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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l 22. 2019

보이콧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신기루같은 승리를 위해 치뤄야하는 희생에 대해


일본에서 혐한의 목소리가 꽤 높다고 하지만 그 혐오의 목소리를 중화시키는 주체는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들입니다.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순신과 죽창을 말하며 일본 편드는 사람은 이적, 친일, 매국이라고 선동하는 걸 알게 되면 그 일본인은 예전처럼 한국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에게 세월호 사건이 모든 국민의 가슴에 잊을 수 없을 상처를 준 현대사의 비극이라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폭발 사건이 일본인에게 원폭 후 가장 큰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있어 한국인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비극을 조롱하며 보이콧하고 있다는 걸 알면 그들은 한국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이러한 행동이 일본 내 혐한 세력이 벌이는 짓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 아베에게 타격을 주는 전략은 그와 그의 보수 세력을 일본 국내와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치졸하게 자유무역질서를 어지럽히고 한국을 왜곡시키는 그의 태도와 우리는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의 잘못이 더 드러나게 만드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베 정부와 달리 성숙하고 품위 있는 자세를 견지해 일본인에게 "한국 정부와 한국인은 치졸한 아베와 다르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고, 자유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아베의 행동에 초연한 자세로 대응해 "한국은 역시 다르다"라고 국제 사회에 신뢰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혐한 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고, 더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사랑하도록 만들고, 국제 사회 멤버를 우리 편으로 포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은 오랜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한 일이겠지만 가장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효과가 있는 대일 해법이자 동시에 정말 멋진 행동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한국의 외교권을 침탈하겠다거나 한국의 군대를 해산하겠다거나 한국을 합병하겠다거나 중국을 정벌하고자 하니 한국은 길을 내어주라는 게 아닙니다.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에 지금까지 주던 특혜를 철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과연 이게 지금 이렇게 정부가 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온 나라를 들쑤실 일인 것일까요. 고등학생이 기자회견을 하고 펜을 버리게 만들 일일까요.





과거 사드 사태 당시 외교 문제를 국내로 끌어들여서 국민을 선동시켜 보이콧하게 만들었던 중국 정부를 미개하다고 얼마나 욕했습니까. 항상 외교 문제가 불거 질 때마다 국내 문제로 환원시켜 보이콧을 하는 중국을 국제 사회도 엄청나게 비난했습니다. 일본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사태를 조롱하면서 보이콧에 미쳐있는 지금 한국 모습이 중국과 바를 바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K-DRAMA, MOVIE, COSMETIC, FOOD에 빠져 한국을 사랑하게 됐던 일본의 젊은 세대, 예전에는 한국에 관심도 없었거나 싫어했다가 한국의 문화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게 된 그들 조차 등을 돌리지 않을까요. 정부가 나서 보이콧을 선동하는 한국을 보는 국제 사회의 시선은 어떨까요. 우리가 중국을 보던 시선과 같지 않을까요? 과연 지금 이 보이콧에 대한 궁극적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생각해봅시다.

이 광풍 속에서 실속을 챙기고 실제 피해를 입는 이들은 누구인지. 아베는 총선을 챙겼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을 챙겼습니다. 이전 한국의 대통령들이 반일 감정을 자극해 지지율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문재인 정부처럼 국민을 선동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리 지지율이 다급해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선은 지킨 이들이었습니다.



또 누가 이득을 봅니까. 일본 내 혐한 세력입니다. 논리도 없이 이상한 상상력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그들은 한국의 아주 작은 흠집도 좋은 먹잇감으로 섭취하며 몸집을 불립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반일 행동을 원동력으로 일본 내 혐한 활동을 강화합니다. 한국이 일본을 저렇게 싫어하는데 너넨 왜 그렇게 한국 관광을 가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좋아하는 것이냐며 같은 일본인을 공격합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너네가 한국을 가봤냐, 한국은 너네가 말하는 그런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 가보면 사람들도 좋고 친절해서 생각이 달라질거라 변호합니다.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보이콧은 친한파들의 입지를 좁히고 혐한파의 세력 확장에 먹잇감을 주는 꼴입니다. 일본 내 첫번째 K-Wave 물결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본 중년 여성층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두번째 K-Wave는 한국에 전혀 관심없고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을 좋아하던 자신의 엄마를 냉소하던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혐한 세력의 공격과 조롱에도 꿋꿋하게 한국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한국의 보이콧이 어떻게 작용할까요. 이렇게 무너지는 양국 국민 간의 정서와 신뢰 갈등은 한참 지속될 것 입니다.



