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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29. 2019

존 윅 3 - 파라벨룸



주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는 액션 영화 중 대표적인 시리즈로 어떤 영화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 <007> 시리즈도 있겠네요. <본> 시리즈와 <해리 포터>는 아쉽게 막을 내렸고, <스타 트랙>과 <스타 워즈>는 한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가지는 않죠. 매해 수많은 액션 영화가 제작되지만 한 명의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서 오랜 기간 프랜차이즈를 이끌어가는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그 리스트에 하나의 시리즈가 추가되었습니다. <존 윅>.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존 윅> 1편의 제작비는 2천만 불. 할리우드에서 2천만 불은 중규모에도 못 미치는 예산입니다. 소박한(!) 드라마인 <머니볼>의 예산이 5천만 불이니까요(참고로  <어벤저스 - 엔드 게임>의 제작비는 4억 불). <존 윅>은 저예산 영화에 속합니다. 실제로 영화 팟캐스트인 'The Big Picture'과의 인터뷰에서 채드 스텔스키 감독은 <존 윅> 1편을 찍을 당시 감독인 자신은 물론 키아누 리브스 역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인물들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키아누 리브스는 그렇다 쳐도 채드 스텔스키는 잔뼈가 굵은 스턴트, 액션, 격투 연출 전문가였다가 <존 윅>으로 감독 입봉을 한 초짜 감독이었거든요. 한 마디로 <존 윅>은 제작사나 배급사 모두 큰 기대 없이 제작한 많은 액션 영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제작비의 6.5배인 130,888,901를 벌어들이며 잭 팟을 터트렸고 2편을 거쳐 이번에 3편이 개봉됐죠. 3편 역시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고, 4편 제작은 이미 들어가 2021년 5월 개봉을 예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호? 불호?

<존 윅>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호와 불호로 뚜렷이 양분됩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존 윅>에는 뭐 줄거리라고 할 것이 별로 없거든요. 세상과 담을 쌓고 은퇴한 채 살아가는 전설의 킬러 존 윅, 그에게 삶의 전부는 아내뿐이었는데 그녀는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남긴 강아지(라기보다는 개). 존은 그 강아지를 아내의 분신처럼 여기며 살아가는데 한 러시아 갱단 보스의 철없는 아들이 아내의 분신과 다름없는 강아지를 죽이고 그의 보물인 1969 머스탱을 훔쳐가죠. 러시아 갱단 보스는 아들에게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인 줄 아느냐 타박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서슬 퍼런 존 윅은 개와 자동차 복수로 러시아 갱을 궤멸시킵니다. 이게 <존 윅> 1편의 스토리. 2편도 결국 복수가 스토리입니다. 단순무식. 그러니 개랑 자동차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 어떻게 영화의 전부가 될 수 있냐 비난하는 관객의 심정.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액션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조스>의 스토리는 해변에 조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해양경찰이 사투 끝에 죽인다는 게 끝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다크 나이트>나 <매트릭스>처럼 존재론적이거나 철학적인 내용을 지닌 심오한 액션 영화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죠. 그리고 액션 영화가 그러한 의미를 품는 경향은 최근에 와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액션 영화는 그 본질(단순함과 화끈함이 주는 재미)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물론 그것도 탄탄한 연출이 뒷받침되어야 재미있습니다). 복잡한 플롯이나 다층적인 캐릭터, 여러 의미 등을 담으면 더 좋기는 하지만 그것은 액션 영화에 있어서 충분조건일 뿐입니다. 영화는 여러 면을 지닙니다.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등의 정치적 측면, 순수하게 실험적 영상 미학 등을 추구하는 예술적 측면, 그리고 관객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쇼비즈니스적 측면입니다. 이 세 측면은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고 공존합니다.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교훈적 서사가 있는 반면 순수한 이야기 자체로서 존재하는 서사도 있습니다. 적잖은 관객이 "그래서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뭐야?" 하며 모든 이야기는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크지만 그저 어릴 적 머리맡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주던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어떤 함의나 메시지를 담지하지 않은 서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서사도 존재합니다.



