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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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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Mar 30. 2018

꿈꾸지 않은 밤

포기하기엔 너무 일러

우리 이제 그만 돌아갈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곳은.

어쩌면 이제는 포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지 지도 속엔 별표만 수백개.

나중에는 그 마저도 너무 지쳐 더이상 표시 하지 않았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꼭 일년이 되었다.

재계약 불가능이라는 통보를 받은후 우리는 일년을 미친사람들처럼 살았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임시휴무와 조기마감을 반복했고 제주 섬을 닥치는대로 돌아다녔다. 매달 잊지 않고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대출 빚은 산더미 같은데 매출은 없고 발만 동동 구르는 날들이 잦아졌다.




이대로는 안될것 같은데


점점 무기력함과 조금함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새로고침을 하며 들여다 보았던 제주교차로 신문에 올라온 집 하나. 


사진 상으로는 집이 좀 특이하다. 

낡아보이는것 같기도 하고.

일단 내부를 보자

고치는 비용이 더 들면 안되니까


교차로에 적힌 연락처에 전화해 내부를 보았다.

80대의 노부부가 사는집.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라 그런지 집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꾸준히 페인트 칠만 해주었어도 괜찮았을텐데 너무 손보지 않아 여기저기 갈라지고 떨어지고 집의 철근이 모두 드러난 상태. 갈라진 틈이 많아 집안 곳곳에 비가 새어 벽으로 빗물이 줄줄 흐른 흔적도 있다. 심지어 정원은 정글 수준이었고 온갖 잡다한 쓰레기부터 음식물 쓰레기까지 집안과 마당에 던져놓고 살고 계셨다. 


안되겠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겠어


그 와중에도 마음을 끄는것은 리모델링 하지 않고 40년전 집을 지은 그 당시 그대로 살고 계셨다는것, 가게와 살림집이 모두 해결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가게가 어느 지역으로 구해질지 몰라 집은 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가게는 북쪽, 남쪽, 동쪽인데 서쪽에서 출퇴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집은 알아보지도 못한채 집 주인분께 양해를 구하고 지금 살고 있는 연세집을 3개월 연장해 놓은터였다. 


고치는 비용이고 뭐고, 일단 살림집까지 해결되는데 뭘 더 고민해?


바로 결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이상 제주에서 지내지 못할것 같았다. 그렇지만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바로 결정할 사안도 아니었다. 시간을 좀 달라고 말씀드리고는 밤새 한숨도 못잤다. 하루 이틀 고민하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간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아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뜬 눈으로 지새우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답을 드렸더니 돈을 더 받고 싶으시다고 한다.


또? 우리는 정말 왜 이러지.


미칠지경이었다. 밤새 고민해서 결정했는데 이제와서 금액을 올린다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한두번도 아니고 어쩜 이렇게 계약하려는 공간마다 매번 이럴수 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얼마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 터라 우리는 결단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해야 했다. 돈을 더 받고 싶어 어깨에 힘이 단단히 들어간 주인 할아버지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드렸고 찾아갔다.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와 지루하고도 초조한 밀당을 했고 결국 우리는 계약에 성공했다.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우리는 만세라도 부르고 파티라도 하게 될 줄 알았지만 그간의 고단함과 서러움이 북받쳐서인지 어안이 벙벙한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계약서를 한참 들여다보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몇달째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만 꾸던 그는 그날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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