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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피나 Nov 13. 2024

수험생을 위한 미사

수험 신앙

수험신앙 = 대한민국 고유의 신앙

 

올해 수능시험일은 11월 14일 목요일.  바로 내일이다.

수능 전전날인 어제저녁에 본당에서 ‘수험생을 위한 기원미사’가 있었다.

본당의 수험생 미사반주는 거의 매년 내가 맡아서 하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나에게도 수험생이었던 시절, 큰 시험을 앞두고서 매우 불안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수험생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미사 반주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서 청소년들의 수가 줄고, 수험생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십여 년 전에는 미사에 온 수험생들이 세네 줄이었던 것 같은데, 갈수록 줄어서 이제는 달랑 한 줄이다.

 

수험생들보다 부모님, 조부님들이 수험생을 위한 미사에 더 많이 오셨다.

막상 수험생은 미사에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려서 안 오고, 대신에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만 온 집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능시험만큼 하루에, 몇 시간 동안에 대입의 당락이 결정되는 이러한 시험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힐 것이다. 수시전형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능시험의 영향력과 결정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한 학생의 짧게는 수험생 시절, 좀 더 잡으면 중고등학생 시절, 길게 잡으면 초중고 시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취학아동이던 영유아 시절까지..

그 시절부터 한 사람이 갈고닦아온 지식과 지성이, 공부하고 노력한 모든 시간이 하루에 결판이 난다.

 

이러니 누가 마음 편히 시험을 볼 수가 있을까?

수험생들은 모두 안쓰러워 보이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들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그래서 부모가 아니라도 선생님이 아니라도 수험생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게 된다.

 

올해에는 입시생이 없지만, 입시생을 가르칠 때 나 자신도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들었는지 뼈에 새겨져 있다.

나의 지도에 당락이 달린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고, 합격자 발표가 있을 때까지 불안과 걱정,

긴장과 피로함을 수험생과 함께 오롯이 겪으면서 주님께 얼마나 애타게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한낱 선생이 이럴진대, 그 부모님들은 심정이 어떨지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수능일. 국가의 크고 중요한 행사.

대한민국이 숨죽이고 긴장하는 날이다. 마치 모두 함께 시험을 보듯이.

 

수학능력시험일인 내일은 관공서의 출근시간이 변경되고, 은행 영업시간, 회사출근시간도 늦춰지고,

영어 듣기 평가가 있는 시간에는 항공기 운항과 군사훈련까지도 통제된다.

방송에서는 수능시험에 대한 뉴스와 응원전이 보도가 되고,

오늘과 내일은 온 나라가, 온 국민이 ‘수능모드’이며, 수험생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낸다.

 

이 날 대목(?!)인 곳은 바로 종교시설이다.

절에서는 염불소리, 간절한 108배, 석탑을 돌며 합장이 이어지고,

‘수능수험생을 위한 촛불공양’ 수백 개가 빛을 낸다.

대웅전에는 자녀 사진을 올려놓고 기도하는 학부모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개신교 교회는 학부모들이 함께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수능 시험 시간표에 따라 기도회를 진행한다고 한다. 수험생들은 필시 목사님의 진한 ‘안수기도’도 받았을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지역의 각 본당에서 ‘수험생 부모님을 위한 피정’(조부모님도 가능)을 하는데,

수험생들의 시험시간표에 맞추어서 기도와 봉헌을 한다.

수험생과 시간표를 함께하며 각 과목 시험 때마다 기도를 올리고, 수험생들이 쉬는 시간에 함께 쉬고,

수험생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에 수험생 부모님들도 똑같이 ‘도시락’을 먹고,

다시 오후에 시험 시간표에 맞게 기도와 봉헌을 한다.

자녀와 함께 수능시험을 함께 치는 것 같을 것이다.

보통 피정의 마무리는 ‘수험생 자녀에게 쓰는 편지’로 하는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이 대목에서 눈물을 쏟아낸다고 한다..

 

이날뿐인가? 시험 전 100일 전부터 절, 교회, 성당에서는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모임>을 하는데,

요즘에는 조부모님들의 참여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수험생 부모님으로서 이 모든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셨던 어떤 신자 분의 ‘간증’에 의하면,

이러한 모임은 수험생을 위한 기도모임이 아니라, 실상은 수험생을 둔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수험생보다도 더 불안하고 힘든 ‘수험생의 부모시절’을 위한 위로와 큰 도움이었다고.

 

평소 신앙이 있지 않은 부모님들도 이날만큼은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명동성당 등 종교시절을 찾아오거나, 그동안은 한 번도 부르지 않던 신을 찾으며,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자 힘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것은 신앙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에서는 염불소리가, 개신교 교회에서는 예배와 기도가,

성당에서는 미사와 기도가  어느 날보다 뜨겁게 울려 퍼지는 날!

대한민국에 있는 특별하고 고유한 신앙.

바로 ‘수험신앙’ 이 그 정점을 찍는 날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큰 시험과 맞닥뜨리는 불안하고 긴장될 수험생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그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부모와 가족들의 마음이고 사랑이다.

 

이러한 국가적인 분위기에서 내가 기도 중에 꼭 기억하고 싶은 수험생들이 있다.

수험생이라고 챙겨주는 부모님도, 함께해 주는 가족도 없는 외로운 수험생들이 있다.

이 수험생들은 내일 아침에도 스스로 도시락을 챙기고, 가족의 응원 한마디 못 듣고 집을,

혹은 시설을 나와서 홀로 시험장을 향할 것이다.

 

나는 이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

얼굴 모르는,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는, 그 등이 유난히 시릴 수험생들을 위해서..

힘내렴. 기도할게.

 

네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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