액션 영화를 단순하다고 많이들 폄훼하지만 큰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액션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훨씬 난이도 높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예술성을 표방하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재미없는 영화가 있는 반면 재미있는 영화는 극히 드물거든요. "재미없는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재미있는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제 철학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존 윅>은 화끈한 맨몸과 총기 액션에 방점을 찍은 단순한 액션 영화입니다. 애초부터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가 아닙니다. 관객이 존 윅에게 정서적으로 이해되거나 움직이거나 동정하거나, 그저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존 윅>이 단순히 총기를 이용한 액션에만 그쳤다면 바로 2차 판권 시장으로 넘어간 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존 윅>에는 또 다른 미덕이 존재합니다. '키아누 리브스'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입니다.





세계관 : 타 액션 영화와의 결정적 차별성

<존 윅> 1편과 2편을 보고 떠오른 한국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달콤한 인생>, <아저씨>, <악녀>. 세 한국 영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귀신같이 싸움을 잘하는 고독한 주인공이 홀로 조직에 맞선다, 그리고 그 모습이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으로 전달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저씨>를 처음 극장에서 보고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단순한 주먹질이나 발차기가 아닌 가장 간결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순간적으로 제압하는 사실적인 액션은 한국 영화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연출력도 매우 뛰어났죠. 한국 영화 역사에서 총기 액션이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처럼 격투 액션은 <아저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한 인생>도 멋진 미장센과 아름다운 연출을 지녔죠. <악녀>는 연출과 서사는 부족했지만 실험적인 액션이 강렬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저씨>와 <달콤한 인생>, <악녀>에는 없고 <존 윅>에는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독특한 '세계관'. 그 세계관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 <존 윅 3>를 보고 세 편의 한국 영화가 더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이런 영화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콘티넨탈 호텔'을 중심으로 보이는 <존 윅> 속 세계관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설정입니다. 킬러들끼리 통용되는 황금주화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2G 피쳐 폰, 펑키하면서도 독특한 외모와 옷차림, 태도의 연락 교환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고전적인 통신 장비들. 엄격히 지켜지는 몇 가지 계율과 그 세계를 관장하는 '하이 테이블'의 존재. 액션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2시간 러닝타임 내내 액션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이 독특한 세계관 덕분에 <존 윅>은 그 단순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내러티브 소재를 지닙니다. 액션 영화에게 최대의 적은 '예측 가능성'입니다. 세계관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존 윅 3>는 미스터리한 세계관의 등에 업혀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관객이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페이소스

한국 정치계에 '피닉제' 이인제가 있다면 할리우드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있습니다. <엑설런트 어드벤처>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스피드>로 전 세계적 꽃미남 배우로 일약 스타가 됐지만 배급사의 <스피드 2> 제작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시련을 겪으면서 영화계에서 잊히는 듯했으나 문제의 화제작, 영화학과보다 철학과 교수가 더 좋아하는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더니 시들시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나 했지만 <존 윅> 시리즈를 통해 제3의 전성기(!)를 누리며 이인제 급 부활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라는 인물은 할리우드의 다른 배우는 가지지 못한 독특한 매력을 지닌 배우입니다. '연기력이 떨어지는 대표 배우'로 잘 알려진(!) 그는 표정이 풍부하지 않습니다. <엑설런트 어드벤처>에서 일렉 기타 치는 시늉을 하던 바보 '테드'를 빼면 <스피드>에서도, <포인트 브레이크>에서도, <매트릭스>에서도, <콘스탄틴>에서도, <데블스 에드버킷>에서도, 그의 표정과 말투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그가 맡았던 일련의 캐릭터를 보면 연기 폭이 상당히 좁고 제한적이죠. 그런데 길거리에서 찍힌 사진들이 보여주는 기행들과 가슴 아픈 개인사, 각종 선행(매트릭스 1을 통해 충분한 부를 얻었다 생각한 그는 매트릭스 2편과 3편 개런티를 제작진들에게 나눠졌다고 하죠, 그 외 여러 선물을 하는 등등) 등 자연인 키아누의 특질이 과묵하고 제한적인 연기력을 지닌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디졸브 되면서 독특한 캐릭터를 빚어냈습니다. 대부분 할리우드 배우가 미디어와 자연인의 모습 간 상당한 괴리를 보이는 반면 키아누는 자연인이 곧 배우요 배우가 곧 자연인인 합일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비록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대신 그 과묵함과 의도하지 않은 어색함(!)에서 배어 나오는 상실과 피로(!)의 페이소스는 독보적인 실재적 아우라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키아누 리브스가 데니얼 데이 루이스보다 연기력 면에서 나은 배우는 아닐지언정 키아누가 스크린 위에서 보여주는 실재적 슬픔과 상실의 정서는 연기 천재 데니얼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독특함을 지닙니다. 실제로 키아누는 과거 연인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유산되고, 그 연인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아픈 개인사가 있습니다. 연인과 사별하고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강아지를 잃고 복수한다는 영화 <존 윅>은 일정 부분 그의 인생 궤적과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그래서 처음 키아누는 <존 윅> 출연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키아누의 캐릭터는 슬픔과 상실의 화신인 <존 윅>과 완벽한 합일을 이룹니다.



