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상실, 삶을 지탱하는 끈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by 김성현

누구나 인생의 끈이라는 것이 이다. 끈이란 무엇일까.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삶의 의미"에서 찾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사랑하는 사람, 시련에 대한 태도. 그것이 사람을 지탱하는 끈이라고.


나는 그 끈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굵은 끈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러 개의 끈들이 있다. 중요한 건 그 끈이 있다는 것. 그 끈이 우리를 지탱한다는 것. 하지만 그 끈은 동시에 그만큼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고, 버티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에게도 끈이 있었다. 여러 개였다.

나의 20대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이제 30대 꿈꾸던 일들을 향해 가려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찾아온 이 터널을 지나면 시작할 일들이 있었다. 집에서 첫째로서 짊어진 책임도 있었다. 창업하며 마치지 못한 학교 공부도 있었고 주위에서 늘 나의 넥스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또 터널 속을 걸으며 나 나의 자아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었다. 기꺼이 이 터널을 마주하며 수면 아래 있던 것들을 마주하고, 정리하고, 넘어가려 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 끈들이 있었기에 터널 속에서도 한 걸음씩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끈들이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피부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너무나 속상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줄어가기 시작했다. 약속을 미루기도 했다. '조금만 나아지면'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가운데 몸이 자주 붓는 게 느껴졌다. 몇 번 이상하다 싶어서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갑상선에 위험한 신호가 있다고. 암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암.

평생 처음 들었다. 의사 선생님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머리가 하얘졌다.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터널을 인내하며 걷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버거웠다.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걸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다들 나의 이 인내의 시간을 걱정하고 있었고, 나도 터널 속에 있었고, 이걸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이런 힘든 것들은 나누면 그들에게도 그 아픔이 묻고 그 고통의 무게가 전해질까 걱정했다. 그래서 혼자 감당했다.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약을 먹고,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몸마저 나를 배신하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동시에 감정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긴 터널을 걷고, 인내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매일 기대와 희망을 품었다. 동시에 현실적 상황도 마주했고, 내 안에 해결해야 하는 나 자신도 마주했다. 이런 것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기대하다가도 절망하고, 희망을 품다가도 현실에 부딪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제자리였다. 매일 반복되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나를 너무나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감옥에 갇힌 것처럼 묶여버렸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그냥 무감각했다. 감정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았다. 느끼고 싶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갔다. 성인이 되고 처음 시신을 마주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터널의 시간 속에서 나를, 또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나 자신과 삶을 보게 되었다.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너무나 힘들어하는 친척들과 가족들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또 하나의 끈이 끊어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끝이 났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끈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터널의 시간 속 나를 지탱하던 가장 중요한 끈이었다. 터널을 피하지 않고 걷는 이유였다. 건강 문제를 포함해 온갖 문제들을 감당하고자 했던 이유였다.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 이유였다. 감정이 마비되어도 버틴 이유였다. 이 터널을 빨리 끝내고 발버둥 쳤던 건, 상상하고 꿈꾸던 그 사람과 미래를 얼른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터널의 끝에 그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다른 끈들이 끊어져도 버틸 수 있었다. 건강이 무너져도, 감정이 마비되어도,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사람만 있으면.


그런데 그것도 끊어졌다.

순간, 세상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었다.


왜 새로운 일을 준비해야 하지?

왜 터널을 걸어야 하지?

왜 온갖 문제를 견뎌야 하지?

왜 버텨야 하지?

이유가 없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 자신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다른 끈들이 끊어질 때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다. 터널을 걷는 이유가 사라졌다. 나는 그저 텅 빈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끈이 모두 끊어진 채로.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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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끈이 끊어져가는 당신에게,


지금 당신을 지탱하던 끈이 끊어졌나요.

버틸 이유가 사라졌나요.

모든 게 의미를 잃었나요.


괜찮아요.


무너져도 괜찮아요.

지금 당장 일어서지 못해도 괜찮아요.

아직 다시 시작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지금은 새로운 의미를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버틸 이유가 없어도 괜찮아요.

그냥 무너진 채로 있어도 괜찮아요.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끈이 끊어졌으니 무너지는 게 당연해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약한 게 아니에요.


지금은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그냥 여기 있어도 괜찮아요.

무너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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