못 내고 울 것이다. .


이 모든 증상들은 조금씩 약해질 수도 있지만 또 다시 하나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처럼 더 세게 나타날 수도 있고, 어쩔 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생활을 하고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아주 1mm 만큼씩이라도 좋아지기 위해 나는 노력해야 할 것이댜.


너무 큰 희망을 갖지 않으면서 작은 전략과 전술, 목표, 기대(?)들을 가지면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노력하는 것. 아마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일들을 겪어오면서도 죽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남았으니까. 너무 낙관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또 너무 비관만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희망하라, 희망없이 정도?


그래도 즐거운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작고 큰 즐거움과 행복을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그런 일들을 겪었다는 것에 대해 별로 동정받고 싶지는 않다. 공감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라는 존재는 이런 것이고 나는 나대로 나의 존엄을 지키면서 나의 행복을 찾으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서로 도울 수는 있지만, 여태까지처럼 특정 상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지는 않으면서.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질 수 없다 하더라도.



p.s : 래 전의 조제야, 너는 비로서 행복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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