그래서 톰 크루즈 없는 <미션 임파서블>을 생각할 수 없듯, 키아누 리브스 없는 <존 윅>은 상상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가 곧 '존 윅'이고 '존 윅'이 곧 그입니다. 키아누 리브스라는 존재를 통해 <존 윅>은 다른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매력적인 영화가 되었고 지난 1편과 2편을 통해 캐릭터와 세계관의 푸른 싹수(!)를 보이던 <존 윅>은 3편 파라벨룸을 통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본론

서론이 길었습니다. <존 윅 3 - 파라벨룸>은 <존 윅  2>의 끝장면, 존 윅이 킬러의 계율을 어기고 'excommunicado' 즉 그의 목에 현상금이 붙은 채 킬러들의 커뮤니티(!)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는 장면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이전 시리즈를 보지 않고 <존 윅 3>을 봐도 되기는 하겠지만, 주인공의 정서를 따라가고 윈스턴과 존의 관계, 그리고 영화 속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적어도 <존 윅 2>는 보고 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전 시리즈와 같이 복잡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지난 1편과 2편이 존 윅의 복수극이었다면 3편은 '하이 테이블'에 의해 '추방 혹은 파문 excommunicado(전 이 단어가 왜 이렇게 멋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한 후 그를 죽이려는 수많은 인물과 세력들로부터 살아남는 존 윅의 생존기입니다.





새로운 캐릭터

본 편에서는 새로운 캐릭터 두 명, 할리 베리와 아시아 케이트 딜런이 등장합니다(공교롭게도 새로운 캐릭터 모두 여자 캐릭터인데 다분히 PC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전개에 잘 녹아있는 관계로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할리 베리는 극을 크게 추동시키는 기능보다는 중간에 단순히 조력자로서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지기 때문에 소비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뭐랄까, <존 윅>의 고전적이고 여유 있지만 차갑고 위험한 분위기와 세계관에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캐릭터 자체보다는 캐스팅의 실패라고 보이는데, 반면 '심판관(The Adjudicator)'으로 등장하는 아시아 케이트 딜런은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엄청난 포스로 다른 주요 캐릭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클래식 #교회 #이탈리아 #중세 #르네상스

<존 윅>의 세계관에서 받는 느낌을 키워드로 뽑아보자면 '클래식', '교회', '이탈리아', '중세', '르네상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위에서도 말한 바대로 이 고유한 세계관은 3편에서 여러 에피소드와 이미지 등을 통해 더욱 짙게 나타납니다. 분명 등장인물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옛 중세 유럽의 교회를 떠오르게 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죠. 그들의 복장과 계율, 독특한 아이템들, 고전적 어휘들에서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러한 세계관 속의 독특한 관념적 개념은 효과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을 통해 시각적 기호로써 멋지게 치환됐습니다. 할리 베리라는 배우가 지닌 이미지, 그리고 그녀의 행동과 말투가 이러한 고전적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도는 반면(연기 부족의 문제이기도 했을까요?) 아시아 케이트 딜런은 그녀의 외모부터 말투와 태도까지 계율을 어긴 이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심판관'으로서 완벽히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편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가장 기대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액션

