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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Jan 22. 2023

연말 연휴에 착한 남편 되기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의 연휴 시즌이 다가왔다. 달력을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마지막 날이 마침 토요일인데, 손님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차라리 가게 문 닫아걸고 놀아버리자. 그래서 토, 일, 월 3일씩 모처럼의 연휴를 만들어, 한번 맘껏 늦잠도 자고, 평소에 못 했던 것 다 해보리라 하며 꿈에 부풀어 올랐다. 


옛날의 한국에서 살았던 시절, 이맘때가 되면, 아니, 이보다는 조금 덜 추웠던 때였던 것 같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어 갈 무렵, 동네에 큰 트럭이 들어온다. 산더미같이 많은 배추를 비닐 포장으로 덮어씌운 트럭이다. 그러면 온 동네 아낙네들이 각자 100 포기 200포기씩을 들여가느라 난리가 났었다.


우리 집에서도 엄니와 할머니가 벌써 전부터 올해는 김장을 몇 포기를 하느냐? 가지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으로 배추를 사러 그 대열에 참가하셨다. 엄청난 산더미 같은 배추가 집 마당에 쌓이면, (저 많은 김치를 누가 다 먹는다고?)라고 생각해도, 겨울이 끝나가면서, 그리고 남은 김치는 김치찌개로까지 끓여서 먹다 보면, 어느새 그 큰 김칫독을 다 비우게 된다. 


특히 김장하는 날에는, 겉절이에 굴, 편육을 싸서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만 가진 나에게, 난데없이 제안이 하나 들어온다. 집사람이 김장을 해야겠는데, 내 손이 필요하단다. (엉? 내 사전 계획에는 김장하는 것은 없었는데...  아니, 내 사전에는 없었다) 그러면서,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 무채를 만들어라... 하며 명령이 쏟아진다.  '어 허~! 무례하다!' (남의 귀한 집 아드님한테 이 무슨?...) '무엄한지고...' (나더러 무채를 만들라니? 그러다 손이라도 다치면 어쩌라고? 허 참 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던가, 그때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집사람이 우리 어머님께, '저는요 귀하게만 자라서요 그래서 그런 일은 해본 적도 없고요, 할 줄도 몰라요'라고 했더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신 울 엄니께서는, '얘, 나도 우리 집에선 귀하게만 자랐었던 딸이었거든요....'라고 하시며, 난국을 돌파하셨단다. 그런 일화를 남긴 그녀가 그때의 고까짓 거 가지고, 요렇게 쩨쩨하게 나오는 건 아닐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문제는 나의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고 만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딸네미는 연말에 교회 봉사하느라 바쁘시단다. 해서, 1순위로 열외! 아들네미는 아직도 우리 집에 도착도 하지 않았다. 울 엄니처럼 그녀도 아들네미(혼자 사느라 요리도 잘해 먹지만)한테는 부엌일을 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고저, 만만한 건, 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이 나에게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왕년의 귀한 집 출신의 마님께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손수 김장을 담그시겠다고 까지 나서는 마당에, 내 어설픈 대응이 씨알머리가 먹힐 리 만무했다.


우린 어렸을 적부터 아들은 부엌에도 못 들락날락거리게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런 것은 장가만 가면, 시집온 여자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므로... 그래서 나는 배운 대로 곧이곧대로 정색을 했건만, 택도 없다. '그럼, 올 겨우내 김치를 굶어야 한다'며, 협박성 응수로 되돌아오는 것 아닌가. 장군, 멍군하다가, 이런 최후통첩을 받았을 경우, 그 대처법에 대해선, 공자님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어려서는 할머니와 그리고 엄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고 자랐고, 장가가서는 마눌님이 그 바턴을 이어받으면서, 나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음식을 당연히 잘하는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국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교회에서 그리고 집으로 초대받으면서 음식을 만들고 대접하고, 대접받으며 지내게 된다. 알고 보니, 많은 여자들이 사실은 음식을 못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울 마님은 못하는 게 없는 것에 나는 항상 긍지?를 가지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근데, 그래도 그렇지... 왠 난데없이?... 애당초, 내가 요리사의 시다 노릇 하기를 좋아한다고나, 원했던 것도 아니잖은가?


