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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Dec 01. 2022

비 오는 날에도

뉴욕의 베테랑스 데이 퍼레이드

(비 오는 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 직장인들, 그리고 소상공인들도 있겠지만, 특히나 제복을 입은 사람들, 경찰이나 군인은 더욱 그렇다. 예전에 군에서 훈련받을 때, 비가 오면, 우산 대신, 우비를 입고 나섰다. 비가 오는 날에도 전투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들은 날씨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군대 훈련 시, 4월 6일에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아침에 구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재향군인의 날인 베테랑스 데이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에서 열리는 베테랑스 퍼레이드가 과연 열릴 것인가에 관해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퍼레이드가 열리는 5번가 도로변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경찰관한테 지나는 많은 시민이 묻고 또 묻는다. '비가 오는데도 과연 퍼레이드는 열리느냐?'라고... 베테랑스도 비록 현역에서 제대는 했지만, 그날만큼은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래서 비가 와도 당연히 퍼레이드는 열릴 것으로 나는 확신을 했었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전에는 까치발을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었는데, 비가 와서 그랬는지, 여느 해보다는, 도로변에 나와서 구경하는 시민들이 훨씬 적었다. 대신에 퍼레이드 대열에서 행진하는 사람들은, 유튜브를 위해 촬영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고맙다고 인사를 해오거나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비가 오는 가운데 촬영하려면, 그 긴 시간 동안 우산을 받치랴, 촬영하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맨들은 벌써 나와 있었고, 그들은 카메라를 비닐로 씌우고 우비 차림으로 경찰 철책선 안에 들어가 촬영하고 있었다. 철책선을 넘어 들어가서 촬영하려면 사전에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나는 이번에도 도로변, 경찰 저지선 밖에서만 촬영하기로 맘을 먹었다.  한인 타운이 있는 32가에서 찍으려고 32가와 5번가가 만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마침 아주 좋은 장소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 이후로 식당들이 도로변에 가건물을 세워 놓았는데, 5번가는 원래 명품의 거리이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인지라, 식당들이 감히 자리할 수가 없는 그런 도로이다. 해서 도로 옆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식당의 가건물이 거의 없는데, 유독 한인 타운이 있는 32가 코너에만 두 개의 목조 가건물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Love'라는 Korean 바비큐의 가건물이다. 그런데... 