입에 책이 꽂힌 채 턱이 빠지고, 고슴도치처럼 등에 칼이 꼽히고, 개들에게 가랑이를 물릴 때마다 객석에서는 '오우~~ 쒯!!!', '마이 가아앗!!!' 등 다양한 탄식과 감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총기 액션에 국한된 이전 액션과 달리 다양하고 끔찍하고(!)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존 윅 3>의 액션은 <본> 시리즈와 <아저씨>, <달콤한 인생>, <악녀>를 더 스타일리시하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킨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감독이 <악녀> 속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 장면을 오마주 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죠. 액션 시퀀스는 어느 하나 빼놓을 구석이 없지만 가장 큰 인상을 받은 장면은 마지막 콘티넨탈 호텔에서 벌이는 킬러들과의 총격 시퀀스. 중무장한 군인 킬러들(!)에게 일반 총탄이 먹히지 않자 점점 수세에 몰리던 존과 샤론이 무기고에서 대구경 총탄을 꺼내 킬러들의 머리를 아예 날려버리기 시작하는 그 시퀀스는 최근 본 총기 액션 시퀀스 중 가장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줬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격투씬에서 <테이큰> 식 쇼트 잘게 쪼개기 꼼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대부분 액션 영화가 부리는 꼼수 중 하나가 격투를 벌일 때 쇼트를 최대한 짧게 짧게 편집함으로써 속도감을 높이고 부족한 액션 연기와 연출을 감추는 것인데 <존 윅 3>는 격투씬에서 쇼트가 꽤 길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객의 눈을 속이지 않고 정공법을 가는 그 선택은 어쩌면 감독인 채드 스텔스키 자신이 스턴트 맨이자 액션 및 격투 연출 출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부분 키아누의 대역이 액션을 수행했겠지만, 여전히 많은 액션 신을 키아누 본인이 직접 수행합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영화의 많은 격투씬에서 허점이 노출됩니다. 키아누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미국 나이로 55세!!) 날렵함이 꽤 떨어지는데 쇼트 마저 길다 보니 동작이 느린 장면들이 곳곳에서 노출되죠. 쇼트를 짧게 가면서 대역을 활용했으면 충분히 커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공법을 택한 용감한 감독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편으로 키아누가 10년만 젊었어도.. 하는 속절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또 그랬다면 지금 키아누 리브스가 보여주는 짙은 피로감과 상실감의 페이소스는 아마 많이 희석되었겠죠.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는 유머

생각해보면 지난 1, 2편에 유머가 있었나 싶습니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이번 3편에서는 유머가 꽤 많은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교묘하게 액션 속에 배어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그 유머가 톤 앤 매너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특히 '제로' 캐릭터가 극의 분위기를 방해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심각하다가 웃다가 괴상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그 모습까지는 독특한 사이코적(!)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영화 후반 소파에 둘이 남겨졌을 때 갑자기 존 윅에게 다가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팬이라고 하는 씬은 극의 분위기를 망친 최악의 순간일 뿐만 아니라 제로의 캐릭터도 완전 망가뜨린 선택이었습니다.



액션 : 허점

분명 <존 윅>의 강점은 액션이지만 많은 허점도 드러냅니다. 가장 큰 부분은 적들이 총을 들고 있음에도 멀리서 쏘지 않고 굳이 존 윅에게 다가와서 죽는다는 것, 존 윅이 여러 명과 싸울 때 충분히 동시에 덮칠 수도 있음에도 멍청하게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점 등인데, 에이 뭐 액션 영화에서 뭘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존 윅>이 일반 액션 영화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영화가 A부터 Z까지 격투와 총기 액션에 특화됐다는 점, 그리고 영화 내내 수많은 액션씬이 이뤄지는 동안 그런 허점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계속 거슬린다는 점 등은 큰 단점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높은 수위의 폭력