할머니와 엄니가 날 어떻게 키우셨는디?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정권이 바뀌다 보니, 그야말로 난세로다. 앙탈을 부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 현 정권 실세의 말을 안 들을 수는 없는 처지 아닌가? 근데, 이게 다 그놈의 아주 요상한 배추 가격 때문이다. 한아름에 장 보러 갔더니만, 배추 한 포기에 $11.99이란다. 그렇게, 한 두 포기만 사서 집 사람이 혼자 조곤조곤 김치를 담가 먹거나 그도 귀찮으면, 김치를 아예 사다 먹으면 된다. 그동안에는 교회의 한 여성도가 김치를 담가서 팔아왔기에, 주로 그 김치를 사 먹어 왔었다. 그런데...


슈퍼마켓의 카운터에 있는 히스패닉 아가씨가 '배추 한 포기는 $11. 99인데요, 한 박스(10 포기)는 $16.99이에요'라고 하는 것이다. (엉? 아니, 왜?) 그러면서 그 카운터 아가씨의 눈초리가... '당신네들, 이래도 Box 채 안 살텨?'라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산술적으로 2 포기의 값이 10 포기보다 비싸다는 계산인데... 그런 말 듣고도 Box 채로 안 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결국은 얼떨결에 Box 채 사 오고 말았겄다. 김장 담그는 일에 관하여 이 귀한 도련님께서는 그동안에는 오며 가며 눈으로 보기만 했었지, 한 번도 직접 내 손으로 김치란 걸 담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김장에 대해 아는 바도 없으니 주도권을 쥐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명령할 처지도 못되고... 생각해 보니,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올해의 김장 김치에는 이런 젓갈이 좋겠다 저런 젓갈이 좋겠다'하시며 젓갈을 직접 사러 다니시기까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렇게 지지고 볶고 하며 김장 담그는 일이 드디어 다 끝날 즈음에서야 아드님이 오셨다. 나도 총각 때는 집안에서 감장 담그는 일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잘도 나돌아 다녔댔는데... 


암튼 그렇게 연말 연휴 기간에, 착하게 말 잘 듣고, 여러 가지 잔 심부름으로 김장에 참여한 공로?로, 나는 그 맛있는, 즉 김장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배추 잎에 굴이며, 육편을 얹어서 아주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에는?....  김장보다 더 한 것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에는 사 먹던 음식도 인터넷 통해 배워서는 자꾸 직접 해 먹느라 난리다.


살구 철일 때는 살구를... 그렇게 매 철마다 각종 과일을 쨈으로 해 먹지를 않나? 과자나 빵은 물론이고, 요구르트도 우유로 매주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문제는 매실청이다. 매실을 설탕에 절여서, 큰 유리통 속에 넣어두었다가, 지금 때쯤에 꺼내서, 씨와 살점을 분리해야 한단다. 물에 불은 것은 그래도 좀 낫다. 윗부분에 있는 말라비틀어지고 딱딱한 것을, 과도 칼로 벗겨내기란, 여간 힘들고 위험한 일이 아니다. 무채 썰기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손은 연실 매실을 깎으며, 마음이 심란해서, 귀라도 즐겁게 해 볼 요량으로 테레비를 틀었더니, 노래가 나오는데.... 첫 소절이 좀 거시기하다. '여자가 어디 감히...' (무슨 노래인고?) '주방에 들어오냐'는 것이다. (엥? 무슨 뜻이지?) '주방은 남자의 영토'란다. 

(세상에나... 왜들 그러고 사는겨? ㅉㅉㅉ...) 갈수록 태산이다. 


폼나게 한번 쉬어보겠다는 꿈이 아무리 야무지면 무슨 소용 있나? 원래 휴식 시간이란 것은 더 빨리 지나가기 마련인데, 연말연시의 연휴는 그렇게 아깝게도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세상은 평등해지고, 점점 좋아져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그렇지, 착한 남편 되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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