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하나
5시.
오늘은 현장에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었지만, 일부러 알람 시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알람보다 내 몸이 먼저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새벽 4시 30분쯤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습니다.
정확히 5시가 되자 알람 소리 대신 막내의 짧은 울음 한 번이 집 안을 깨웁니다.
금세 울음을 뚝 그치고 다시 고요해지는데, 요즘은 이 작은 울음소리가
새벽을 여는 종소리처럼 괜히 반갑게 느껴집니다.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로 향합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고, 양치를 하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뒤 조용히 자리에 앉습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몸과 마음에 “지금 잠시 쉬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 봅니다.
몇 번 되지 않는 호흡 사이로 벌써 여러 생각이 스며듭니다.
오늘 해야 할 일, 현장 일정, 아이들 등원, 처리하지 못한 메신저 창들….
눈은 감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장면이 재생됩니다.
사람의 다섯 감각 중 시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죠.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도 상상과 걱정이 만들어낸 ‘심상’이
마음속 스크린을 환하게 밝힙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흡에 이미지를 입혀 봅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색을 입히고, 그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시원하게 채웠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들어온다, 머문다, 나간다.”
이 단순한 흐름에 집중하며, 다른 장면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얼마 전, 늘 달릴 때 끼고 다니던 이어폰이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를 맡기고 오랜만에 아무것도 듣지 않은 채 달려 보았습니다.
음악과 말소리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내 몸의 감각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발바닥이 지면을 딛는 느낌, 무릎을 스치는 작은 통증,
가슴까지 올라오는 호흡의 리듬.
그 사이사이로 단풍 든 나무의 색, 양재천을 흐르는 물소리,
바람에 밀려가는 낙엽의 소리, 마주 달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또렷해졌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지나쳐 왔구나.”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에도
휴대폰을 손에서 완전히 놓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일을 할 때도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이게 더 집중이 잘 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믿을 뿐,
사실은 그 어느 것에도 완전히 마음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운전을 하며 연인과 입을 맞춘다면
우리는 운전에도, 입맞춤에도 예의를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나 역시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마음을 자꾸 나누고 있었습니다.
명상은 꼭 조용한 방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단 하나에 머무는 훈련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와 놀 때는 아이에게,
달릴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일을 할 때는 눈앞의 한 줄 문장과 한 장의 도면에.
물론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다시 휴대폰을 들게 될 수도 있고,
달리면서 또 다른 생각들에 빠질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그때마다 “또 산만해졌네”라고 나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아, 다시 돌아와야 할 때구나” 하고 부드럽게 현재로 복귀하는 일 같습니다.
오늘 새벽, 막내의 짧은 울음으로 시작된 이 하루를
나는 어디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오늘 단 하나의 순간만큼은 온전히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숨 한 번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우리가 있어야 할 바로 이 자리, 이 시간에
함께 서 봅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에 ‘집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