폭력의 수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전 1편과 2편이 폭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3편에 와서는 작정한 듯 잔인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전시합니다. 헤드샷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예삿일, 영화 중반이 지나면 덤덤해질 정도이고 책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쳐서 턱을 빼고 죽인다던지, 칼을 이용해서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 특히 칼을 서서히 눈에 꼽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장면 등은 기존 <존 윅>의 톤 앤 매너와 완전히 다른 적나라한 폭력 묘사로서 마치 한국의 조폭/폭력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존 윅 3>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폭력 묘사는 할리우드에서도 조금 독특한 지점에 있습니다. 할리우드에도 물론 폭력의 수위가 높은 R 등급의 영화는 많지만 그들 대부분이 상업영화가 아닌 B급 영화이거나, 폭력의 수위는 높지만 그 대상이 괴물 혹은 좀비 등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싸움이거나, 호러/스릴러물의 성격이 짙거나, 언어가 거칠거나, 성적 묘사 부분 때문에 R 등급인 경우입니다. <존 윅>과 같은 본격 총기 액션물에서 이 정도로 높은 수위의 폭력 장면을 묘사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로 NPR이나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베니티 페어 등 미국 주요 매체들이 모두 하나같이 <존 윅 3>의 폭력 묘사를 'hyper-violent'라 부르며 리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3편에 와서 갑자기 폭력의 수위를 높인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제 추측으로는 <존 윅>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히 하고자 함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더 B급 영화스럽게, 더 전문적(!)으로 폭력을 다룸으로써 컬트적인 팬층을 형성하겠다? 독특한 소재와 세계관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도입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존 윅>은 뭔가 B 급스러운 스멜을 물씬 풍긴 영화이기도 하죠. 이번 3편의 제작 예산이 4천만 불, 적지도 많지도 않은 예산 규모이지만 지난 1, 2편이 똑같은 R등급이었음에도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노려볼만한 수입니다.






끝으로 : 우려와 기대

저는 <존 윅 3>가 보여준 몇몇 잔인한 장면들이 거북스러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렌즈를 들이대면서 잔인함을 전시할 필요가 있었나, 다른 방법들도 많을 텐데 굳이 저런 방법을 써야 했나 싶습니다. 안 그래도 고어물이나 수위 높은 잔인함을 싫어하는데 언젠가부터 잔인함과 폭력에 더 예민해진 저의 개인적인 성향도 분명 작용했을 것입니다. 만약 2021년에 개봉할 <존 윅 4>도 이와 같이 잔인하거나 더 잔인하다면 선뜻 극장에 가서 보게 될까 싶습니다. 내용은 궁금하지만 그 잔인함은 싫거든요.


 

만약 지금처럼 폭력으로 가득 채운다면 과연 언제까지 <존 윅>의 간결하고 단순한 영화의 설정이 유효할지 모르겠습니다. 액션을 계속 강화하며 인기를 유지하는 <패스트 엔 퓨리어스>처럼 될 수도 있고,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가장 큰 우려는 제가 진짜 <존 윅>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미스터리함'이 곧 사라질 것이란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전설'로 깔고 들어가는 존 윅이란 인물 설정부터 정체모를 '하이 테이블'의 존재, 여전히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킬러들의 세계 등 독특한 <존 윅>의 설정과 세계관은 미스터리하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분명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고 그럴수록 재미는 반감될 것입니다.



이렇게 꼬치꼬치 이야기하는 것은 어쨌든 제가 <존 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재미와 즐거움이 계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구차하게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모르죠, 인재들이 넘쳐나는 할리우드이니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을 수도. 아니면 <왕좌의 게임>처럼 되거나....



ps.

본 리뷰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재밋거리들이 있습니다. 발레단의 이야기, 액션의 전면에 나서는 샤론, 닌자들에게 난자당했지만 부활하고 복수를 부르짖는 거지왕, 계율과 우정 간 외줄 타기를 하는 윈스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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