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by 글그림



그냥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당신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있어요


돌아서 부른 적도 없고

불러서 돌아본 적도 없죠

한순간 스치고 난 뒤

여운이 남는 그런 인연


가로수 아래 버려진 그림자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날엔

우산을 편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우산이 날아갈까 봐

손잡이를 꼭 쥐었어요


멀어졌으나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꽃은 몰래 피는 일에 익숙하니까요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시간도

이제는 바람 속에서

다른 모양의 소리로 살아가겠죠


엇갈린 건

서로를 향한 눈빛이었다고

믿기로 해요


살면서

멈춰 서야 보이는 장면들이 있어요

지나쳤을 땐 몰랐던 들꽃처럼

지나치기엔 늦어버린 말 한마디처럼


같은 길 위였지만

같은 계절에 머물지 못한 것뿐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진 여행자였죠


그렇게 말하고 나면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외롭겠죠


아직 이 거리엔

혼잣말 같은 비가

천천히 번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