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다는 것만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잠자는 것이 깨어있는 것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질과 의미를 탐구하는 데 있다.
얼마나 깨어있는가보다는 어떻게 깨어있는가가 본질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르치는 "어떻게"는 종종 이미 벌어진 간극에서 나온다.
그들의 경험은 화려해 보이지만,
나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괴리감이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나에게는 손을 뻗어도 잡히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르침은
검증되지 않은 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들의 조언은 구체적인 결과로 입증되지 않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며
어떤 진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양 끝단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우리의 길을 찾아가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사람은 창조할 수 있는 은사를 지녔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재 창조'가 더 정확한 의미 이고
이미 있는 모든것들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있으며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
의무감을 진척시키는 당위감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창조라는 행위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글을 쓰며 살고 싶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이유는
이러한 재창조의 과정 속에서 숨겨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통해
조금은 더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세계를 넓히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외적인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자유와 깊이, 그리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글쓰기는 이러한 과정의 핵심이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덕분에 AI의 등장은
그동안 생각없이 살았던 우리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이 스스로 인간 고유의 기능을 다시금 되돌아보도록 독려해주고 있다.
우리는 AI를 정복한 것일까, 아니면 AI에게 정복당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적 우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움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성공의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하고,
잠잠한 순간 속에 우리는 깨어있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것.
이것이 아마 내가 추구하는 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