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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22. 2023

정이

계속되는 K-SF의 저주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괴물입니다. 많은 경우 "끔찍한 혼종"을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죠.





한국 영화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문화 컨텐츠가 키메라입니다(우린 '비빔밥'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K-POP이 그 좋은 예입니다. 많은(대부분)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K-POP들에는 대단히 많은 장르가 뒤섞여있고 그 '비빔밥 정신'은 뮤직비디오에도 그대로 반응됩니다. K-POP이 그래도 꽤 맛있게 비벼진 비빔밥이라고 한다면 K-MOVIE, 그 중에서도 많은 예산이 투여된 한국 영화, 특히 미래를 배경으로 한 한국 SF 영화들은 그 모습이 기괴한 키메라 같습니다. 화려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그림과 유명 배우의 출연은 언뜻 보면 잘 빠진 블록버스터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미국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비디오용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비디오용 영화들의 미덕은 애초에 '야심'이 없기 때문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없이 병맛을 시전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죠. "너무 심각하게 보지마". 이것은 영화 시작 전부터 체결된 영화와 관객 간 무언의 합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퀄리티가 낮고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장면과 스토리가 전개되도 관객은 부담없이 즐깁니다. 오히려 병맛으로 갈수록 더 사랑을 받는 경우도 많죠. <샤크네이도> 시리즈처럼 말이죠. 



반면 K-SF 혹은 K-블록버스터는 크랭크인 전부터 이미 대대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얼마나 야심찬 프로젝트인지 알리죠.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내미는 일종의 계약 행위입니다. 영화는 "우리 이렇게 크고 멋지고 때깔 좋은 영화야"라고 관객에게 기대를 갖게 만들면서 계약서를 내미는 것이고, 관객은 그에 부합하는 기대를 갖고 귀중한 시간과 돈(영화 티켓값이든 넷플릭스 구독료든)을 써서 영화를 봄으로써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계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영화와 관객 간 합의는 깨지게되죠. 



그 합의/계약은 어떻게 파기되는가. 영화가 키메라같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사자를 기대하면서 동물원에 갔는데 기다리고 있는 건 얼굴만 사자입니다. 몸통은 뱀, 다리는 기린, 꼬리는 올챙이에 자세히 보면 파리의 날개까지 달려있습니다.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고색창연한 씬들은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완성도가 형편없습니다. 우선 이미지의 오리지널리티가 크게 떨어집니다. 캐릭터들의 외모, 의상, 메카닉, 배경 등 프로덕션 디자인 뿐 아니라 스토리와 설정까지 대부분이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다 본 그림들입니다. 독창성은 언불생심, 한국만의 창의적인 요소 혹은 재해석 같은 것도 없습니다. 최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은 된 것 같은 낡은 느낌을 주는 이유입니다. 



이미지와 오디오 간의 간극은 이제 K-블록버스터의 인장입니다. 특히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벌어지는 이 차이는 좁혀지기는 커녕 해가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습니다. 돈을 많이 들인 것처럼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충격적인 수준의 오디오 상태(공간감이 전혀 없는, 누가 들어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티가 나는 어색한 대사들, 앙상하고 초라한 음향 효과와 음악 등)는 이미지와 비교해 그 퀄리티가 매우 조악합니다.



얕디 얕은 설정은 어떻습니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를 연출하면서 메카닉부터 동식물 하나하나까지 판도라라는 세계관에 관한 설정을 거대한 백과사전으로 제작한 것이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닙니다(물론 그는 이미 이전 영화들에서부터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깊은 설정을 부여했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의 세계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탄탄함 못지않게 "있음 직하고 그럴듯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믿음, 즉 핍진성을 관객에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크게 관여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탄탄한 설정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죠.



하지만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K-SF는 거대한 제작 규모,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제작사는 싼 값에 이런 그래픽까지 구현할 수 있어"라는 원인 불명의 자부심 혹은 객기(!)에 매몰되어서 기초를 완전히 망각해 버립니다. 그럴듯한 그림을 만드는데 온 정신이 팔려서인지 설정에 대한 고민 없이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메이션 여기저기에서 캐릭터, 실내외 건축, 메카닉, 무기, 의복 등등을 중구난방 복사 + 붙여넣기하죠. 철학이나 장인정신, 비전이 부재한 이 얕은 콜라주식 설정과 세계관은 핍진성은 커녕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참을 수 없는 세계의 가벼움"만 불러일으킵니다. 한국의 거대 프로덕션에서 CGI 작업은 앞서 언급한 설정뿐 아니라 캐릭터와 서사, 연출까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보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 영화들이 반복적으로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K-블록버스터의 인장은 확고해집니다.



정말 대충만 언급했지만 어쨌든 지난 몇 년간 야심 차게 제작되는 한국의 SF, K-SF는 조악한 연출, 설정, 캐릭터 등이 그럴싸"해보이는" CGI 위에 얹혀 서로 충돌하는 기묘한 키메라가 되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CGI 제작사의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SF를 제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100억이면 100억에, 500억이면 500억에 걸맞은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발 보이는 그림에만 천착하고 다른 요소들은 등한시하는 얄팍하고 질 낮은 제작은 심각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블록버스터의 만듦새만 보면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지른지 오래입니다. 흥행만 놓고 보면 인도가 한국을 앞지릅니다, 있어 보이는 일에만 돈 쓰고 신경 쓰는 것, 지극히 한국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생충>에 아직도 취해있습니까? 한국스러운 작업들이 반복되면서 한국의 블록버스터들은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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