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할래?
그가 몸도 마음도 지쳤는지 요즘은 산책하자는 얘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산책에 시들해졌다.
그래도 마음 정리가 안될 때에는 걷는것 만한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곧잘 그를 조른다.
주말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할 일이 또 취소되었다. 잔뜩 예민해져있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산책을 제안했다. 이미 공사문제로 서로에게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고 다툼을 한 후였다.
그래. 남북이 대화를 하고,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하는 이 시점에 너와 내가 냉전체제를 이어간다는것은 말이 안되지. 내가 손해보는것 같더라도 지금은 져주도록 하자.
사과의 시그널을 보낸다.
“쓰레기 버리러 갈건데 같이갈래?
나갔다가 산책도 좀 하고”
버럭할줄 알았는데 왠일인지 따라나선다.
늘 그렇듯 그의 오른편에서 나의 왼손으로 그의 오른손을 꽉 잡았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깐 내가 미안했어. 다시는 확인하고 채근하지 않을께. 스트레스 주지 않을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산책을 제안한데다 이 정도면 누그러지겠지. 하는 몹쓸 자존심 때문에.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꼭 후회가 된다. 내가 먼저 사과 할걸. 왜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사과하지 않는걸까. 그의 말없는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어쩐지 그도 나도 서로 사과를 생략하는 일이 많아졌다.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해졌다.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과로 인해 또 다시 그 일이 입밖으로 꺼내어지고 또 2차전이 발발할까 두렵기 때문인걸까.
현장에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스트레스를 받는것은 그 사람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자꾸 일 진행을 확인하고 보채게 된다. 나 아니어도 가장 힘들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자꾸만 현실을 다그치며 상처를 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매일 다짐하고 매일 후회해도 나는 결국 또 우주최고 잔소리꾼이 되고 만다.
둘이 참 오랜만에 걷는 바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슬리퍼를 신은 채로 원담을 돌며 방방 뛰어다녔다.
“우리 꼭 여행 온 것 같아! 정말 좋다”를 연발하면서.
돌뿌리에 엄지 발가락이 긁히는 상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순간 그가 내게 얼마나 미안해 하고 있을지 나는 안다. 팍팍한 현실덕에 사소한 행복조차 느낄 겨를이 없는 우리는 애써 이 바다를 외면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늘 먼 발치에서, 혹은 누군가가 올린 SNS의 사진으로만 보았지. 6년을 넘게 살면서 제대로 된 물놀이라고는 단 두번뿐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남들처럼 ‘바다에 다녀옵니다’ 하는 낭만적인 문구 하나 적어놓고 바다로 달려가는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수 있겠지만 우리는 낭만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인간형이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과금과 년세 낼 만큼만 벌자고, 욕심없는 삶을 지향했던 우리였지만 가게를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돈을 재쳐두고는 행복을 논할수 없게 된 현실을 목놓아 개탄하였으니 말이다.
6년전보다 더 큰 빚에 허덕이게 되면서 불안한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로인해 행복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이 낭만보다는 현실에 가깝지만 불행보다는 행복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어려운 길을 가면서 어떤 문제든 피하지 않고 직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대견할 정도로 잘 버텨주는 그가 내 옆에 있어 괜찮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산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