직접적인 피해는 누구에게 갈까요. 일본 기업타격을 입을까요. 아사히 매출의 1%, 유니클로의 6.7%만이 한국에서 발생하고, 도요타 매출의 15%만이 아시아(한국이 아닌)에서 발생합니다. 보이콧으로 인해 이 기업들의 한국 매출이 0으로 감소했다 쳐도 실제 기업에게 주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보이콧으로 승리와 독립을 쟁취하자고 하는데, 그 승리가 어떤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지금 한국이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혹시 그들이 말하는 승리란 한국 내 일본 기업 매장이 비어있는 모습을 보며 크게 기뻐하는 과대망상적 자위행위는 아닌가요?



그럼 정말 피해를 입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일본은 한국의 3위 교역국입니다. 2017년 통계 기준 한국의 대일 수입은 542억 달러. 일본에서 수입하는 그 수 많은 부품과 제품의 운송, 제조, 판매, 재수출 과정에서 국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적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지금의 보이콧으로 생기는 많은 이들의 생계 문제, 일본 제품과 회사, 관광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생계 문제는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요. 그들은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볼 멘 소리하면 정부가 말한 '매국노'가 되니까요. 지금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승리를 거두는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정부는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이콧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선동할 수 있다고 합시다. 제가 지금 문재인 정부의 선동을 악의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신들을 향한 어떤 비판용납하지않는 반민주주의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독재를 견제하기 위함입니다. 다양한 시민과 정당의 의견을 듣고 정책과 법에 반영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정부는 국민을 "애국 아니면 매국"이라 편 갈랐습니다. 정부 편을 들면 우리 편,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는 것은 전체주의의 전형입니다. 민주주의의 정부는 언제든 다양한 의견과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옳고 정의롭다고 해도 어떠한 형태의 권력 견제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중국과 같은 일당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권력의 독재를 견제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애초에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한 386 세대가 군부 독재에 맞서고 그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이유는 권력 독재를 막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국가주의적 프레임으로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가르고 어떠한 비판과 반대 목소리도 '애국과 매국'이란 민족주의적 프레임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이고 있는 악의적 행태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 철학과 가치에 반하는 모순적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이유들로 보이콧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콧을 하는 개인을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유주의를 살아가는 개인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어떤 행동도 할 자유와 권리가 있으니까요. 다만 보이콧을 하기 전, 과연 이 보이콧이 해당 기업에게 끼치는 경제적 영향이 얼마나 유의미한지를 조금이라도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전체 매출 중 단 1%만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기업을 향한 보이콧은 유의미한 경제적 피해가 없다고 봐도 되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하는 보이콧이 해당 기업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을 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실질적 효과는 없지만 내 의사를 표시하는 상징적이고 정치적 의미를 갖는 운동인지를 먼저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 입니다. 해당 기업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국내 매출이 줄었다는 뉴스에 기뻐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서글프고 초라한 것입니까. 그리고 내가 하는 보이콧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보이콧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혹시 부작용이 더 큰 것은 아닌지, 정부가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말들을 남발해도 되는 것인지 독립적이고 주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귀찮게 그런 걸 언제 다 하냐고요? 그게 우리가 항상 말하는 '시민'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주체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귀찮고 품이 많이 드는 타이틀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회 대부분의 노동을 노예가 담당했던 고대 그리스같은 사회에서나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계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사회는 시민이 제대로 시민으로서 존재하고 민주주의를 작동시키기에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정보가 너무 많고 언론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사고를 할 여유가 팍팍합니다. 영국의 역사적인 브렉시트 투표가 끝나고, 브렉시트 결정이 확정되고 나서야 가장 많이 검색됐던 말이 "브렉시트가 뭐지"였다는 게 기억납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0971519&isYeonhapFlash=Y&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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