5번가에서는 보기 드문 가건물이고, 베테랑스 데이에 군인들이 퍼레이드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마치 Royal Box처럼도 보이는 것 아닌가? 몇몇 사람들이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는 있었지만, 마치 VIP만 입장이 가능한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까, 그 가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그 밖에, 그러니까 구경하기도 불편하고 잘 안 보이는 뒤로 물러서 있는 경찰 저지선 밖의 도로변에 그것도 비를 맞으면서 서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아마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가 본데,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행운이었다. 나는 그 가건물이 한인 식당이란 것을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당당하게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마치 그 식당 주인인 것처럼... 한인 식당이니까, 나에게는 마치 친정집 같지 않은가. 'Excuse me, excuse me... '하며 쳐들어갔다. 그리고는 제일 잘 보이는 코너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곳이 Royal Box가 아니고, 한인 식당이라는 것을... 그러니, 식당 측? 에서 '길 좀 비켜주실래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면, 안 물러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게 툭 튀어나온 그것도 명당자리인 코너에 자리를 잡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변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동영상을 촬영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순조롭게만 잘 자리 잡아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가건물의 길가 쪽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마스크를 쓴 한 백인 젊은 여자가 나한테 물었다. '당신 마스크는 있냐?'라고...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웬 마스크 타령?) 예전에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한인들과 중국인들은 재빨리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었다. 그랬더니, '마스크는 왜 쓰느냐? 마스크는 필요 없다. 너희가 바로 전염 환자들 아니냐?'며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 폭행까지 했었던 미국인들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마스크 쓰는 것을 대중교통에서도 그리고 실내에서 강요를 안 하겠다고 했거늘 갑자기 웬 마스크 타령인지 모르겠다. '나는 마스크 안 가져왔다'라고 했더니만, '그럼 자기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이건 좀 심한 속박 아닌가?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인종 차별일까? 지역은 한인타운이지만, 그 가건물 내에는 모두 미국인들(대부분이 백인들)이고, 동양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마스크를 안 썼다. 요즘은 길거리에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게다가 그 여자는, 코로나 예방에는 별 효과도 없는, 치과 의사용 파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인종 차별을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슬며시 기분이 상했는데, 그랬거나 말거나, 내가 지금 빨리 촬영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 더 급한지라, 그딴 여자와 시시비비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못 들은 척하고 있었더니, 이 여자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른다. 'Security!' 하며 Security를 부른다. 마치 오빠랑 다투고 엄마를 찾는 여자아이처럼 말이다. (웃긴다. 누굴 바보로 아나? 여기에서 Security를 부르면 내가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나? 게다가 길거리에 무슨 Security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 장소는 한인 식당인데, 불러봤자, 식당 측에서 나올 텐데, 그러면 마스크를 안 썼다고 나를 내쫓겠는가? 길거리에 Security는 없고, 바로 앞에 경찰들이 여러 명이 있으니 경찰관이나 부르니 왜?) 암튼 대꾸할 가치도 없어서, 그랬거나 말거나 나는 묵묵히 내 일만 했다.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 불고 비가 들이치는 바람에, 그 여자는 더 이상 난간에 계속 버티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결국 그녀를 일어서게 했고, 나와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자기 말도 있었으나, 나는 요지부동이니 (코너에 있으니까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5번가에 도착할 무렵, 이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여러 대의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내며, 5번가를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퍼레이드 행사에서 공식적인 출발은 으레 기마경찰들이 스타트를 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오토바이들의 질주는 공식적인 행사 이전에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아야 할까? 비가 오는 날에도 퍼레이드는 모두 진행되었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자들은 우산을 쓰고 행진하기도 했지만, 제복을 입은 경찰이나 군인들은 어떤 대열은 우비를 입었지만, 어떤 대열은 우비도 안 입은 채 그 비를 모두 맞으며 행진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지난해까지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참여가 있었다. 비록 차에 탄 채로 한 행진이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안 보였다. 이제는 모두 90여 세에서 백세 가까이 연세도 많고, 게다가 비까지 오고 있으니 참여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퍼레이드는, 아직도 참여하는 팀과 숫자가 꽤 있었다. 미국 성조기와 함께, 출신국의 국기를 들고 참여하는 나라들이 올해도 있었다. 프랑스, 에콰도르, 그리고 한국이었다. 한국은 역시 동맹국답게, 향토예비군이란 이름으로 많은 인원이 참여했고, 군가 '진짜 사나이'(나도 정식으로 제대로 배우진 않았지만, 한국 사내라면 누구나 다 아는)의 '사나이로 태어나서...'를 부르며 행군했다. 하마터면 나도 따라 부를 뻔했었다. 내가 유튜브 촬영 중인 것을 잊고 말이다. 비록 미국에 이민으로 와서 살고는 있지만,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출신임에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퍼레이드 행렬이 끊겼다. (벌써 다 끝났나? 비가 와서 예년보다 퍼레이드 행렬 자체가 줄었나?) 하면서 촬영 장비를 접으려고 하는데, 내 뒤에 서 있던 웬 흑인 할아버지가 아직 끝난 건 아니란다. 아직도 올 행렬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뭐지? 퍼레이드 진행자도 아닌데 그렇게 다 아는 듯 얘기를 할 수가 있지? 혹시 은퇴 군인이신가? 매년 퍼레이드를 보러 오셨나?) 그 할아버지가 나한테 질문을 해왔다. '혹시 내가 지금 찍는 동영상 파는 것이냐? 자기가 살 수 있겠냐?'라고... 암튼 베테랑스 퍼레이드의 마니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 순진하신 할아버지 세상 물정 참 모르신다. 그래서 내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릴 테니, 돈 안 내고 그냥 공짜로 보실 수 있는 거라며, 내 채널명을 가르쳐드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마스크 운운하며 Security를 찾던 백인 여자와 그 백인 일당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흑인과 아시안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역시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잠시 후, 퍼레이드 행렬은 다시 이어졌고, 맨 마지막에는 중국인들의 법륜공의 행렬로 막을 내리는 것도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다른 점은 우주 방위군이 따로 있는 점이 내 눈길을 끌었는데, 그 우주 방위군에는 공군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도로변에 구경 나온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를 많이 나누어 주는데, 나는 그래서 우주 방위군의 모자를 하나 얻었다. 나는 공군 출신이니까... 미국은 역시 힘이 넘쳐나고, 미국 시민들은 그런 씩씩한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보람된 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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