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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에 당나라 유학을 떠난 한국 최초 유학생, 최치원



■ 한국 최초 조기유학생, 최치원 선생 이야기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DA6-cS-Iy98



■ 이야기 속으로...


한국 최초 조기유학생은 누구일까?


해외에 공부를 하러 간 한국인들의 유학 역사를 살펴보니 수, 당 이전의 위, 촉, 오나라 등 3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대부분 불교의 승려들이 불법을 구하러 떠났고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길을 나섰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러 떠난 이는 누구일까? 바로 신라시대 문인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다. 그가 남긴 많은 문집 가운데 하나인 계원필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신(臣)은 나이 12세에 집을 나와 중국으로 건너갔는데, 배를 타고 떠날 즈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훈계하기를, “[앞으로] 10년 안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마라. 나도 아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부지런히 공부에 힘을 기울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는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 선생은 신라 말 사람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그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은 똑똑한 아들이 6두품으로 아무리 똑똑해도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 밖에 못 올라감을 아쉽게 여겨 당나라로 유학을 보낸다. 신라는 골품제 계급사회라서 성골, 진골이 아니면 출세를 할 수 없었다. 6두품도 일반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급이지만 진골, 성골리 차지하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다.


그는 이런 계층제의 한계를 깨닫고 아들을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 최견일 공은 12살 아들 치원의 손을 잡고 신라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에서 전라남도 영암까지 약 257 키로미터를 걸어가서 아들을 당나라로 가는 상선에 태운다. 당시 신라의 많은 청년들이 국비로 당나라 유을 떠났다. 이를 견당 유학생, 혹은 도당 유학생이라고 했고, 숙위 학생이라고도 했다. 당시 기록으로 봐 고운 선생은 사비로 간 것으로 추청된다. 이때 신라와 당나라를 오가던 배는 지금처럼 큰 배가 아니라 길이 20여미터의 작은 배로 당나라 또는 신라의 사신들도 풍랑을 만나 죽기가 일쑤였다. 유학을 가기 위해 그런 길을 12살의 어린 소년이 떠난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 글의 맨 위에 있는 유튜브 영상에서 볼 수 있다. <미래교육연구소장 이강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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