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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16. 2021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선동의 기술, 혹은 예술


<맹신자들>을 읽고 있습니다.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생명의 유한성으로 인해 문명 발생 이전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변함없었다고 주장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시대에 관계없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주지하는 바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태도 등 삶을 대하는 자세와 똑같은 모습을 오래 된 과거의 텍스트에서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역시 그런 경험을 전해줍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쓰인 이 책은 놀랍게도 현재 대한민국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와 90년대의 학생 운동, 현재의 민주당과 극단적 페미니즘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이 모든 사회 현상이 저자가 주장하는 '대중운동'의 전형적인 표상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페이지에서 그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직 절반까지 밖에 읽지 못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해드립니다. "보거나 들을 가치가 없는 사실에 '눈 감고 막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자들이 지닌 불굴의 결단력과 충성심의 원천이다." 당신은 이 구절에서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래에서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어떤 집단의 사람들, 어떤 사회 현상,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종 결론은 결국 '사실'이 아닌 '관점'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니까 말이죠.




"대중운동이 지지자를 끌어들이고 지키는 것은 강령과 약속이 강력해서가 아니다. 대중운동이 그들 개인의 불안과 쓸쓸함, 무의미한 존재감에서 피신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이 사무치도록 좌절한 이를 치유하는 것은 절대 진리를 설파하거나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곤경이나 학대로부터 구제해줘서가 아니라, 쓸모없는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 깊고 기쁨 충만한 전인적 공동체 안에 그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때문이다.

(중략)

새로운 운동을 강령의 진실성과 그 약속의 타당성으로 판단해봤자 소용없다. 판단해야 할 것은 그 운동의 조직이 좌절한 이들을 신속히 다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많은 운동 조직이 새로운 신조를 앞세워 민중의 헌신을 끌어들이느라 경쟁하는 곳에서는 가장 완벽한 공동체의 틀을 갖춘 곳이 승리한다.

(중략)

볼셰비키 운동이 권력 경쟁에서 다른 모든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월등히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결속력 높은 공동체 조직 덕분이었다."

- 67~68 페이지




"현실을 비하하는 기질, 몽상에 빠지는 습성, 습관적인 증오심, 남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 현혹되기 쉬운 경향,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비롯하여 극심한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다양한 현상은 단결의 동인이자 무모함을 부추기는 배후다."

- 93 페이지




"어떤 집단이 유독 죽음을 업신여긴다면, 그곳은 대개 결속력이 높으며 흔들림 없이 일치단결하는 집단이라는 결론이 타당할 것이다.

(중략)

단결과 자기희생에는 자기 축소가 요구된다. 개인이 응집력 높은 전체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중략)

목숨 걸고 싸울 각오를 키우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과 육신을 분리하게끔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 94~95 페이지




"대중운동에서 연극적 요소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 더 지속적인 힘을 발휘한다. 설득 혹은 제압의 신념과 권능이 없어져도 연극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운동의 행렬과 행진, 의식, 전례 등의 행사는 의심할 바 없이 대중의 가슴에 어떤 공명을 일으킨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대중이 운집한 장관에는 넋을 잃게 마련이다.

(중략)

군중의 기세와 장관에는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좌절한 사람이 더 강렬하게 반응할 수 있다. 불만족스러운 자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혹은 그런 자기를 숨기고자 하는 욕망은 좌절한 자들 내면에서 무언가를 가장하며 과시하는 능력, 자기를 주저 없이 웅장한 군중과 일체가 되도록 하는 의지로 발전한다."

- 105 페이지




"대중운동은 현재를 위해 과거와 싸우는 듯하다. 대중운동은 기득권자와 특권층을 노쇠하고 타락한 과거가 순결한 현재를 갉아먹는 것으로 본다.

(중략)

설상가상으로 현재가 마치 불결한 것인 양 혐오스러운 과거와 도매금으로 취급당한다. 이제 전선은 현재와 과거 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된다.

(중략)

대중운동은 현재를 비열하고 비참한 것으로 그릴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다. 우울하고 고단하고 억압적이고 생기 없는 개인의 삶이라는 원형을 빚어내는 것이다. 행복과 안락을 헐뜯고 엄격한 생활을 찬미한다.

(중략)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분열되어 필사적인 이기주의로 치닫는다. 희망이 결합되지 않는 한, 함께 고통을 겪는 것 자체로는 단결도 서로 베푸는 정신도 일으키지 못한다.

(중략)

대중운동이 초기에는 과거에 등을 돌릴지라도 종국에는 영광스러운 과거, 흔히는 허울 좋은 과거상을 추구하게 된다. 혁명운동은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독립을 누리던 황금시대를 말하며 민족운동은 과거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거나 날조한다. 이러한 과거 천착은 운동의 적법성과 구질서의 위법성을 보여주기 위한 의지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현재가 단지 과거와 미래의 막간극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 106 ~ 110 페이지




"급진주의자와 수구주의자는 현재를 혐오한다. 그들이 보는 현재는 일탈이요 기형이다.

(중략)

현실에서는 급진주의와 수구주의가 매사에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수구주의는 그들이 이상으로 떠받드는 과거를 재현하고자 할 때 급진적인 양상을 보인다.

(중략)

(급진주의자는) 새로운 세계 건설에 폭력을 동원해야 한다면, 인간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수구주의자들과 비슷한 사고를 갖게 된다. "

- 113 페이지




"대중운동의 현재를 비하하는 태도가 좌절한 사람들의 성향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좌절한 사람들은 현재에 관해서라면 좋은 것까지도 깡그리 헐뜯곤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서 엄청나게 즐거워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이 시대가 얼마나 저열하고 천박한지 장황하게 떠듦으로써 패배감과 소외감을 달래는 것이다.

(중략)

좌절한 사람들은 이렇듯 현재를 비하함으로써 막연하게 평등 의식을 얻는다."

- 114 페이지




"평범한 일상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위장하는 장치이다. 가능한 것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순전히 자기 잘못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그 임무가 막대한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편이 가능한 것을 시도할 때보다 신뢰를 잃을 위험이 적다."

- 115 페이지




"대중운동은 궁극의 절대 진리가 강령 안에 포함돼 있으며 강령 이외에는 어떤 진리도 확실성도 없음을 주장한다. 맹신자가 결론의 근거로 삼는 사실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사고가 아니라 '경전'에서 나온 것이라야 한다.

(중략)

이성과 이성의 근거에 의존하는 것은 이단이요 대역죄다.

(중략)

보거나 들을 가치가 없는 사실에 '눈 감고 귀 막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자들이 지닌 불굴의 결단력과 충성심의 원천이다.

(중략)

믿음의 힘은 베르그송이 지적했듯이 산을 옮기는 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따르는 강령이 절대로 틀림없다는 확신이 맹신자들로 하여금 불확실성, 뜻밖의 상황, 주변 세계의 불편한 현실에도 꿈쩍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 119~121 페이지




"강령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가 아니라 얼마큼 확신을 주느냐에 따라 효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심오하고 숭고한 강령일지언정 오직 하나 뿐인 진리로 구현되지 않는 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중략)

그렇기에 강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굳게 믿게 만들어야 한다. 머리로 이해한 강령은 그 위력이 삭감되게 마련이다.

(중략)

"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은 가슴이지, 이성이 아니다." 루돌프 헤스는 1934년 나치당 앞에 맹세하면서 청중에게 훈계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머리로 찾지 마시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이만이 그분을 찾을 것이오."

- 121~ 1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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