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아직 귀가를 못 했습니다

by 글그림



모래알은 떠나기로 했습니다

해변이 너무 좁다고 했거든요

사람들이 매일 깃발을 꽂고

파도랑만 놀게 해서

질렸대요


처음엔 사막으로 갔었죠

너무 많은 사촌들이 있었어요

이름도 얼굴도 비슷한 모래들이

햇볕을 등에 지고 누워 있었어요

모래는 헷갈렸어요

내가 나인지

그들이 나인지


그래서 달에 가기로 했대요

조수석에 앉아

유성우와 말을 섞으며

“달에선 시계가 없으니까”

그 말만 되뇌면서요


하지만 달은 이미 살 곳이 없었어요

별똥별들이 세 들어 살고 있었거든요

반딧불이도 모여 앉아

시를 쓰고 있었고요


모래는 며칠 동안

달의 뒷면에 숨어 살았어요

그림자들이랑 고요를 나눠 먹으며

시간이란 건 결국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 앉는 거라고

조용히 생각했대요


지구로 돌아오는 길에

한 알의 모래가 달에게 묻습니다


“혹시, 나의 그림자를 본 적 있어요?”

달은 대답하지 못했죠

자기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날 이후

모래는 아직 귀가를 못 했습니다

나는 아직

모래시계에 끼어 있는 알갱이가

그 모래라고 믿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건 단지

귀가를 미루고 싶은

다른 모래일 뿐이라는 걸


내일모레(모래)가 되면

돌아올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