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이렇게 살다간 결국 성공할 듯]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라는 화끈한 제목의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극에서 주인공인 유이는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가방을 싸서 퇴근한다. 6시 10분까지만 반값 할인을 하는 맥주집에 가기 위해서다. (실은 더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여기까지만.) 이 드라마는 매일 정시에 퇴근하며 워라밸을 지켜나가는 유이와 그런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회사 안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갈등, 우정, 사랑을 그린다. 유이와 동료들은 만화스러운 일본의 설정답게 엄청난 팀 워크를 자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이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일명 얌체라고 여기는 이들도 등장한다.
'야근이 일상인 분위기 속에서 나만 퇴근하면 얌체일까?'라는 고민을 했던 적도 있다. 신기하게도 옮겨 다닌 모든 직장에서 나는 매일 홀로 칼같이 퇴근하곤 했다. 한 번은 전 직원이 20명 정도 되는 작은 회사에 다녔는데, 이사님이 따로 불러서 면담을 한 적도 있다. "서현 씨는 야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가끔은 남아서 야근도 좀 하고 그러는 거 어때?" 야근이라는 단어에 어떤 내가 모르는 다른 의미라도 있는 걸까. 업무를 다 끝내지 못했을 때 늦게까지 남아서 잔업을 처리하는 것이 야근 아니었던가. 제시간에 모든 업무를 끝마친 내가 왜 이런 핀잔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회사를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정시에 퇴근했다.
마침내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나름 진보적인 회사에 다니게 된 내가 여러 동료들을 관찰한 결과 당신이 리더 급이 아닌 평사원이라면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다. 게다가 스스로 오늘의 할 일을 끝냈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사람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매일 퇴근 시간이 돼도 일이 끝나지 않아 원치 않는 야근을 하고 있다면 이렇게 해보자.
칼퇴하고 소중한 저녁 시간 누리기, 생각보다 쉽다!
1. 일의 우선순위 매기기
2. 주요 업무는 오전에 끝내기
3. 퇴근 준비는 30분 전에 마치기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중구난방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스케쥴러를 펼쳐보자. 수기로 쓰는 다이어리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관리와 수정이 간편한 구글 캘린더를 추천한다. 그날의 할 일은 많아 봤자 10개를 넘지 않을 것이다. 만약 20개가 넘어간다면 속성이 비슷한 자잘한 일들은 그룹화하여 하나의 일로 인식하는 것이 좋다. 할 일의 목록을 적었다면 이젠 우선순위를 매기면 된다. 마감 기한이 빠듯한 일, 다른 동료가 요청한 일은 앞 순서로 둔다. 이 두 가지는 조직 안에서 나의 신뢰가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뒤로 미루면 곤란하다. 창의력이 필요한 일, 머리 쓰고 고민해야 하는 일들은 뒤로 미룬다. 그런 일들은 급한 것들을 처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해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잘 정리했다면 앞 순서에 있는 주요 업무는 오전 시간에 끝낸다는 각오로 시작하면 된다. 오전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집중력이 좋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대이므로, 생각보다 더 많은 업무를 쳐낼 수 있다. 특히 기획안 작성하기, 메일 쓰기 등 글쓰기 업무가 많은 직종이라면 머리가 가장 상쾌한 오전 시간에 모든 일을 끝내는 것을 추천한다. 오후에 점심 먹고 돌아와서 앉았을 때는 절대 아침과 같은 속도가 나긴 어려울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회의나 외부 미팅이 당신의 업무를 방해하는 상황이 찾아오겠지만 틈새에 주어지는 20분, 30분의 시간을 활용하여 주요 업무에 집중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의 업무를 끝낼 때마다 우선순위를 매겨둔 리스트에서 제거해주면 된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지막은 퇴근 준비를 미리 하는 것이다. 목표 없이 여유롭게 일하다 보면 당신의 퇴근 시간은 야금야금 늘어나게 마련이다. 만약 6시에 퇴근하는 것이 목표라면, 5시 30분까지는 일을 끝내야 한다. 당신이 퇴근하려고 슬리퍼에서 신발로 갈아 신는 그 순간 새로운 업무 요청이 올 수도 있다. 퇴근 시간에 1시간이 걸리는 업무를 요청하는 파렴치한 인간은 없길 바라지만, 적어도 간단한 요청은 있을 수 있다. 지속적이고 건강하게 워라밸을 챙기려면,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퇴근이 임박했더라도 동료들의 요청사항에는 빠르게 응답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자. 이러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모든 일은 퇴근하기 30분 전에 끝내자는 각오로 임하는 것을 추천한다. 마음속에 마감 시간을 정하고 일하는 것과 그냥 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이번에도 별 것 없는 소소한 팁을 주절거려 보았다. 타고난 얌체로 태어난 나에겐 당연한 습관이지만 혹시라도 원치 않는 야근을 감행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게 연봉만큼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워라밸'을 외칠 것이다. 물론 연봉 협상만큼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건 위태로운 도전이며, 삶에서 일하는 것의 가치를 제외시켜 버리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태도이다. 물론 일과 삶 중에 어느 한쪽을 택하는 삶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 삶은 균형을 유지하는 삶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다른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언젠가는 직장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줄타기를 잘하려면 어느 정도는 얌체처럼 굴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 얌체들이 더 나은 노동자의 삶을 만드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